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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원암리 고인돌군(平原 院岩里支石墓群]}}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원암리 고인돌군 | 이칭별칭=평원 원암리 고인돌군, 평원 원암리 지석묘군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북한 | 소재지=평안남도 평원군 원암리 | 성격=고인돌 | 키워드=[[고인돌]], [[침촌형 고인돌]], [[묵방형]], [[돌도끼]]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장호수 }} ==설명== 평안남도 평원군 원암리에 위치한다. 원암리에는 50여 기의 [[고인돌|고인돌]]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나 현지 조사 당시에는 14기가 확인되었다. 원암리 마을 서남쪽에 있는 산봉우리에서 서쪽으로 뻗어 내린 능선에 7기, 그곳에서 800m 거리에 1기, 원암리 마을에서 2㎞ 거리에 4기, 산 뒤에 2기 등이 있다. 이들 고인돌은 모두 평지보다 0.4~0.5m 높은 흙무지 위에 놓였다. 고인돌은 대부분 파괴되었고 어느 정도 제 모습을 갖추고 있는 3·4·5·8호는 [[침촌형고인돌|침촌형(沈村型) 고인돌]]임을 알 수 있다. 5호의 덮개돌(上石)은 길이 3.4m, 너비 2.6m, 두께 0.65m이며, 덮개돌 가장자리에서 약 1m 구역에 깬돌(割石)을 2~3겹 깔아 놓은 묘역 시설(墓域施設)이 북쪽의 일부에 남아 있다. 무덤방(墓室)은 길이 0.16m, 너비 1m, 높이 0.2m로 덮개돌 0.4m 아래에 납작한 판돌(板石)을 쌓아 만들고 바닥은 진흙을 깔고 그 위에 손바닥 크기의 점판암을 깔았다. 8호의 덮개돌은 거북이 등 모양으로 길이 3.7m, 너비 3.4m, 두께 0.5m이며, 묘역 시설이 있다. 무덤방은 길이 2.12m, 너비 0.53m, 높이 0.4m이며, 세 벽은 깬돌을 2단으로 쌓고 한 벽은 긴 판돌 1매를 막아 만들었다. 출토 유물은 14호 주변에서 수습한 [[돌도끼|돌도끼]] 1점이 있다. 원암리 고인돌은 덮개돌 아래에 깬돌을 쌓아 무덤방을 만들고 무덤방 둘레에 묘역 시설을 갖춘 형식으로 침촌형이지만 [[묵방형고인돌|묵방형]]에 가깝다. ==참고문헌== * 석광준. (2003). <i>각지고인돌무덤조사 발굴보고</i>. 백산자료원. https://www.riss.kr/link?id=M9095742 * 윤춘호. (1994). 원암리고인돌에 대하여. <i>조선고고연구, 4</i>. http://db.history.go.kr/id/hb_999_02_069464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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