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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장지동 유적(廣州 墻枝洞遺蹟)}}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장지동 유적 | 이칭별칭=광주 장지동 유적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대한민국 | 소재지=경기도 광주시 장지동 190-1 일원 | 성격=복합유적 | 키워드=[[집자리]], [[송국리식 집자리]], [[팽이 토기]], [[바닥 구멍 토기]], [[바리 토기]]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강병학 }} ==설명== 경기도 광주시 장지동 190-1 일원에 위치한다. 2006~2007년 성남~장호원 간 도로 건설 공사의 일환으로 발굴하여 청동기 시대 [[집자리|집자리]] 8기와 원삼국~삼국(백제)시대의 집자리 16기, 도랑 2기, [[구덩이|구덩이]] 43기 등 총 69기가 조사되었다. 유적은 중대천과 직리천이 만나는 평탄한 충적대지상에 조성되어 있으며, 동쪽으로 400m 정도에서 경안천이 북류하고 북쪽으로 마주하는 구릉 정상부에 [[광주역동유적|역동 유적]]이 자리한다. 집자리의 평면 형태는 파괴가 심하여 정확한 형태 파악이 어렵지만 잔존 상태로 보아 세장방형(1호), 장방형(2·3·5·6·8호), 타원형(4호)으로 구분된다. 1호 집자리는 길이 15.2m, 너비 2.4m이며, 내부 시설은 벽 도랑(壁溝)과 기둥 구멍이 있다. 2~8호 집자리는 파괴가 심하여 정확한 구조 파악이 어렵다. 다만, 4호는 [[송국리식집자리|송국리식 집자리]]의 요소인 타원형 구덩이와 중심 기둥 구멍이 확인되며, 6호는 구덩식 화덕 자리(竪穴式爐址)가, 그리고 8호는 돌 깐 화덕 자리(敷石式爐址)가 확인되었다. 유물은 1호에서 [[돌끌|돌끌(石鑿)]], [[숫돌|숫돌(砥石)]], [[가락바퀴|가락바퀴]]가 출토되었으며, 6호에서 [[바닥구멍토기|바닥 구멍 토기(底部透孔土器)]] 편과 골아가리(口脣刻目文)가 시문된 [[바리모양토기|바리 토기(鉢形土器)]]가 출토되었다. 주목할 것은 2호 집자리에서 [[팽이토기|팽이 토기(角形土器)]]가 출토되어 [[연천삼거리유적|연천 삼거리]] 9호 집자리와 [[황주고연리유적|황주 고연리]] 1호 집자리, [[화천용암리유적|화천 용암리]] 52호 집자리의 출토품과 비교된다는 점이다. 방사성 탄소 연대는 3호 2530±20 BP(보정 연대 기원전 791~550년), 4호 2510±20 BP(보정 연대 기원전 780~543년), 8호 2545±20 BP(보정 연대 기원전 797~560년)로 측정되었다. 2호 집자리를 제외하고 집자리의 평면 형태, 출토 유물, 연대 측정 결과를 볼 때 대부분 송국리식 집자리와 병행 단계로 판단된다. ==이미지== <gallery mode=packed heights=400px> File:광주_장지동_유적_및_각_유적_출토_팽이_토기.jpg </gallery> ==참고문헌== * 경기문화재연구원. (2012). <i>광주 장지동 취락유적</i>.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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