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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월내동 상촌 고인돌군[麗水 月內洞上村支石墓群]}}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월내동 상촌 고인돌군 | 이칭별칭=여수 월내동 상촌 고인돌군, 여수 월내동 상촌 지석묘군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대한민국 | 소재지=전라남도 여수시 월내동 576-1 일원(상촌 고인돌Ⅰ), 543-1 일원(상촌 고인돌Ⅱ), 488 일원(상촌 고인돌Ⅲ) | 성격=고인돌 | 키워드=[[고인돌]], [[민무늬 토기]], [[구멍무늬 토기]], [[붉은 간 토기]], [[그물추]], [[돌검]], [[돌살촉]], [[돌도끼]], [[홈자귀]], [[돌끌]], [[갈돌]], [[갈판]], [[숫돌]], [[돌낫]], [[가락바퀴]], [[비파형동검]], [[흔암리식 토기]], [[역삼동식 토기]], [[항아리 모양 토기]]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조진선 }} ==설명== 전라남도 여수시 월내동 576-1 일원(상촌 고인돌Ⅰ), 543-1 일원(상촌 고인돌Ⅱ), 488 일원(상촌 고인돌Ⅲ)에 위치한다. 상촌 고인돌Ⅰ은 호남정유 저유탱크 시설 확장 부지에 포함되어 1990년 국립광주박물관에서 발굴 조사하였고, 상촌 고인돌Ⅱ·Ⅲ는 여수 GS칼텍스 공장증설부지에 포함되어 2007~2010년 동북아지석묘연구소에서 발굴 조사하였다. 고인돌군은 영취산(해발 510m)에서 광양만 쪽으로 흘러내린 산줄기가 완만해지는 지점에 자리한다. 3개의 고인돌군은 서로 30~100m 정도씩 떨어져 있는데 상촌 고인돌Ⅰ, 상촌 고인돌Ⅱ, 상촌 고인돌Ⅲ이 동쪽에서 서쪽 순으로 분포한다. 상촌 고인돌Ⅰ은 동서 50m, 남북 30m 정도의 범위에 분포하는데, 마을 뒤로 난 소로(小路)의 나지막한 고갯마루에 해당한다. 원래 35기 이상의 [[고인돌|고인돌]]이 분포한 것으로 전해지지만 상당수의 덮개돌을 비롯한 유구들은 이동되거나 파괴되었다. 발굴 조사 착수 시에는 26개의 덮개돌이 있었지만 이마저도 이동된 것이 대부분 이어서 하부 구조 위에 제대로 남아 있었던 것은 4기뿐이었다. [[덮개돌|덮개돌]]의 석질은 모두 안산암 계열인데, 현지에서 채석된 암석을 그대로 썼던 것으로 생각된다. 덮개돌은 평면 장방형이나 모서리가 둥근 타원형이다. 가장 큰 것은 10.5톤 정도이고, 가장 작은 것은 0.6톤 정도이다. [[받침돌|받침돌(支石)]]은 6기에서 확인되었다. [[무덤방|무덤방(石槨)]] 가운데 절반 이상에는 막돌이나 넓적한 판돌으로 만든 묘역 시설(墓域施設)이 있는데, 평면 형태는 원형이나 타원형이 많지만 장방형도 있다. 무덤방은 대부분 장방형으로 무덤 구덩이를 파고 깬돌을 쌓아 축조하였다. 장축 방향은 남북 방향이 2/3, 동서 방향이 1/3가량이지만 규칙성을 파악하기는 어렵다. 무덤방 바닥에는 대개 크고 작은 깬돌을 깔았으나 판돌을 한 장만을 깔거나 판돌 한 장과 잔자갈을 함께 깐 것도 있고, 맨바닥 그대로인 것도 있다. 무덤방에는 대부분 뚜껑돌(蓋石)이 덮여 있는데, 얇고 길다란 판돌을 부분적으로 겹치도록 얹고 그 사이의 틈새는 잔돌로 메꾸었다. 무덤방 가운데 가장 큰 것은 길이 1.77m, 너비 0.51m, 깊이 0.3m이고, 가장 작은 것은 길이 0.4m, 너비 0.35m, 깊이 0.15m이다. 펴묻기가 가능한 길이 1.6m 이상은 11기에 불과하고 나머지 20여 기는 그보다 작다. 그 가운데 4기는 0.7m 미만인데, 이러한 무덤방은 [[이차장|이차장(二次葬)]]일 가능성도 있지만 어린 아이의 무덤일 수도 있다. 출토 유물로는 토기와 석기가 있다. 토기로는 [[민무늬토기|민무늬 토기]], [[구멍무늬토기|구멍무늬 토기(孔列土器)]], [[골아가리구멍무늬토기|골아가리 구멍무늬 토기(口脣刻目孔列土器)]], [[붉은간토기|붉은 간 토기]]가 주종을 이룬다. 21호 고인돌의 무덤방 안에서는 토제 [[그물추|그물추]]가 출토되었다. 석기는 모두 71점이 출토되었다. [[돌검|돌검]], [[돌살촉|돌살촉(石鏃)]], [[돌도끼|돌도끼(石斧)]], [[홈자귀|홈자귀(有溝石斧)]], [[대패날자귀|대패날 자귀]], [[돌끌|돌끌(石鑿)]], [[갈돌|갈돌]], [[갈판|갈판]], [[숫돌|숫돌(砥石)]], [[돌낫|돌낫(石鎌)]], [[가락바퀴|가락바퀴]]와 쓰임새가 불분명한 원판형 석기(圓板形石器) 및 새김무늬 판돌 등이 있다. 돌검은 11점인데, 자루식(有柄式)과 슴베식(有莖式)이 있다. 돌살촉은 13점인데, 대부분 슴베나 화살촉 끝이 떨어져 나간 파손품이다. 이밖에도 8호 고인돌에서 볍씨자국 토기가 출토되었다. 볍씨자국은 작은 토기 몸통 조각의 겉면에 박혀 있으며, 크기는 길이 6.3㎜, 너비 3.7㎜이다. 이는 상촌 고인돌Ⅰ이 벼농사(稻作農耕) 단계에 들어서있었음을 말해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또한 당시 사람들의 삶의 기반이 농경에 바탕을 두었음을 말해준다. 상촌 고인돌Ⅱ는 영취산에서 북쪽으로 흘러내린 구릉 끝자락에 해당하는 해발 64~66m 에 위치한다. 조사 전에 19기의 덮개돌(上石)이 확인되었지만, 발굴 결과 고인돌 19기, 돌널(石棺·石槨) 23기, 묘역 고인돌(墓域支石墓) 7기, 원형 돌더미(集石) 3기가 조사되었다. 이와 더불어 집자리 5기도 확인되었다. 고인돌 19기는 덮개돌만 확인된 것이 3기, 덮개돌과 하부 구조가 모두 확인된 것이 15기, 하부 구조만 확인된 것이 1기이다. 덮개돌은 다양한 형태들이 확인되지만 평면 장방형과 타원형이 다수이다. 무게는 0.2~12톤이다. 3호와 19호 고인돌은 이중 덮개돌(二重蓋石)로 확인되었다. 받침돌(支石)은 덮개돌이 없어 무덤방石室만 확인된 7호 고인돌에서만 4개가 확인되었다. 묘역 시설은 13기에서 확인되는데 그 안에 무덤방이 축조되었다. 묘역 시설의 형태는 방형, 장방형, 원형, 타원형, 부정형으로 다양하다. 뚜껑돌(蓋石)은 없는 것도 있지만 1~2중으로 된 것도 있다. 무덤방은 깬돌을 이용해서 축조한 돌덧널형이다. 바닥 시설은 일부분만 처리한 것과 굴착면을 그대로 이용한 것으로 구분된다. 돌널은 23기이다. 돌덧널형(石槨形) 19기, 돌널형(石棺形) 1기, 혼축형(混築形) 3기여서 돌덧널형이 많다. 묘역 시설은 7기에서 확인되었다. 바닥 시설은 전면을 자갈로 깐 것, 한 부분이나 세 부분을 깐 것, 굴착면을 그대로 이용한 것이 있다. 묘역 고인돌은 7기이다. 묘역 시설은 평면 방형, 장방형, 원형이고 그 안에 무덤방이 축조되었다. 원형 돌더미는 3기이다. 묘역 시설 이외의 다른 시설은 확인되지 않았다. 돌검, 돌살촉 등이 출토되었다. 상촌 고인돌Ⅱ에서 출토된 유물로는 [[비파형동검|비파형동검]]과 함께 [[돌검|돌검]] 편, 돌살촉, 돌도끼, 민무늬 토기 등이 있다. 무덤방 내부에서 출토된 유물로는 비파형동검 2점, 돌검 1점, 돌살촉 2점, 민무늬 토기 아가리 편 1점, 토기 바닥 1점이다. 이를 제외한 나머지는 주변 조사 과정에서 수습된 유물들로 대부분 파편이다. 집자리는 산기슭 끝자락에서 5기가 조사되었는데 대부분 풍화 암반층을 파서 축조되었다. 청동기 시대 이른 시기의 장방형 집자리 2기와 송국리식 원형 집자리 1기, 내부 시설이 확인되지 않은 장방형과 방형 집자리 2기이다. 청동기 시대 이른 시기의 1호와 2호 집자리는 서로 20m 정도 떨어져 있다. 1호 집자리는 장방형으로 내부 시설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아가리에 시문(施文)한 토기가 출토되었다. 2호 집자리는 장방형으로 내부에서 평면 원형의 무시설식(無施設式) 화덕 자리 2개가 확인되었다. 송국리식인 3호 집자리는 2호 집자리의 남동쪽 일부를 파괴하고 축조되었다. 내부에서 타원형 구덩이와 외곽에 배치된 4개의 기둥 구멍(柱孔)이 확인되었다. 집자리에서는 30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1호 집자리에서는 [[흔암리식토기|흔암리식 토기]], [[역삼동토기|역삼동 토기,]] [[항아리모양토기|항아리 모양 토기(壺形土器)]]바닥이 출토되었다. 2호 집자리에서는 돌도끼, 미완성 석기가 출토되었다. 3호 집자리에서는 홈자귀(有溝石斧), 갈판, 숫돌등이 출토되었다. 4호와 5호 집자리에서는 토기 바닥 편이 출토되었다. 상촌 고인돌Ⅲ은 영취산에서 북쪽으로 흘러내린 구릉 끝자락에 해당하는 해발 62.5~70m에 위치한다. 발굴 결과, 고인돌 149기, 돌더미 및 석열 유구(石列遺構) 4기, 집자리 6기가 확인되었다. 고인돌은 5개 군집으로 구분할 수 있다. 가·나·라군은 열상배치(列狀配置)로 1열을 이루고 있으며, 다군은 3열을 이루고 있다. 1호 고인돌은 마군에서 230㎝정도 떨어져 단독으로 조영되어 있다. 덮개돌이 초대형이고 매장 시설(埋葬施設)이 없이 받침돌만 확인되는 점에서 묘표석(墓標石)일 가능성이 크다. 가군은 2~14호로 총 18기이다. 덮개돌과 하부 구조가 모두 확인된 것 11기, 하부 구조만 확인된 것 7기이다. 나군은 15~30호로 총 19기이다. 덮개돌만 확인된 것 2기, 덮개돌과 하부 구조가 모두 확인된 것 12기, 하부 구조만 확인된 것 5기이다. 다군은 31~48호로 총20기이다. 덮개돌과 하부 구조가 모두 확인된 것 17기, 하부 구조만 확인된 것 3기이다. 라군은 49~60호로 총 11기이다. 덮개돌만 확인된 것 3기, 덮개돌과 하부 구조가 모두 확인된 것 6기, 하부 구조만 확인된 것 2기이다. 이와 함께 석열 유구 2기도 있다. 마군은 61~128호로 총 80기이다. 덮개돌만 확인된 것 8기, 덮개돌과 하부 구조가 모두 확인된 것 37기, 하부 구조만 확인된 것 35기이다. 돌더미 유구 2기도 있다. 따라서 상촌 고인돌Ⅲ의 149개 유구 중에서 덮개돌만 확인된 것은 13기, 덮개돌과 하부 구조가 모두 확인된 것은 84기, 하부 구조만 확인된 것은 52기이다. 석열 유구 2기와 돌더미 유구 2기도 있다. 덮개돌의 평면 형태는 장방형, 삼각형, 부정형 등으로 다양하다. 무게는 0.2~89톤이지만 대부분 10톤 이하이다. 받침돌은 돌널의 외곽을 두룬 것과 받침돌만 둘러져 있는 것으로 구분된다. 전자는 4기, 후자는 7기이다. 묘역 시설은 장방형, 타원형, 방형, 원형 등이 있지만 장방형이 많다. 그리고 단일묘역보다는 대형 고인돌에 연접하여 축조된 것이 많다. 묘역 시설 안에는 무덤방이 1개 또는 2개가 있지만, 묘역 시설만 확인된 것도 있다. 뚜껑돌은 1~3중으로 덮은 것과 없는 것이 있는데, 대부분 1~2중으로 덮었다. 무덤방은 돌널형·돌덧널형·혼축형·토광형과 돌두름형이 있다. 무덤방의 장축 방향은 대부분 등고선과 평행하게 동서 방향으로 축조하였지만 가군과 마군에는 등고선 방향과 직교하는 무덤방도 있다. 나군은 돌덧널형만 확인되고 나머지에서는 다양하게 확인되지만 전체적으로 돌덧널형이 많다. 바닥 시설은 무덤방의 일부분만 처리한 것과 굴착면을 그대로 이용한 것이 있다. 출토 유물은 비파형동검, 돌검, 돌살촉, 돌도끼, 민무늬 토기 등 126점이다. 집자리는 청동기 시대 이른 시기의 장방형 집자리 2기, 송국리식 원형 집자리 2기, 정확한 형태를 알 수 없는 집자리 2기이다. 1호 집자리는 마군의 남쪽에서 확인되었고, 2호 집자리는 가군의 서쪽에서, 3호~6호집자리는 북쪽에서 조사되었다. 대부분 풍화 암반층을 파고들어가 만들었다. 청동기 시대 이른 시기 집자리인 1호와 2호 집자리는 서로 4.6m정도 떨어져 있다. 1호 집자리는 평면 장방형으로 내부에 무시설식 화덕 자리 1개와 저장 구덩이 1개가 있다. 2호 집자리는 평면 장방형으로 추정되며, 내부에서 벽 도랑壁溝과 불탄 흙이 확인된다. 송국리형은 3·5호 집자리로 서로 2.8m정도 떨어져 있다. 집자리 출토 유물로는 10점이 있다. 1호 집자리에서는 역삼동식 토기, 갈돌, 숫돌이 출토되었다. 3호 집자리에서는 토기 바닥 편, 홈자귀가 출토되었다. 5호 집자리에서는 돌끌, 갈돌, 미완성 석기가 출토되었다. 월내동 고인돌군은 청동기 시대 이른 시기부터 긴 시간동안 조영된 것으로 생각된다. 상촌 고인돌Ⅱ에서 조사된 고인돌과 돌널의 방사성 탄소 연대는 2350~3080 BP, 집자리는 2410~2820 BP로 확인되었다. 상촌 고인돌Ⅲ에서 고인돌의 방사성 탄소 연대는 몇 건을 제외하면 대체로 2250~3000 BP의 범위를 보이며, 집자리는 2740~2950 BP를 보인다. 월내동 고인돌군에서는 각각 수십 기에서 백수십 기에 이르는 고인돌과 돌널들이 확인되었다. 또한 청동기 시대 이른 시기부터 [[송국리문화|송국리 문화]] 단계에 걸친 집자리들이 조사되었다. 특히, 상촌 고인돌 Ⅱ와 Ⅲ에서는 다수의 비파형동검이 출토되어 우리나라 청동기 문화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해 주었다. 상촌 고인돌Ⅱ의 7호 고인돌에서는 길이 35.7㎝, 상촌 고인돌Ⅲ의 116호 고인돌에서는 길이 43.2㎝의 비파형동검이 출토되었다. 이처럼 대형화 된 비파형동검들이 한반도 중남부 지역에 등장하게 된 계기 역시 밝혀야 할 문제이다. ==이미지== <gallery mode=packed heights=200px> File:여수_월내동_상촌_고인돌_7호_고인돌_출토_청동_검.jpg File:여수_월내동_상촌_고인돌군_전경.jpg File:여수_월내동_상촌_고인돌군_하부_구조_전경.jpg </gallery> ==조사정보== {|class="listtable" ! class="col-type" | 유형 !! 조사 시기 !! 보고서명 !! 발간 연도 !! 조사 기관 |- | 발굴조사 || 1990년 || 여수 월내동 고인돌 || 1992 || 국립광주박물관 |- | 발굴조사 || 2007년~2010년 || 여수 월내동 상촌 지석묘 || 2012 || 동북아지석묘연구소 |} ==한국고고학저널== * "[http://portal.nrich.go.kr/kor/journalUsrDtlView.do?menuIdx=801&idx=6&d_idx=230 남해안 여수반도의 청동기시대 공동묘지에서 비파형동검이 발굴되다]", <i>2010 한국고고학저널</i>. ==참고문헌== * 국립광주박물관. (1992). <i>여수 월내동 고인돌</i>. * 동북아지석묘연구소. (2012). <i>여수 월내동 상촌 지석묘Ⅱ</i>. https://www.riss.kr/link?id=M13469126 * 동북아지석묘연구소. (2012). <i>여수 월내동 상촌 지석묘Ⅲ</i>. https://www.riss.kr/link?id=M13469105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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