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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장학리 장골 유적(星州 壯學里장골遺蹟)}}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장학리 장골 유적 | 이칭별칭=성주 장학리 장골 유적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대한민국 | 소재지=경상북도 성주군 선남면 장학리 산18-4·산21 일원 | 성격=복합유적 | 키워드=[[움무덤]], [[집자리]], [[삼각 덧띠 토기 독]], [[항아리]], [[굽다리 토기]], [[쇠창]], [[화덕자리]]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윤호필 }} ==설명== 경상북도 성주군 선남면 장학리 산18-4·산21 일원에 위치한다. 현풍-김천 간 고속 국도 건설에 앞서 2005년 조사하여, 장골 유적Ⅰ에서는 [[초기철기시대|초기 철기 시대]]의 [[움무덤|움무덤(土壙墓)]] 3기, 장골 유적Ⅱ에서는 초기 철기 시대 [[집자리|집자리]] 1기가 확인되었다. 유적이 입지한 곳은 성산의 남쪽 지맥 가운데 하나인 산 정상부(해발 286m)에서 남쪽으로 뻗은 2개 구릉의 말단부와 그 사이 계곡에 해당하는 곳이다. 움무덤은 등고선과 직교하며, 능선을 따라 분포한다. 세장방형이며 길이 2~2.5m, 너비 0.5~0.8m, 깊이 0.1~0.2m이다. 유물은 1호는 남쪽 긴 벽 쪽, 2·3호는 북쪽 긴 벽 쪽에 붙어서 출토되었다. 유물의 종류는 [[삼각덧띠토기독|삼각 덧띠 토기 독(三角形粘土帶土器甕)]], [[항아리|항아리(壺)]], [[굽다리토기|굽다리 토기(豆形土器)]], [[쇠창|쇠창(鐵鉾)]] 등이다. 집자리는 해발 76m에 위치한 화재 집자리이다. 원형에 가까우며, 길이 3.3m, 너비 2.45m, 깊이 0.62m이다. 내부 시설은 벽 기둥 구멍, [[화덕자리|화덕 자리]], 바닥 다짐 처리한 것 등이 확인된다. 유물은 덧띠 토기류로 뚜껑(蓋) 2점, 독 6점, 접시(杯) 1점, 바리(鉢) 1점, 손잡이(把手) 1점, 숫돌(砥石) 2점이 출토되었다. 장학리 장골 유적은 성주 지역에서 보기 드문 초기 철기 시대 유적으로서 학술적 의의가 있다. ==이미지== <gallery mode=packed heights=200px> File:성주_장학리_장골_유적_1호_움무덤.jpg File:성주_장학리_장골_유적_1호_움무덤_출토_유물.jpg </gallery> ==조사정보== {|class="listtable" ! class="col-type" | 유형 !! 조사 시기 !! 보고서명 !! 발간 연도 !! 조사 기관 |- | 발굴조사 || 2005년 04월 02일~2005년 11월 30일 || 성주 장학리 장골유적Ⅰ || 2008 ||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 |- | 발굴조사 || 2005년 04월 02일~2005년 11월 30일 || 성주 장학리 장골유적Ⅱ || 2008 ||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 |} ==참고문헌== *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 (2008). <i>성주 장학리 장골유적Ⅰ·Ⅱ</i>. https://www.riss.kr/link?id=M11742563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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