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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신가리 유적(禮山 新佳里遺蹟)}}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신가리 유적 | 이칭별칭=예산 신가리 유적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대한민국 | 소재지=충청남도 예산군 삽교읍 신가리 1-29 일원 | 성격=복합유적 | 키워드=[[집자리]], [[구덩이]], [[무덤]], [[역삼동 유형]], [[송국리 유형]]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황재훈 }} ==설명== 충청남도 예산군 삽교읍 신가리 1-29 일원에 위치한다. 장항선(온양 온천~장항 간) 제 2-2공구 노반 개량 공사에 따라 2006년에 발굴 조사되었다. 구석기 시대 유물층을 비롯하여 청동기 시대 [[집자리|집자리]] 22기와 [[구덩이|구덩이]], 조선 시대 건물터와 집자리, [[고분|무덤]] 등이 조사되었다. 조사 지역은 삼교천의 남안에 인접한 곳으로 삽교천으로 뻗어 있는 구릉들의 최말단부에 형성된 저구릉성 산지 사면부에 해당한다. 유적은 해발 50m 내외의 저평한 구릉 지대에 해당하는데 능선과 곡부를 기준으로 3지점으로 구분하여 조사되었다. 집자리는 Ⅰ지점에서 7기, Ⅱ지점에서 7기, Ⅲ지점에서 8기가 확인되었다. Ⅰ지점에서 확인된 집자리는 구릉 정상부와 사면부에 위치하며 평면 세장방형과 장방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3~7호는 삭평이 심해 전체적인 구조를 파악하기 어렵다. 1호는 평면 장방형으로 길이 4.4m, 너비 2.2m, 깊이 0.34m이며 내부 바닥 면에는 기둥 구멍과 [[구덩식화덕자리|구덩식 화덕 자리]]가 확인된다. 2호는 세장방형으로 길이 10.7m, 잔존 너비 2m 정도이다. 내부 시설로는 2기의 구덩식 화덕 자리와 기둥 구멍, [[저장구덩이|저장 구덩이]]로 추정되는 구덩이 3기 등이 확인되었다. 4·5호는 벽 도랑(壁溝)과 기둥 구멍만이 확인된다. 6·7호는 장방형이며 각각 길이 6.3m, 잔존 너비 2.2m와 길이 3.8m, 잔존 너비 1.8m이다. 출토 유물은 [[골아가리토기|골아가리 토기(口脣刻目土器)]]와 [[가락바퀴|가락바퀴]] 등 극히 소량에 불과하다. Ⅱ지점에서 조사된 집자리는 구릉 사면부에 위치한다. 1·2호는 대부분 유실되어 경사면 상단부의 긴 벽만이 남아있는데 층위 상 2호가 후대에 조성되었다. 1호의 길이는 6.1m, 2호는 4.7m 정도이다. 3호는 평면 장방형으로 길이 3.3m, 너비 2.1m, 깊이 0.38m이며 내부 바닥 면에는 기둥 구멍 1개만이 확인된다. 4호 역시 삭평이 심해 구조를 파악하기 어렵다. 5호는 장방형으로 길이 5.8m, 잔존 너비 1.6m 정도이다. 내부 퇴적토 내 다량의 목탄이 포함되어 있어 화재 폐기된 것으로 추정된다. 내부에서는 타원형의 무시설식 화덕 자리가 3기가 확인되었으며 기둥 구멍은 [[화덕자리|화덕 자리]] 사이와 긴 벽을 따라 열을 지어 있다. 6호는 장방형으로 길이 7.7m, 잔존 너비 2.2m이다. 타원형의 무시설식 화덕 자리는 중앙과 북편에 치우쳐 각 한 기씩 설치되었다. 7호는 방형으로 추정되며 잔존 길이 2.1m, 너비 1.9m이다. [[골아가리구멍짧은빗금무늬토기|골아가리 구멍 짧은 빗금무늬 토기(口脣刻目孔列短斜線文土器)]], [[골아가리구멍무늬토기|골아가리 구멍무늬 토기(口脣刻目孔列土器)]], [[붉은간토기|붉은 간 토기]], [[그물추|그물추]], [[숫돌|숫돌(砥石)]] 등이 출토되었다. Ⅲ지점에서 확인된 집자리는 구릉 정상부와 사면부에 위치한다. 평면 형태는 세장방형과 장방형으로 나뉜다. 1호는 바닥면 일부가 남아 있는데 기둥 구멍 3기와 화덕 자리로 추정되는 소결흔만이 확인된다. 2호는 평면 말각 방형이며 너비 4.3m, 잔존 길이 1.5m이다. 송국리식으로 내부 중앙에 타원형 구덩이가 있고, 그 양단에 기둥 구멍이 한 개씩 배치되어 있다. 3호는 평면 장방형으로 너비 3.2m, 잔존 길이 1.3m이다. 4호는 벽 도랑과 화덕 자리, 기둥 구멍만이 남아 있으며 벽 도랑을 통해 길이는 9.5m 이상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화덕 자리는 남쪽 짧은 벽에 치우쳐 1기만이 확인되는데 지름 0.5~0.6m 정도의 무시설식 구조이다. 6호는 방형으로 길이 2.9m, 너비 2.1m, 깊이 0.13m이다. 바닥 면은 생토면을 그대로 사용하였으며 1기의 기둥 구멍만이 확인되었다. 7호는 장방형으로 길이 8.75m, 잔존 너비 0.9m이며 내부에서 무시설식 화덕 자리가 중앙과 남쪽 짧은 벽에 치우친 지점에 각각 한 기씩 확인된다. 외부에는 장축을 따라 너비 0.2~0.4m의 배수로가 설치되어 있다. 8호는 장방형이며 길이 2.9m, 잔존 너비 0.7m이다. 출토된 유물은 극히 소량으로 골아가리 토기, [[합인석부|조갯날 돌도끼(蛤刃石斧)]], [[턱슴베돌살촉|턱 슴베 돌살촉(二段莖式石鏃)]], [[간돌검|간 돌검]] 편, [[간돌살촉|간 돌살촉]] 편 등이 있다. 신가리 유적은 집자리 내부 시설과 출토 유물을 통해 [[역삼동유형|역삼동 유형]]과 [[송국리유형|송국리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2910±60 BP, 2960±50 BP, 3140±60 BP 등의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치를 참고한다면 역삼동 유형 취락은 기원전 11세기를 상한으로 9세기 전반까지 존속한 것으로 추정되며 이후 송국리 유형 취락이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이미지== <gallery mode=packed heights=400px> File:예산_신가리_유적_I지점_1호_집자리.jpg </gallery> ==참고문헌== * 충청문화재연구원. (2008). <i>예산 신가리 유적</i>. https://www.riss.kr/link?id=M11795671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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