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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주의리 유적(鹽州 做儀里遺蹟)}}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주의리 유적 | 이칭별칭=염주 주의리 유적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북한 | 소재지=평안북도 염주군 주의리 | 성격=복합유적 | 키워드=[[나무 후치]], [[수레바퀴]], [[돌망]]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장호수 }} ==설명== 평안북도 염주군 주의리에 위치한다. 니탄층(泥炭層)에서 1958년에 처음 발견되어 [[나무후치|나무 후치(木嵩)]]와 [[수레바퀴|수레바퀴(車輪)]] 편이 나왔고, 1992년에는 두께 6m 정도의 니탄층을 발굴 조사하여 나무 후치 1점, 참나무 가공품 1점, [[돌망|돌망]] 2개를 확인하였다. [[후치|후치]]는 [[농공구|농사용 도구]]로 밭갈이 하는데 쓰인다. 주의리 유적에서 나온 나무 후치는 ‘ᄂ’자 모양으로 구부러진 참나무를 이용해 평후치 날을 만든 것이다. 날은 앞 끝면을 왼쪽으로 비스듬히 깎아 밭을 갈 때 흙이 왼쪽으로 제껴지게 하였다. 길이는 31㎝, 너비는 18㎝ 정도이다. 후치 날의 중심부와 좌우 그리고 손잡이 위쪽에 네모난 구멍이 뚫려 있다. 날의 턱진 부분에는 둥근 구멍이 두개 뚫렸는데 후치를 끌고 다니기 위해 부분품들을 맞추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후치의 크기는 아래대의 길이 80㎝, 윗대의 길이 10㎝ 정도이다. 수레바퀴에는 바퀴살을 끼우던 구멍이 4개 뚫려있다. 원 모습대로 복원하면 바퀴살은 모두 24개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 리기동, 리룡도. (1994). 평안북도 염주군 주의리에서 새로 발굴된 나무후치에 대하여. <i>조선고고연구, 1</i>. http://db.history.go.kr/id/hb_999_02_069369 * 조선유적유물도감 편찬위원회. (1989). <i>조선유적유물도감 2-고조선·부여·진국</i>. 외국문종합추판사. https://www.riss.kr/link?id=M11667988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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