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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보타이 유적(Памятник Ботай)}}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보타이 유적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카자흐스탄 | 소재지=카자흐스탄 북부 아예르타우(Айыртау) 지역 | 성격=복합유적 | 키워드=[[보타이 문화]], [[집자리]], [[저장 구덩이]], [[목축 문화]], [[말 사육]]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강인욱 }} ==설명== 카자흐스탄 북부 아예르타우(Айыртау) 지역에 위치한다. 기마 문화의 기원을 보여주는 카자흐스탄의 [[동석기시대|동석기 시대(銅石器時代)]] 유적이다. 유적에서는 대량의 말을 식용으로 사육하고 일부는 가축화하여 탈 것으로 이용한 증거들이 확인되었으며, 그 일대를 조사하여 [[보타이문화|보타이 문화]]로 명명하였다. 연대는 기원전 4000년기말~3000년기로 판단된다. 유적은 면적 15~30㏊에 이르는 대규모 취락으로, 각 마을은 약 300년 정도 존속하였다. 유적 내 [[집자리|집자리]]의 면적은 18~40㎡이고, 바닥에서 천장까지의 높이는 2.6m이다. 마을 배치의 특징은 집들 사이 연결 통로를 통해 서로 이어져 있다는 점이다. [[저장구덩이|저장 구덩이]]에서는 말고기를 저장하는 등 유적 곳곳에서 말뼈가 발견되었다. 말뼈 구덩이에서 발견된 말의 배설물을 조사한 결과 장기간 가두어 길렀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말뼈 이외에 빗살무늬(櫛文)를 새긴 토기 바닥에서는 말 젖(Кумыс)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이를 통해 정착 생활에서 초원 지대의 다양한 동물을 사냥하는 과정에서 야생마를 길들이는 법을 터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마을에는 약 7만 마리의 말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보타이 유적의 말은 유라시아의 야생 조랑말인 프르제발스키종(Лошадь Пржевальского)이다. 최근 현대의 말과 보타이의 말의 유전자 비교 연구에서 2.7%가 일치한다는 결과를 얻었다. 즉, 보타이 말과 현대의 길들여진 말은 직접적 관계가 없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외에 유적에서는 폐기된 집터에 무덤을 만들었다. 두개골만을 따로 모아서 2차장으로 매장한 흔적도 있다. 또한, 두정골(頭頂骨) 부위에 구멍이 있어 두개골 절개술이 이루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피장자들의 평균 연령은 40세이다. 기원전 3000년기 말~2000년기 초에 유라시아 대다수 지역에서 기후가 건조화되면서 말을 목축하는 생활이 어려워져 보타이 문화는 쇠퇴하였다. 하지만 그들이 만들어낸 [[목축문화|목축 문화]]는 유라시아 전역에서 지속되었다. 사람들은 말의 목축에 적합한 기후와 환경을 찾아서 우랄 남부, 카자흐스탄 동부, 그리고 아시아 동부로 이동하였다. 이러한 이주는 아시아에 등장한 최초의 인도유럽계 주민들의 확산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 * 데이비드 W. 앤서니. (2015). <i>말, 바퀴, 언어 : 유라시아 초원의 청동기 기마인은 어떻게 근대 세계를 형성했나</i>(공원국, 역). 에코리브르. https://www.riss.kr/link?id=M13922822 * Зайберт В.Ф. (2009). <i>Ботайская культура</i>. ҚазАқпарат.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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