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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어량리 유적(益山 漁梁里遺蹟)}}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어량리 유적 | 이칭별칭=익산 어량리 유적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대한민국 | 소재지=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망성면 어량리 산193-9·산184 일원 | 성격=복합유적 | 키워드=[[집자리]], [[구덩이]], [[돌널무덤]], [[돌뚜껑움무덤]], [[움무덤]], [[독무덤]], [[송국리식 집자리]], [[민무늬 토기]], [[숫돌]], [[돌살촉]], [[대롱옥]], [[가락바퀴]]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박서현 }} ==설명==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망성면 어량리 산193-9·산184 일원에 위치한다. 호남 고속 철도 건설(익산-광주 간)에 따라 2010년 조사되었다. 조사 구역은 가지구와 나지구로 구분되는데 약 1㎞ 떨어져 있으나 같은 구릉에 해당한다. 유적은 미륵산에서 금강 방향으로 뻗은 구릉에 위치한다. 가지구는 해발 25m정도로 낮은 구릉 지대이며, 나지구는 해발 30m의 나지막한 평지성 구릉 사면부에 해당한다. 서쪽으로는 어량천(魚梁川)이 흐르며, 어량천 주변에 형성된 해발 5~10m 충적지대는 농경지를 이룬다. 가지구에는 [[청동기시대|청동기 시대]] [[집자리|집자리]] 5기, [[구덩이|구덩이]] 3기, [[도랑|도랑]] 1기, [[돌널무덤|돌널무덤(石棺墓)]] 1기, [[돌뚜껑움무덤|돌뚜껑움무덤(石蓋土壙墓)]] 5기, [[움무덤|움무덤]] 8기, [[독무덤|독무덤(甕棺墓)]] 9기와 삼국 시대 [[분구묘|분구묘(墳丘墓)]] 1기가 확인되었다. 집자리는 구릉 정상부와 사면에 분포한다. 평면 형태는 원형이며 내부에 타원형 구덩이와 [[기둥구멍|기둥 구멍(柱孔)]]이 배치된 [[송국리식집자리|송국리식 집자리]]이다. 1호 집자리는 지름 5.05~5.26m, 잔존 깊이 0.66m로 가장 크다. 3호와 4호 집자리는 중복되었는데 4호가 늦게 축조되었다. 4호는 2개의 중심 기둥 구멍과 함께 보조 구멍이 확인되었다. 5호 집자리에서 벽 도랑(壁溝)이 확인되었으며, 유실된 서쪽 벽 부분을 제외하고는 벽 전면에서 확인된다. 집자리 출토 유물은 [[민무늬토기|민무늬 토기]] 편과 [[숫돌|숫돌(砥石)]], [[돌살촉|돌살촉(石鏃)]] 및 돌살촉 미완성품과 함께 [[대롱옥|대롱옥(管玉)]]이 2·4호 집자리에서 출토되었다. 무덤은 구릉 정상과 사면에 분포한다. 돌널무덤과 돌뚜껑움무덤은 주로 구릉 정상에 인접하여 움무덤과 독무덤은 사면에 위치한다. 1기만 확인된 돌널무덤을 제외하고는 무덤의 성격에 따라 군집된 양상을 보인다. 돌널무덤은 무덤 구덩이(墓壙)를 2단으로 판 뒤 가운데 판돌을 이용하여 널(棺)을 조성하였다. 구덩이와 널 사이는 사질 점토로 채웠다. 돌널은 평면 형태가 세장방형이며 길이 1.22m, 너비 0.31m, 깊이 0.4m이다. 돌널의 바닥은 토기를 깨트려 시설하였으며, 바닥 시설이 없는 곳에는 소형 구덩이가 확인되었다. 뚜껑돌은 판돌형 석재를 이용하여 짧은 벽에 걸쳐 덮었다. 돌뚜껑움무덤은 무덤 구덩이를 2단으로 판 뒤, 3호를 제외하고 바닥에 사질 점토로 다진 후에 토기를 깨트려 시설하였다. 모두 바닥에서 소형 구덩이가 확인되었다. 1~3호는 소형 구덩이 내 시설이 없으며, 4호는 점토 다짐+토기 바닥, 5호는 점토 다짐 처리하였다. 규모는 가장 큰 1호 돌뚜껑움무덤이 길이 2.1m, 너비 1.25m, 잔존 깊이 0.5m이다. 뚜껑돌은 판돌형 석재를 이용하였다. 움무덤은 돌뚜껑움무덤과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4·5호를 제외하고 바닥을 점토로 다진 뒤 토기를 깨트려 시설하였다. 4호 움무덤은 바닥에서 아무런 시설도 확인되지 않았고, 5호 움무덤은 바닥에 깔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토기 몇 점만이 확인되었다. 다만 돌뚜껑움무덤 대부분에서 확인되었던 작은 구덩이 6·7호에서만 확인되었으며, 구덩이 내부에도 점토를 다진 것과 토기 바닥 시설이 확인되었다. 가장 대형인 8호 움무덤은 잔존 길이 1.45m, 너비 0.58m, 잔존 깊이 0.08m이다. 독무덤은 옆으로 눕히거나(橫置), 수직으로 놓거나(直置), 비스듬히 눕히는(斜置) 등 다양한 안치 방식을 보인다. 주로 구릉 하부에서는 수직 혹은 비스듬히 눕혀 안치한 독널들이 분포한다. 옆으로 눕혀 안치한 독무덤은 여러 개체의 독을 깨트려 관을 짜듯 조성하였다. 특히 4호 독무덤은 독널의 벽을 ‘ᄑ’자 모양으로 돌널을 짜듯 제작하였으며, 바닥은 사질 점토로 다짐한 후 토기 편을 깔아 시설하였다. 수직 혹은 비스듬히 안치한 독무덤의 경우 1개체의 토기를 관으로 사용하였으며, 그 위에 토기를 뒤집어 얹어 뚜껑으로 사용하였다. 일부 독널은 바닥에 구멍을 뚫었으며, 9호는 무덤 구덩이 바닥에 닿는 몸통에 구멍을 뚫은 흔적이 확인된다. 무덤에서 출토된 유물은 1호 독널에서 관옥 30점 뿐이며, 그 외에는 확인되지 않았다. 구덩이는 주로 집자리 인근에서 확인되는데 1호 구덩이에서는 목탄이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유물은 민무늬 토기 편과 돌살촉 편이 출토되었다. 도랑은 구릉 정상부에 위치하며 일부만 확인되어 조사 경계 밖 사면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추정된다. 남아 있는 상태로 보아 바닥면이 두 갈래였던 것으로 보이며 출토 유물은 [[가락바퀴|가락바퀴]]와 민무늬 토기 편이 확인되었다. 나지구에서는 돌널무덤 4기와 독무덤 1기가 평지성 구릉의 정상부에서 확인되었다. 돌널무덤은 대부분 삭평되어 유실되었으며 뚜껑돌이 확인된 1호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벽석만 남아 있다. 주로 판돌을 이용하여 돌널을 조성하였다. 1호는 바닥석을 시설하였으며 2호는 토기를 깨트려 바닥 시설을 한 것으로 보인다. 독무덤은 무덤 구덩이를 판 뒤 옆으로 눕혀 독널을 안치하였다. 2개체의 대형 독널을 깨트려 벽과 상면을 덮는 형태로 조성하였다. 출토 유물은 4호 돌널무덤에서 돌살촉이 확인되었다. 어량리 유적에서 확인된 여러 형태의 무덤들은 공간적 분할이 이루어졌지만, 돌널무덤을 비롯한 돌뚜껑움무덤, 움무덤에서 토기를 깔아 바닥 시설을 하였으며 내부 바닥에는 소형 구덩이가 확인되는 공통적인 요소를 나타낸다. 또한 옆으로 눕혀 안치한 일부 독널에서도 토기를 깔아 바닥 시설을 한 흔적이 보인다. 이는 움무덤과 독무덤에 돌널무덤과 돌뚜껑움무덤의 요소를 일부 취한 것으로 판단된다. 어량리 유적은 하나의 공간내에 송국리식 집자리를 비롯한 [[송국리문화|송국리 문화]]와 관련된 무덤들이 모두 확인되었다는 점에서 주목 할만하다. 방사성 탄소 연대는 가지구 4호 집자리에서 2450±40 BP(보정 연대 기원전 480년)로 측정되었다. ==이미지== <gallery mode=packed heights=200px> File:익산_어량리_유적_1호_독무덤.jpg File:익산_어량리_유적_1호_돌널무덤.jpg File:익산_어량리_유적_4호_집자리.jpg File:익산_어량리_유적_7호_움무덤.jpg </gallery> ==조사정보== {|class="listtable" ! class="col-type" | 유형 !! 조사 시기 !! 보고서명 !! 발간 연도 !! 조사 기관 |- | 발굴조사 || 2007년~2008년 || 익산 장선리·어량리유적 || 2012 || 호남문화재연구원 |} ==참고문헌== * 호남문화재연구원. (2012). <i>익산 장선리·어량리유적</i>. https://www.riss.kr/link?id=M13129544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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