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이동
주 메뉴
주 메뉴
사이드바로 이동
숨기기
둘러보기
대문
최근 바뀜
임의의 문서로
미디어위키 도움말
한국고고학사전
검색
검색
보이기
로그인
개인 도구
로그인
600-1916 문서 원본 보기
문서
토론
한국어
읽기
원본 보기
역사 보기
도구
도구
사이드바로 이동
숨기기
동작
읽기
원본 보기
역사 보기
일반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
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
특수 문서 목록
문서 정보
보이기
사이드바로 이동
숨기기
←
600-1916
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관리자
.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DISPLAYTITLE:양교리 유적(平澤 梁橋里遺蹟)}}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양교리 유적 | 이칭별칭=평택 양교리 유적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대한민국 | 소재지=경기도 평택시 오성면 양교리 1106 일원 | 성격=복합유적 | 키워드=[[집자리]], [[고인돌]], [[돌널무덤]], [[매납 유구]]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서길덕 }} ==설명== 경기도 평택시 오성면 양교리 1106 일원에 위치한다. 평택 오성 지방 산업 단지 조성 사업의 일환으로 2005~2008년에 조사되었다. 조사 결과 [[집자리|집자리]] 44기, [[고인돌|고인돌]] 2기, [[돌널무덤|돌널무덤(石棺墓)]] 2기, [[매납유구|매납 유구]] 2기가 확인되었다. 오성면 양교리 일대의 지형은 오봉산(110m)을 중심으로 해발 50~60m 정도의 낮은 구릉이 발달해 있고 남쪽으로 황구지천 변을 따라 형성된 준평원이 펼쳐져 있다. 유적이 있는 곳은 야트막한 구릉 지대로, 남쪽에 인접하여 [[평택양교리890유적|양교리 890 유적]]이, 북서쪽에 [[평택토진리유적|토진리 유적]]이 자리하고 있다. 집자리의 평면 형태는 세장방형, 장방형, 방형, 원형으로 구분된다. 우선, 세장방형 집자리는 모두 2기(1지점 3호, 2-1지점 1호)로, 2-1지점 1호는 길이 22.73m, 너비 3.8m이다. 내부 시설은 [[화덕자리|화덕 자리]]와 [[저장구덩이|저장 구덩이]], 기둥 구멍이 있다. 화덕 자리는 무시설식이고 저장 구덩이는 주로 모서리에 설치되어 있다. 유물은 [[민무늬토기|민무늬 토기]], [[골아가리구멍무늬토기|골아가리 구멍무늬 토기(口脣刻目孔列土器)]] 편, [[통자루간돌검|통자루 간 돌검(一段柄式磨製石劍)]], [[턱슴베간돌살촉|턱 슴베 간 돌살촉(二段頸式石鏃)]], [[가락바퀴|가락바퀴]]가 나왔다. 장방형 집자리는 모두 6기(1지점 7·12호, 2-1지점 2·4·6호, 2-2지점 3호)이다. 크기는 길이 3.6~8.9m, 너비 1.7~3.5m 정도이다. 내부 시설은 화덕 자리, 저장 구덩이, 벽 도랑(壁溝), 기둥 구멍이 있다. 화덕 자리는 무시설식과 구덩식이 함께 관찰된다. 저장 구덩이는 모서리나 벽면 아래에 설치되어 있다. 유물은 민무늬 토기, [[구멍무늬토기|구멍무늬 토기(孔列土器)]], [[숫돌|숫돌(砥石)]] 등이 있다. 방형 집자리는 모두 6기(1지점 8호, 2-1지점 10호, 2-2지점 6·7·9호, 3지점 2호이며, 길이 3.7~5.4m, 너비 2.5~4.6m 정도이다. 내부 시설은 화덕 자리, 기둥 구멍, 타원형 구덩이, 벽 도랑이 있다. 방형 집자리 중에는 화덕 자리가 있는 것과 없는 것으로 나뉘며, 없는 것은 중심 기둥 구멍과 타원형 구덩이를 갖추고 있다. 3지점 2호 집자리는 말각 방형에 2주식과 중심축에서 벗어난 구덩이를 갖춘 [[화성반송리유적|화성 반송리 유적]]의 집자리와 거의 비슷하다. 이밖에 2-2지점 6호와 7호에서 벽 도랑이 벽에서 바닥을 가로질러 타원형 구덩이로 연결된 점이 특징이다. 이러한 예는 이웃한 토진리 산29-1 유적에서도 확인된다. 유물은 민무늬 토기, 구멍무늬 토기(孔列土器), [[골아가리토기|골아가리 토기(口脣刻目土器)]], [[바닥구멍토기|바닥 구멍 토기(低部透孔土器)]], [[통슴베돌살촉|통슴베 돌살촉(一段莖式石鏃)]], [[외날돌도끼|외날 돌도끼(片刃石斧)]] 등이 나왔다. 원형 집자리는 모두 6기(2-1지점 9호, 2-2지점 11·12·16·17호)이다. 집자리의 지름은 3.6~5m 정도이고 내부 시설은 중심 기둥 구멍과 타원형 구덩이, 벽 도랑이 있다. 중심 기둥은 2주식 또는 6주식(2-2지점 16호)이 확인된다. 유물은 주로 민무늬 토기 편이 있으며, 간 돌검, 간 돌살촉, 외날 돌도끼(片刃石斧)가 나왔다. 고인돌은 2-1지점 구릉 마루(해발 64m)에서 2기가 인접한 상태로 확인되었다. 1호의 뚜껑돌(蓋石)은 평면 형태가 타원형이고 길이 1.43m, 너비 1.26m, 두께 0.71m이다. 장축은 진위천 방향과 나란하다. 뚜껑돌 아래에는 동쪽에만 받침돌(支石)이 있는데 장방형의 판돌 2매는 뉘운 상태로 노출되었다. 2호의 뚜껑돌은 평면 형태가 반원형이고 길이 1.36m, 너비 1.25m, 두께 0.57m이다. 뚜껑돌 아래에 타원형의 구덩이가 있고 받침돌이 없는 덮개식이다. 고인돌 2기 모두 유물은 확인되지 않았다. 돌널무덤은 1지점에서 2기가 확인되었다. 1호는 파괴가 심해 원래의 상태를 알 수 없으나 너비는 0.86m정도이며 막돌을 포개어 쌓아 축조하였다. 출토된 유물은 없다. 2호는 평면 형태가 장방형이고 장축 방향은 등고선과 직교한다. 돌널은 판돌을 이용해 축조하였으며 바닥은 자갈돌로 깔고 구덩이와 돌널 사이를 막돌로 채워 넣었다. 유물은 간 돌검 편과 간 돌살촉 4점이 출토되었다. 매납 유구는 2-1지점에서 2기가 확인되었다. 1호는 구릉 마루의 고인돌과 인접해 있고 2호는 100m 정도 떨어진 구릉의 비탈에 위치한다. 1호는 평면 형태가 부정형이고 길이 0.65m, 너비 0.42m, 두께 0.13m이다. 유물은 간 돌검 1점, 외날 돌도끼(扁刃石斧) 1점, 소형 홈자귀(有溝石斧) 1점이 나왔다. 2호는 평면 형태 장방형에 길이 0.5m, 너비 0.38m, 두께 0.18m이다. 간 돌검 1점, 돌대팻날 1점, 돌칼(石刀) 1점이 나왔다. 양교리 유적은 청동기 시대의 집자리와 무덤, 그리고 의례용의 매납 유구 등이 함께 확인되어 당시의 마을의 구성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로서 의미가 있다. ==이미지== <gallery mode=packed heights=200px> File:평택_양교리_유적_1호_고인돌.jpg File:평택_양교리_유적_1호_매납_유구_출토_유물.jpg </gallery> ==참고문헌== * 고려문화재연구원. (2010). <i>평택 양교리 유적</i>. https://www.riss.kr/link?id=M12148413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이 문서에서 사용한 틀:
틀:유적정보
(
원본 보기
)
600-1916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