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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신촌리 유적(金泉 新村里遺蹟)}}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신촌리 유적 | 이칭별칭=김천 신촌리유적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대한민국 | 소재지=경상북도 김천시 농소면 신촌리 730 | 성격=복합유적 | 키워드=[[움무덤]], [[장송의례]], [[간 돌칼]], [[간 돌창]], [[간 돌살촉]], [[간 돌도끼]]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김도헌 }} ==설명== 경상북도 김천시 농소면 신촌리 730에 있다. 김천휴게소 건립에 앞서 2006년 Ⅰ~Ⅳ구역으로 나누어 조사하여, Ⅰ구역에서 [[움무덤|움무덤(土壙墓)]] 2기 및 고려~조선 시대 다양한 유구가 확인되었다. 유적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뻗은 가지 능선에 입지하며, 움무덤은 남쪽 산등성이의 평탄한 지점(해발 99~100m)에 위치한다. 움무덤의 장축 방향은 등고선과 직교하며, [[묘광|무덤 구덩이(墓壙)]]는 장방형이다. 1호는 길이 1.91m, 너비 0.82m, 깊이 0.34m, 2호는 길이 1.66m, 너비 0.61m, 깊이 0.32m이다. 바닥의 양쪽 짧은 벽 쪽에는 널찍한 [[판돌|판돌(板石)]]을 각각 1개씩 놓아 [[주검받침|주검 받침(屍床臺)]] 또는 [[관대|널받침(棺臺)]]으로 사용하였다. 한쪽 긴 벽의 중앙에서 조금 치우쳐 돌을 놓았는데, 1호는 제법 큰 널돌 하나를 세웠고 2호는 [[깬돌|깬돌(割石)]] 2개를 놓았다. 부장품은 모두 바닥에서 출토되었으며, 여러 곳에 나누어 껴묻었다. 출토 유물 중 토기류는 [[민무늬토기|민무늬 토기]]로 [[붉은간토기긴목항아리|붉은 간 토기 긴 목 항아리(長頸壺)]]의 파편이다. 석기류는 [[간돌칼|간 돌칼]], [[간돌창|간 돌창(磨製石槍)]], [[간돌살촉|간 돌살촉]], [[간돌도끼|간 돌도끼]] 등이다. 간 돌칼은 봉부(鋒部) 일부만 출토되었는데, 일부러 깨어서 껴묻었을 가능성이 높다. 간 돌살촉은 슴베가 없는 형태이고 간 돌창은 짧은 슴베가 있다. 유물은 토기보다 석기(石器)의 비율이 높고 석기는 무기(武器)가 많은 편이다. 김천에서 사례가 드문 청동기 시대 움무덤을 통해 무덤의 구조와 [[장송의례|장송의례(葬送儀禮)]], 석기의 양상을 알려주는 자료라는 점에서 학술적 가치가 높은 유적이다. ==조사정보== {|class="listtable" ! class="col-type" | 유형 !! 조사 시기 !! 보고서명 !! 발간 연도 !! 조사 기관 |- | 발굴조사 || 2006년 || 김천 신촌리유적 || 2008 || 중앙문화재연구원 |} ==참고문헌== * 중앙문화재연구원. (2008). <i>김천 신촌리유적</i>.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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