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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신문동 유적(金海 新文洞遺蹟)}}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신문동 유적 | 이칭별칭=김해 신문동 유적, 김해 신문리 유적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대한민국 | 소재지=경상남도 김해시 신문동 1434 | 성격=복합유적 | 키워드=[[움무덤]], [[돌뚜껑움무덤]], [[돌널무덤]], [[붉은 간 토기]], [[청동 검]], [[간 돌살촉]], [[송국리 단계]]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배진성 }} ==설명== 경상남도 김해시 신문동 1434에 위치한다. 관광 유통 단지 조성 사업에 앞서 2011~2012년 조사하여, [[움무덤|움무덤(土壙墓)]], [[돌뚜껑움무덤|돌뚜껑움무덤(石蓋土壙墓)]], [[돌널무덤|돌널무덤(石棺墓)]] 각 1기씩이 확인되었다. 유적은 반룡산의 남동쪽 구릉의 완만한 경사면에 입지한다. 현재는 남해 고속 도로 건설로 인해 단절되어 해발 30m 내외의 구릉 정상부와 사면에 해당한다. 주변 유적으로는 [[김해무계리고인돌|무계리]]·[[김해관동리유적|관동리]]·[[김해명법동고인돌|명법동 고인돌]], [[김해율하리유적|율하리]]·[[김해대청동유적|대청 유적]] 등이 있다. 움무덤(1호)에서는 바닥 면에 [[나무널|나무널(木棺)]]의 흔적으로 추정되는 ‘ㅁ’자 모양의 회색 점토가 확인되었으며, 나무널과 [[묘광|무덤 구덩이(墓壙)]] 사이에는 [[충전토|채움 흙(充塡土)]], [[채움돌|채움 돌(充塡石)]]도 확인되었다. 남동쪽 모서리의 채움 흙에서 [[붉은간토기|붉은 간 토기]] 항아리 한 점이 출토되었다. 돌뚜껑움무덤(2호)에는 바닥 면에 나무널의 흔적으로 추정되는 ‘ㅍ’자 모양의 회갈색 점토가 있으며, 나무널과 무덤 구덩이 사이에 채움 흙도 확인되었다. 채움 흙 바로 위에서 부터 2단 무덤 구덩이의 상부까지 길이 0.75~0.9m, 너비 0.3~0.4m, 두께 0.1m의 깬돌(割石)로 3차에 걸쳐 [[덮개돌|덮개돌(蓋石)]]을 덮었다. 뚜껑돌과 무덤 구덩이 사이의 공간에는 깬돌과 강돌(川石)로 채웠고, 무덤의 가장 윗부분에는 깬돌을 채워서 덮었다. 유물은 출토되지 않았다. 돌널무덤(3호)은 3단 무덤 구덩이의 바닥에 판돌(板石) 4매를 깔아 [[시상|주검을 놓는 시설(屍床)]]을 마련한 후 판돌 9매를 가로로 세워서 돌널을 ‘ㅍ’자 모양으로 축조하였다. 양쪽 짧은 벽과 무덤 구덩이 사이 공간에는 채움 흙과 함께 깬돌과 판돌을 사용하여 돌널을 보강하였으며, 돌널 바로 위에는 5차에 걸쳐 쌓아 밀폐성을 높인 뚜껑돌이 확인되었다. 유물은 5차 뚜껑돌의 서쪽 부분에서 [[청동검|청동 검(銅劍)]] 1점, 돌널 바로 바깥의 남서쪽 모서리 부분에서 붉은 간 토기 항아리 1점, 돌널 바로 바깥의 서쪽 중앙 부분에서 [[간돌살촉|간 돌살촉]] 5점, 돌널 내의 중앙부 바닥에서 간 돌살촉 1점이 출토되었다. 최근 [[청동기시대|청동기 시대]]의 움무덤에 나무널이 확인되는 예가 다수 확인되었으며, 특히 신문동 유적 1·2호는 나무널의 흔적이 뚜렷하다. 2·3호처럼 여러 단 무덤 구덩이(多段墓壙) 및 판돌이나 깬돌로 여러 차례 밀폐한 것은 김해 율하리 유적과 유사하다. 특히 3호는 다중(多重)의 뚜껑돌 위에 덮개돌(上石)이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 유적의 시기는 붉은 간 토기 항아리의 특징을 통해 [[송국리단계|송국리 단계]] 중에서도 늦은 시기로 판단된다. 간 돌살촉 가운데 한 점은 [[거제아주동고인돌군13호고인돌|거제 아주동 13호 고인돌]]에서 출토된 [[청동살촉|청동 살촉(銅鏃)]]과 매우 유사하여, 청동 살촉을 모방하여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모방품은 [[울주검단리유적|울산 검단리 유적]]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청동 검은 [[창원진동리유적|창원 진동리 유적]] 출토품과 규격 및 형태가 흡사하며, 신문동은 슴베(莖部)에 구멍이 뚫려 있는데 비해 진동리의 것은 홈이 있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러한 청동 검은 전형적인 [[비파형동검|비파형동검]]보다는 시기가 늦지만 [[세형동검|세형동검]]보다 이른 것으로 편년되어, 붉은 간 토기 항아리와 같은 시기에 속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또 청동 검의 X-ray 사진 판독 결과, 진동리 출토품에는 재가공의 흔적이 있었는데 비해 신문동 출토품에는 그러한 흔적이 확인되지 않았다. 3호의 구조적 특징과 함께 세형동검 출토 이전 시기의 청동 검이 출토된 점 등에서 학술적 중요성이 인정되어 발굴 조사 이후 율하 유적 공원에 이전 복원되었다. ==이미지== <gallery mode=packed heights=400px> File:김해_신문동_유적_3호_돌널무덤_출토_유물.jpg </gallery> ==조사정보== {|class="listtable" ! class="col-type" | 유형 !! 조사 시기 !! 보고서명 !! 발간 연도 !! 조사 기관 |- | 발굴조사 || 2011년~2012년 || 김해 신문리 유적 || 2015 || 한겨레문화재연구원 |} ==참고문헌== * 한겨레문화재연구원. (2015). <i>김해 신문리 유적</i>.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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