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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신암리식 토기(新岩里式土器)}} {{개념정보 | 한글표제어=신암리식 토기 | 시대=청동기 시대 | 관련 지역=평안북도 룡천군 신암리 | 관련 유적=용천 신암리 유적 | 키워드=[[미송리 유형]], [[항아리 모양 토기]]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김재윤 }} ==설명== [[용천신암리유적|신암리 유적]]은 신암리 립암산 경사면에 위치한다. 1964~1966년과 1974년까지 4년동안 4지점으로 나눠져서 발굴되었는데, 2지점의 중층, 3지점 2문화층, 4지점 2문화층과 3문화층에서 청동기 시대 유물이 보고되었다. 이 중에서 3지점 2문화층에서 출토된 유물을 ‘신암리식 토기’라고 한다. 1지점은 청등말래로 처음 명명되었는데, 집자리 1기가 발굴되었으나 자세하게 보고되지는 않았다. 완형에 가까운 번개무늬 토기(雷文土器), 항아리 모양의 돋을띠무늬 토기(突帶文土器), 민무늬 항아리 모양 토기, 잔발형 토기 외에도 횡주 생선뼈무늬, 종주 생선뼈무늬, 단추 모양 덧띠, 번개무늬 토기 편 등이 신석기 시대 가장 늦은 시기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2지점의 원래 명칭은 모래산 유적으로 3층으로 구분된다. 제일 하층에서는 1지점(청등말래)과 같은 신석기 시대 유물이 나오고, 중층에서는 청동기 시대 [[미송리유형|미송리 유형]], 상층에서는 고구려 유물이 출토되었다. 청동기 시대 집자리 2기(4·5호)와 신석기 시대 시설물(6호)로 추정되는 유구가 확인되었다. 청동기 시대 토기는 미송리 유형에 해당된다. 3지점은 축사 앞의 도로를 발굴해서 6개의 층위와 6기의 구덩이가 확인되었다. 4호, 5호, 6호를 제외하고는 교란되었다. 6호가 4층보다 아래층에서 확인되었다. 6호는 1지점과 같은 신석기 시대 유물이 보고되었다. 4호에서는 여러 형태의 [[항아리모양토기|항아리 모양 토기]] 및 [[청동검|청동 검]]과 [[청동단추|청동 단추]]가 출토되었다. 항아리 모양 토기는 몸통에 7~8줄의 새김 줄무늬(沈線文)가 돌아가고 그 위아래에 점을 새겨 넣고 다리가 붙은 것도 있다. 또 항아리 모양 토기의 입술에 덧무늬와 목 부분에 덧띠를 돌려서 장식한 토기도 있다. 4호 구덩이에서 출토된 유물은 청동 유물과 함께 신암리 3지점 2문화층으로 압록강 유역을 대표하는 청동기 시대 유물로 알려졌다. 4지점은 3지점과 직선 거리 1.3m 정도 거리를 두고 확인된 곳이다. 3개의 문화층이 확인되었다. 1문화층에서는 고배형 토기, 채색 토기, 덧무늬, 번개무늬 등 신석기 시대 유물이 보고되었다. 2문화층에서는 1문화층의 토기 가운데 채색 토기만 남아 있었다. 몸통은 민무늬이지만 구연부에 덧무늬가 붙은 토기가 주류를 이룬다. 마디진 덧무늬, 닭벼슬 모양의 덧무늬, 단추 모양 덧무늬 등 다양하다. 이 외에도 점토 띠를 몸통에 세로로 붙이는 토기와 굽다리 모양 토기도 발견된다. 3문화층에서는 경부가 짧고 입술 부위가 덧붙여진 토기가 다수이다. 이 외에도 굽다리 모양 토기도 확인된다. 2문화층과 3문화층은 청동기 시대 유물이다. 북한에서는 4지점 발굴 이후에 신암리 유적의 1지점이 가장 이르고 3지점 1문화층, 4지점 1문화층 그 뒤에 4지점 2문화층을 이어 3지점 2문화층, 4지점 3문화층으로 발전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4지점에서 출토된 유물이 모순된다는 의견이 있어서 4지점의 문화층에서 발견된 유물은 분명하지 않은 점이 있다. 그래서 3지점 2문화층에서 출토된 문양이 없는 토기를 기준으로 청동기 시대 신암리식 토기라고 명명할 수 있다. 신암리 유적의 신석기 토기 가운데 몸통에 점토띠를 세로로 붙이는 토기는 하요하 유역의 피엔부 문화 및 청천강 유역의 [[정주당산조개무지|당산 패총]]에서 발견된다. 뿐만 아니라 채색된 번개문양 토기는 [[진주평거동유적|진주 평거동 유적]]의 신석기 시대 층에서도 확인된다. 압록강 유역에서 신석기~청동기 시대 문화의 교류 범위 등을 잘 알 수 있는 유적이다. ==참고문헌== * 강중광. (1979). 신암리유적 제4지점에 대하여. <i>력사과학, 2</i>. * 김용간, 리순진. (1966). 1965년도 신암리유적발굴보고. <i>고고민속, 3</i>. http://db.history.go.kr/id/hb_999_02_069322 * 김재윤. (2013). 평저토기문화권의 신석기후기 이중구연토기 지역성과 병행관계. <i>한국고고학보, 88</i>, 4–41. https://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nodeId=NODE10861135 * 리순진. (1965). 신암리 유적 발굴 중간 보고. <i>고고민속, 3</i>. http://db.history.go.kr/id/hb_999_02_069381 * 신의주 력사박물관. (1967). 1966년도 신암리유적발굴간략보고. <i>고고민속, 2</i>. http://db.history.go.kr/id/hb_999_02_069526\ * 조선유적유물도감 편찬위원회. (1990). <i>조선유적유물도감1-원시편</i>. 동광출판사. https://www.riss.kr/link?id=M8204748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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