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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오자카타 유적(筑西 女方遺跡)}}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오자카타 유적 | 이칭별칭=지쿠세이 오자카타 유적, 축서 여방 유적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일본 | 소재지=일본 이바라키현(茨城県) 지쿠세이시(筑西市) 기누강(鬼怒川) 연안의 하안 단구(河岸段丘) | 성격=고분 | 키워드=[[재장묘]], [[항아리]], [[독널]], [[얼굴 달린 항아리 모양 토기]]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이창희 }} ==설명== 일본 이바라키현(茨城県) 지쿠세이시(筑西市) 기누강(鬼怒川) 연안의 하안 단구(河岸段丘)에 위치한다. 1939년부터 3년간 조사하여, 동일본에서 처음으로 [[야요이시대|야요이 시대]] 중기의 [[재장묘|재장묘(再葬墓)]]를 확인하였다. 재장묘는 동일본 지역에서 널리 사용된 묘제로 백골화된 사람 뼈를 [[항아리|항아리(壺)]], 혹은 [[독널|독널(壺棺)]]에 넣고, 2m 전후의 둥근 구덩이 안에 여러 개를 동시에 매장하는 장법이다. 유적은 면적 20㎡로, 41기의 재장묘가 밀집되어 있으며, 다수의 항아리와 독이 발견되었다. 출토된 230여 점의 토기 중 아가리에 사람의 얼굴 모양이 붙어 있는 높이 70㎝의 [[항아리모양토기|항아리 모양 토기(壺形土器)]]가 가장 유명하다. 동일본 지역의 재장묘에서 출토되는 항아리 중에는 드물게 아가리와 목 부분에 얼굴을 표현한 사례가 있지만 오자카타 유적 출토품은 그 중에서도 가장 정교하며, 그 모습이 눈가와 입가에 문신을 한 야요이인의 모습을 상상케 한다. 오자카타 유적은 [[조몬시대|조몬 시대]]와 야요이 시대의 전환기 양상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참고문헌== * 佐原眞, 工楽善通. (1989). <i>弥生の遺跡</i>. 有斐閣選書. https://ndlsearch.ndl.go.jp/books/R100000002-I000002011890 * 杉原荘介. (1958). 茨城県下館市女方遺跡の土器. <i>弥生土器集成, 1</i>. * 杉原荘介. (1983). 北関東弥生式土器の成立. <i>茨城県立歴史館報, 10</i>. * 田中國男. (1942). 常陸国女方遺跡の発掘に就いて. <i>古代文化, 13(5)</i>. * 田中國男. (1972). <i>縄文式·弥生式接触文化の研究</i>. 田中國男博士遺著刊行会. https://ndlsearch.ndl.go.jp/books/R100000001-I08111001000634771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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