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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지탑리 유적(鳳山 智塔里遺蹟)}}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지탑리 유적 | 이칭별칭=봉산 지탑리 유적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북한 | 소재지=황해북도 봉산군 지탑리 서흥천의 강안 대지 | 성격=복합유적적 | 키워드=[[집자리]], [[슴베 간 돌살촉]], [[간 돌검]], [[반달 돌칼]], [[갈돌]], [[팽이 토기]], [[돌도끼]], [[자루 간 돌검]], [[별도끼]], [[돌돈]]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장호수 }} ==설명== 황해북도 봉산군 지탑리 서흥천의 강안 대지에 위치한다. 1957년에 1지구와 2지구로 나누어 발굴 조사되었다. 조사 결과 [[청동기시대|청동기 시대]] 문화층과 함께 [[신석기시대|신석기 시대]] 문화층, 고대 문화층을 연속적으로 확인하였다. 1지구에서는 신석기 시대와 고대 문화층 사이에서 청동기 시대 문화층이 드러났다. 유물은 [[슴베간돌살촉|슴베 간 돌살촉]], [[간돌검|간 돌검]], [[반달돌칼|반달 돌칼]], [[갈돌|갈돌(耉石棒)]] 등의 [[석기|석기]]와 [[팽이토기|팽이 토기]]가 나왔다. 2지구에서는 [[집자리|집자리]] 1기가 나왔다. 집자리는 파괴된 상태로 나타났지만 동쪽과 남쪽 벽은 원래의 모습을 갖추고 있는데, 남북이 긴 평면 장방형으로 길이 5.6m, 너비 4m이며, 면적은 22.4㎡이다. 바닥은 0.05m 두께의 찰흙을 발라 불 다짐 처리하였다. 유물은 팽이 토기와 [[돌도끼|돌도끼]], 피 홈(血溝)이 있는 [[자루간돌검|자루 간 돌검(有柄式磨製石劍)]], 슴베 간 돌살촉(有莖式磨製石鏃), [[별도끼|별도끼(星形石斧)]], [[돌돈|돌돈(石貨)]] 그리고 벼루처럼 생긴 것 등의 석기류가 있다. 북한 지역에서 신석기 시대와 청동기 시대 문화층이 층위를 이루어 나온 것은 지탑리 유적에서 처음으로 알려졌기 때문에 청동기 시대 상대 연대 설정에 기준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유적이다. ==조사정보== {|class="listtable" ! class="col-type" | 유형 !! 조사 시기 !! 보고서명 !! 발간 연도 !! 조사 기관 |- | 발굴조사 || 1957년 || 지탑리 유적 발굴 중간 보고(1) || 1957 || |- | 발굴조사 || 1957년 || 지탑리유적발굴 중간보고(2) || 1957 || |- | 발굴조사 || 1957년 || 지탑리 원시 유적 발굴 보고 || 1961 || |} ==참고문헌== * 도유호, 황기덕. (1957). 지탑리 유적 발굴 중간 보고(1). <i>문화유산, 5</i>. http://db.history.go.kr/id/hb_999_02_069357 * 도유호, 황기덕. (1957). 지탑리유적발굴 중간보고(2). <i>문화유산, 6</i>. http://db.history.go.kr/id/hb_999_02_069358 * 도유호, 황기덕. (1961). 지탑리 원시 유적 발굴 보고. <i>유적발굴보고, 8</i>. http://db.history.go.kr/id/hb_999_01_028324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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