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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신천동 유적(蔚山 新泉洞遺蹟)}}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신천동 유적 | 이칭별칭=울산 신천동 유적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대한민국 | 소재지=울산광역시 북구 신천동 786 일원 | 성격=복합유적 | 키워드=[[집자리]], [[움무덤]], [[구덩이]], [[둘레 도랑]], [[겹아가리 토기]], [[검단리식 집자리]], [[연암동식 집자리]], [[검단리식 토기]], [[깊은 바리 토기]], [[간 돌살촉]], [[조갯날 돌도끼]], [[달도끼]], [[돌창]], [[붉은 간 토기]], [[돋을띠무늬 토기]], [[흔암리식 토기]], [[역삼동식 토기]], [[송국리 단계]], [[검단리 단계]]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이수홍 }} ==설명== 울산광역시 북구 신천동 786 일원에 위치한다. 공동 주택 신축으로 2007~2008년 조사하여, [[집자리|집자리]] 51기, [[움무덤|움무덤(土壙墓)]] 1기, [[구덩이|구덩이]] 1기, [[주구|둘레 도랑(周溝)]] 6기가 조사되었다. 유적은 동남쪽에 위치한 동대산(해발 444m)에서 서쪽으로 뻗어 내린 구릉의 끝자락 평탄면에 분포한다. 동쪽과 남쪽에는 [[울산매곡동신기유적|매곡동 신기 유적]]과 [[울산신천동냉천유적|신천동 냉천 유적]]이 위치한다. 집자리는 방형, 장방형, 세장방형으로 구분된다. A-13호는 장방형이며, 길이 5.4m, 너비 4.7m이며, 내부에 [[돌두름식화덕자리|돌 두름식 화덕 자리(圍石式爐址)]]가 설치되었다. 벽을 따라 [[벽도랑|벽 도랑(壁溝)]]이 확인되며 한쪽 모서리에는 저장용으로 추정되는 구덩이도 있다. 내부에서 [[겹아가리토기|겹아가리 토기(二重口緣土器)]]가 출토되어 울산 지역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집자리로 판단된다. A-11호는 길이 16.8m, 너비 6.6m의 세장방형이며, 중앙에 돌 두름식 화덕 자리가 1개 확인되며, 더 존재했었을 가능성도 있다. 벽을 따라 벽 도랑이 설치되었으며 기둥 구멍은 벽 도랑에서 0.8m 떨어져 위치하며, 한쪽 벽면에 9개씩 총 18개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북동쪽 모서리에서는 저장 구덩이 2개가 확인되었다. 이 외에도 A-2·5·15·16·20호, B-3·4·5·18·25호도 세장방형 집자리이다. 방형, 장방형 집자리는 대부분 1개의 화덕 자리가 설치되고, 벽 도랑, 기둥 구멍, 배수구가 설치된 전형적인 [[검단리식집자리|검단리식 집자리]]이다. A-9호는 화덕 자리가 2개 설치되었으며, 1개가 사용되고 다른 것을 사용한 것인지 동시에 2개를 사용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B-23호는 집자리 외곽에 장방형의 둘레 도랑이 설치된 [[연암동식집자리|연암동식 집자리]]이다. 연암동식 집자리의 성격에 대해 최근 무덤으로 전용되었다는 견해가 있다. 외곽에 설치된 둘레 도랑은 무덤의 묘역을 구획한 것이다. 방형·장방형 집자리에서는 [[검단리식토기|검단리식 토기]]라고 하는 [[낟알무늬|낟알무늬]]가 새겨진 [[깊은바리모양토기|깊은 바리 토기(深鉢形土器)]], [[간돌살촉|간 돌살촉]], [[합인석부|조갯날 돌도끼(蛤刃石斧)]], [[달도끼|달도끼(環狀石斧)]], [[돌창|돌창(石槍)]] 등이 출토되었다. 유적의 집자리는 주변의 유적에 비해 세장방형과 대형급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둘레 도랑 6기는 연암동식 집자리의 외곽에 설치된 둘레 도랑과 동일한 형태인데 내부에 집자리가 확인되지 않았다. ‘[[연암동형도랑|연암동형 도랑]]’이라고 한다. 의례 시설이라는 견해와 [[주구묘|도랑무덤]]이라는 견해가 있다. 움무덤은 벽석 혹은 나무널의 흔적은 확인되지 않았다. 규모는 길이 3m, 너비 1.8m, 깊이 0.6m이다. 내부에서 [[뚜껑돌|뚜껑돌(蓋石)]]로 추정되는 판돌(板石) 1매가 확인되었다. 유물은 [[붉은간토기|붉은 간 토기]] 2점이 출토되었다. 유적의 시기는 겹아가리 토기가 출토된 A-13호는 울산에서 가장 시기가 이른 시기로 [[돋을띠무늬토기|돋을띠무늬 토기(突帶文土器)]] 단계에 해당된다. 세장방형 집자리는 [[흔암리식토기|흔암리]]·[[역삼동식토기|역삼동식 토기]] 단계에 해당되며, 방형·장방형 집자리는 [[송국리단계|송국리]]·[[검단리단계|검단리 단계]]로 판단된다. 유적은 [[청동기시대|청동기 시대]] 이른 시기부터 늦은 시기까지 다양한 형태의 집자리가 조사되어 시기별 변화와 특징을 알 수 있다. 또 울산에서 많이 확인되지 않은 무덤과 둘레 도랑도 조사되어 취락의 전모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이미지== <gallery mode=packed heights=200px> File:울산_신천동_유적_B구역_집자리.jpg File:울산_신천동_유적_전경.jpg </gallery> ==조사정보== {|class="listtable" ! class="col-type" | 유형 !! 조사 시기 !! 보고서명 !! 발간 연도 !! 조사 기관 |- | 발굴조사 || 2006년 10월 16일~2008년 1월 28일 || 울산 신천동 유적 || 2010 || 한국문화재보호재단 |} ==참고문헌== * 한국문화재보호재단. (2010). <i>울산 신천동 유적</i>.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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