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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신봉리·장정리 유적(江華 新鳳里·長井里遺蹟)}}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신봉리·장정리 유적 | 이칭별칭=인천 신봉리·장정리 유적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대한민국 | 소재지=인천광역시 강화읍 장정리 903-6·신봉리 산219 일원 | 성격=복합유적 | 키워드=[[집자리]], [[겹아가리 토기]], [[구멍무늬 토기]], [[소성 유구]], [[역삼동 유형]]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구준모 }} ==설명== 인천광역시 강화읍 장정리 903-6·신봉리 산219 일원에 위치한다. 2010~2011년 인화-강화 구간 내 도로 신설 및 확장 공사의 일환으로 발굴 조사하여 [[집자리|집자리]] 12기, [[소성유구|소성燒成 유구]] 2기가 확인되었다. 유적은 봉천산의 남서 사면 3~4부 능선 해발 80~92m 일대의 완만한 구릉에 위치한다. 서쪽 1.5km 지점에는 [[강화교산리고인돌군|강화 교산리 고인돌군]], 동쪽으로 약 1.7km 지점에는 [[강화부근리고인돌|강화 부근리 고인돌]]이 인접해 있다. 유적은 2개 지점으로 구분되며 신봉리(3지점)에서 집자리 7기, 소성유구 2기, 장정리(4지점)에서 집자리 5기가 확인되었으며, 유구와 유물로 볼 때 [[겹아가리토기|겹아가리 토기(二重口緣土器)]] 계통과 [[구멍무늬토기|구멍무늬 토기(孔列土器)]] 계통으로 각 지점이 차이를 보인다. 신봉리 유적(3지점)은 집자리가 능선을 따라 일렬로 배치되어 있으며 길이 7.6~4.4m, 너비 4.4m 크기의 장방형 7기가 확인되었다. 기둥은 벽 기둥 구멍 열이 일부 확인되며 내부 시설은 평지식(平地式) 또는 구덩식의 [[화덕자리|화덕 자리]], [[저장구덩이|저장 구덩이]], 단(段)이 시설되어 있다. 유물 중 토기는 [[겹아가리짧은빗금구멍무늬토기|겹아가리 짧은 빗금 구멍무늬(二重口緣短斜線孔列文)]], [[겹아가리교차선골아가리구멍무늬토기|겹아가리 교차 선골 아가리 구멍무늬(二重口緣交叉線口脣刻目孔列文)]], 구멍무늬 등 다양한 문양들이 확인되며, 석기는 [[자루간돌검|자루 간 돌검(有柄式磨製石劍)]], [[슴베간돌검|슴베 간 돌검(有莖式磨製石劍)]], [[돌창|돌창(石槍)]], [[반달돌칼|반달 돌칼]], [[긴배모양돌칼|긴배모양 돌칼(長舟形石刀)]], [[슴베없는간돌살촉|슴베 없는 간 돌살촉(無莖式磨製石鏃)]] 등이 출토되었다. 소성 유구는 길이 5~7m, 너비 0.8~1.5m 크기의 장방형으로 내부에 전체적으로 숯과 재층이 확인되며 벽면이 약하게 소결된 흔적이 남아 있다. 유물은 겹아가리 짧은 빗금 구멍무늬 토기와 슴베 없는 간 돌살촉, 돌창, [[그물추|그물추]] 등이 출토되었다. 장정리 유적(4지점)의 집자리는 길이 4.6~8.4m, 너비 4.4m의 장방형에 기둥은 중앙 기둥 구멍 열과 벽 기둥 구멍 열로 구성되어 있고, 내부 시설은 돌 두름식 화덕 자리(圍石式爐址)가 시설되어 있다. 유물은 겹아가리 짧은 빗금무늬 또는 단순 겹아가리 토기가 주로 출토되며, 특히 겹아가리 짧은 빗금무늬 토기의 시문은 짧은 빗금(短斜線)의 방향이 대칭되도록 시문하여 [[강화삼거리유적|강화 삼거리 유적]] 출토품과 시문 방식이 유사하다. 석기는 [[간돌검|간 돌검]], [[기둥모양외날돌자귀|기둥모양 외날 돌자귀(柱狀片刃石斧)]], 슴베 간 돌검, 돌창, [[슴베돌살촉|슴베 돌살촉(有莖式磨製石鏃)]], [[가락바퀴|가락바퀴]], [[턱자귀|턱자귀(有段石斧)]], [[긴배모양돌칼|긴 배 모양 돌칼]] 등이 출토되었다. 5호에 서는 원형의 [[덧띠토기|덧띠토기(粘土帶土器)]], 슴베 간 돌검, [[턱슴베돌살촉|턱 슴베 돌살촉(二段莖式石鏃)]], [[숫돌|숫돌(砥石)]], 가락바퀴가 출토되었다. 장정리 유적(4지점)의 겹아가리 토기 계통은 서북한 지역의 [[팽이토기|팽이 토기(角形土器)]] 문화와 유사한 특성을 보이고 있으며 신봉리 유적(3지점)의 구멍무늬 토기 계통은 [[역삼동유형|역삼동 유형]]과 겹아가리 토기의 접변으로 추정된다. 방사성 탄소 연대는 장정리 유적에서만 검출되었으며, 보정 결과 4지점 2호 집자리에서 기원전 370~150년, 4지점 4호 집자리에서 기원전 790~510년이 제시되었다. 신봉리·장정리 유적은 청동기 시대 강화 지역에서 서로 다른 문화 유형을 가진 집단이 존재하였음을 보여주는 유적이다. ==이미지== <gallery mode=packed heights=400px> File:강화_신봉리_장정리_유적_4지점_집자리_출토_유물.jpg </gallery> ==참고문헌== * 중원문화재연구원. (2013). <i>강화 신봉리·장정리 유적</i>. https://www.riss.kr/link?id=M13348389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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