본문으로 이동
주 메뉴
주 메뉴
사이드바로 이동
숨기기
둘러보기
대문
최근 바뀜
임의의 문서로
미디어위키 도움말
한국고고학사전
검색
검색
보이기
로그인
개인 도구
로그인
600-4614 문서 원본 보기
문서
토론
한국어
읽기
원본 보기
역사 보기
도구
도구
사이드바로 이동
숨기기
동작
읽기
원본 보기
역사 보기
일반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
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
특수 문서 목록
문서 정보
보이기
사이드바로 이동
숨기기
←
600-4614
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관리자
.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DISPLAYTITLE:크로우놉카 문화(Кроуновская культура)}} {{개념정보 | 한글표제어=크로우놉카 문화 | 이칭별칭=퇀제-크로우놉카 문화, 끄로우노프카문화, 크로우노프카 문화, 퇀제-크로우노프카 문화, 단결-크로우노프카 문화, 단결-크로우놉카 문화 | 시대=청동기 시대 | 관련 지역=러시아 연해주 | 관련 유적=크로우놉카-1 유적, 올레니-A 유적, 코르사콥스코예-2 유적, 불로치카 유적, 무산 범의구석 유적, 회령 오동 유적, 퇀제 유적, 다청쯔 유적, 키예프카-1 유적, 페트로바 섬 유적, 이즈베스톱카 유적 | 키워드=[[터널식 화덕 자리]], [[돌두름식 화덕 자리]], [[돌널무덤]], [[세형동검]], [[쇠 도끼]], [[굽다리 토기]], [[항아리 모양 토기]], [[간 돌도끼]]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김재윤 }} ==설명== 1956년 오클라드니코프(Окладников А.П.)가 연해주 서부의 크로우놉카 강변의 유적을 발굴한 후 명명하게 되었다. 크로우놉카 유적이 조사되기 전까지 연해주 지역은 [[금속기시대|금속기 시대]]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되었으나, 이 유적을 통해 연해주의 초기 철기 문화를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라즈돌나야(Раздольная)강은 크로우놉카 문화의 최대 유적 분포지로, 110개소가 지표 조사 되었다. 중국 국경 내에는 두만강의 지류인 가야강(嘎呀河)과 혼춘강(琿春河) 주변에서도 크로우놉카 문화와 같은 성격의 퇀제 문화(團結文化) 유적이 알려져 ‘[[퇀제=크로우놉카문화|퇀제-크로우놉카 문화(團結-Кроуновская культура)]]’로도 불린다. 대표적인 유적은 [[크로우놉카-1유적|크로우놉카-1 유적]], [[올레니-A유적|올레니-A 유적(Памятник Олений-A)]], [[코르사콥스코예-2유적|코르사콥스코예-2 유적(Памятник Корсаковское-2)]], [[불로치카유적|불로치카 유적]] 14·15호-나, 함경북도 [[무산호곡동(범의구석)유적|범의구석 유적]] 5기의 37·44호, 범의구석 6기, [[회령오동유적6호|회령 오동 유적 6호]], [[퇀제유적|퇀제 유적]]의 아래층과 [[다청쯔유적|다청쯔 유적(大城子遗址)]] 1·2호 등이 포함된다. 크로우놉카 문화의 [[집자리|집자리]]는 장방형이 많지만, 크로우놉카-1 유적의 철기 시대 층과, 올레니-A 유적, [[키예프카-1유적|키예프카-1 유적]]의 일부 집자리에서 ‘여(呂)’자 모양도 조사되었다. 집자리 내에는 ‘ᄀ’자 모양 또는 ‘一’자 모양의 [[터널식화덕자리|터널식 화덕 자리]]가 확인되며, [[페트로바섬유적|페트로바 섬 유적(Памятник Остров Петрова)]]과 코르사콥스코예-2 유적에서는 ‘ᄃ’자 모양이 확인되었다. 화덕 자리는 대부분 [[돌두름식화덕자리|돌 두른 형태(圍石式)]]이다. 이 외에도 지상식 건물지와 창고 시설 등이 확인되었다. [[이즈베스톱카유적|이즈베스톱카 유적]]은 [[돌널무덤|돌널무덤(石棺墓)]]으로, 무덤에서 [[세형동검|세형동검]]과 [[청동거울|청동 거울(銅鏡)]], [[쇠도끼|쇠 도끼(鐵斧)]], [[쇠투겁창|쇠 투겁창(鐵鉾)]], [[쇠화살촉|쇠 살촉(鐵鏃)]] 등 철제품도 출토되었다. 크로우놉카 문화의 특징적인 토기는 [[굽다리토기|굽다리 토기(豆形土器)]]와 나무 막대 손잡이가 붙은 [[발형토기|바리 토기(鉢形土器)]]이다. 토기 외면은 갈아서(磨) 마감했다. 그 외에도 바닥에 구멍이 많은 시루(甑), 대형 [[항아리모양토기|항아리 모양 토기(壺形土器)]] 등이 출토되었다. 항아리 모양 토기는 높이가 60㎝ 이상이지만 바닥의 지름이 매우 작아서 집자리 바닥에 묻어서 사용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석기는 [[간돌도끼|간 돌도끼(磨製石斧)]]의 출토량이 가장 많고, 자루 부분이 원형으로 처리된 [[어깨달린돌도끼|어깨 달린 돌도끼(有肩石斧)]]가 많다. 토기 변화를 근거로 크로우놉카 문화는 세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Ⅰ기는 기원전 5세기, Ⅱ기는 기원전 3세기, Ⅲ기는 기원전 1세기부터 기원후 1세기까지이다. 동북한의 범의구석 5기의 집자리 일부와 범의구석 6기, 오동의 6호 집자리, 초도의 4기는 단결-크로우놉카 문화의 Ⅱ기로 편년된다. 여러 연구를 토대로 사료에서 나타난 ‘옥저’로 비정 가능한 기간은 퇀제-크로우놉카 문화의 Ⅲ기이다. 그러나 크로우놉카 문화의 연대를 기원전 5세기보다 더 이르게 보아서 기원전 7세기부터 시작되었다고 생각하거나, 기원전 5세기보다 더 늦게 시작해서 기원전 4세기부터 시작되었다고 보는 의견도 있다. ==참고문헌== * 강인욱. (2008). <i>고고학으로 본 옥저문화</i>. 동북아역사재단. https://www.riss.kr/link?id=M11514036 * 김재윤. (2016). 한중러 접경지역 철기시대 단결-크로우노프카 문화범위에 대한 검토. <i>한국상고사학보, 93</i>, 109–141. https://www.riss.kr/link?id=A102067274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이 문서에서 사용한 틀:
틀:개념정보
(
원본 보기
)
600-4614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