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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송죽리 유적(金泉 松竹里遺蹟)}}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송죽리 유적 | 이칭별칭=김천 송죽리 유적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대한민국 | 소재지=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송죽리 600 | 성격=복합유적 | 키워드=[[집자리]], [[고인돌]], [[구덩이]], [[야외 화덕 자리]], [[돌더미]], [[돌무지]], [[알 구멍]], [[랴오닝식 동검]], [[폐기장]], [[돋을띠무늬 토기]], [[찰절구]]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김도헌 }} ==설명==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송죽리 600에 위치한다. 유적 일대에 구미 지방 공단 조성 사업이 진행되어 1992~1993년 긴급 조사를 진행하여, [[집자리|집자리]] 61기, [[고인돌|고인돌]] 19기, [[구덩이|구덩이]] 2기, [[야외노지|야외 화덕 자리(野外爐址)]] 1기, [[집석유구|돌더미(集石)]] 5기, [[돌무지|돌무지(積石)]] 1기를 확인하였다. 이외에 [[신석기시대|신석기 시대]] 및 [[통일신라시대|통일 신라]]~[[조선시대|조선 시대]] 유구 다수가 조사되었다. 유적은 감천(甘川)이 굽이쳐 흐르면서 발달한 충적지의 평탄한 지점(해발 98~102m)에 입지한다. 서쪽에 구릉지가 있고 동쪽과 북쪽으로 하천이 흐르는 완만한 지형으로, 감천의 주기적인 범람으로 집자리와 고인돌은 부분적으로 파괴되었다. 집자리의 장축 방향은 대부분 등고선과 평행하며, 일부는 직교한다. 형태는 세장방형, 장방형, 방형, 모서리가 둥근 장방형, 원형, 타원형으로 구분된다. 면적은 90㎡ 이상의 대형부터 10㎡ 이하의 소형까지 다양하며, 면적이 넓은 것은 세장방형 또는 장방형이며, 원형은 대부분 소형에 해당한다. 내부 시설로는 [[화덕자리|화덕 자리]], [[기둥구멍|기둥 구멍]], [[초석|주춧돌(楚石)]], [[저장구덩이|저장 구덩이]]가 확인되었다. 화덕 자리는 돌 두름식(圍石式)과 무시설식(無施設式)이 있으며 [[돌두름식화덕자리|돌 두름식 화덕 자리]]는 바닥에 돌을 깐 것과 없는 것으로 구분된다. 돌 두름식 화덕 자리는 세장방형과 장방형에서 다수 확인되며, 원형에서는 설치되지 않았다. 기둥 구멍과 주춧돌은 세장방형과 장방형에서 많이 확인되는데, 여러 개가 2열 또는 기둥 구멍과 주춧돌이 함께 배치되거나 불규칙한 경우도 있다. 크기가 작은 방형과 원형은 기둥 구멍이 4개 이하이거나 없는 경우가 많다. 저장 구덩이는 크기와 모양, 배치 등에서 뚜렷한 정형성은 없으나 대부분 벽에 붙여 설치하였다. 고인돌은 유적 북쪽의 집자리가 없는 부분에 분포한다. 덮개돌(上石)과 매장(埋葬) 시설없이 묘역(墓域) 시설만 확인된 것도 많은데, 부분적으로 파괴된 것이 많아 묘역 시설이 원래 없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고인돌은 강돌로 일정한 면적의 묘역을 만들고 그 안에 매장 시설인 돌덧널(石槨)를 설치한 구조이다. 매장 시설은 3기만 반지상식이고 나머지는 모두 지상식이다. 덮개돌은 별도의 받침돌(支石)을 놓지 않고 매장 시설의 벽에 얹었으며 덮개돌 가운데 [[알구멍|알 구멍(性穴)]]이 있는 것도 확인된다. 한편, [[껴묻거리|부장품]] 중 4호 고인돌 주변에서 [[비파형동검|랴오닝식(遼寧式) 동검]] 1점이 땅에 꽂힌 채로 출토되어 특징적이다. 구덩이는 발굴 범위의 남동쪽 끝 지점에 2기가 평행하게 위치한다. 장방형으로 길이 4.05m, 너비 2m, 깊이 0.9m, 길이 4m, 너비 1.8m, 깊이 0.55m이다. 단면은 ‘Y’, ‘V’자 모양이다. 구덩이의 성격은 저장 시설, 화장실, 수렵 함정 등 다양하다. 돌더미 가운데 1기는 집자리 사이에서 확인되었지만, 나머지 4기는 유적의 서쪽 경계를 따라 열상으로 분포하여 집자리와는 떨어져 위치한다. 원형, 타원형, 부정형으로 다양하며, 길이 1.05~3.45m, 높이 0.1~0.65m이다. 돌더미 사이에 토기와 석기의 파편이 섞여 있어서 쓰레기를 모아 버린 [[폐기장|폐기장(廢棄場)]]으로 추정된다. 야외 화덕 자리는 고인돌 사이에서 확인되었다. 길이 0.85m, 깊이 0.32m로 내부에는 불탄 돌이 가득 채워져 있어 불을 이용한 조리 시설로 추정된다. 또한, 돌무지는 6호 집자리가 폐기된 이후 상부에 만들어졌으며, 길이 2m, 너비 1.6m, 깊이 0.3m로 크고 작은 강돌(川石)을 쌓아 구체적인 성격은 알 수 없다. 출토 유물 중 토기류는 [[돋을띠무늬토기|돋을띠무늬 토기(突帶文土器)]], [[골아가리토기|골아가리 토기(口脣刻目土器)]], [[붉은간토기|붉은 간 토기]] 등이 있고, 기종은 [[바리모양토기|바리 토기(鉢形土器)]], [[항아리모양토기|항아리 모양 토기(壺形土器)]], [[완형토기|사발 모양 토기(盌形土器)]]로 구별된다. 석기류는, [[석도|돌칼]], [[가락바퀴|가락바퀴]], [[간돌도끼|간 돌도끼]], [[홈자귀|홈자귀(有溝石斧)]], [[찰절구|찰절구(擦切具)]], [[숫돌|숫돌(砥石)]], [[갈돌|갈돌(碾石棒)]] 등의 농기구와 공구(工具)가 많고 [[돌검|돌검(石劍)]], [[돌살촉|돌살촉]] 등의 무기(武器)는 적다. 청동기류는 랴오닝식 동검 1점과 동기 파편 1점이 있다. 랴오닝식 동검은 길이 22.5㎝로 돌기부(突起部)가 분명하지 않고 봉부(鋒部)가 짧은 변형된 모양이다. 목기(木器)는 25호 집자리 바닥에서 불탄 상태로 출토된 목제괭이 1점이 있다. 옥기는 6호 집자리에서 출토된 작은 [[구슬옥|구슬옥(環玉)]]이 있다. 유적의 연대는 [[방사선탄소연대측정법|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을 통해 6호 집자리(대형 모서리가 둥근 장방형) 2910±60 BP(보정 연대 기원전 1070년), 22호 집자리(원형) 2500±70 BP(보정 연대 기원전 760~560년), 30호 집자리(세장방형) 2900±70 BP(보정 연대 기원전 1040년)로 확인되었다. 유적에서는 다양한 시기와 구조의 집자리와 고인돌이 조사되어 청동기 시대 집자리와 고인돌의 연구, 나아가 마을(聚落)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여 학술적 의미가 크다. 또한, 영남지역에서 사례가 드문 랴오닝식 동검이 독특한 상태로 출토되었다는 점에서 청동기와 [[장송의례|장송 의례]]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이미지== <gallery mode=packed heights=200px> File:김천_송죽리_유적_18-20호_집자리_전경.jpg File:김천_송죽리_유적_4호_고인돌.jpg </gallery> ==조사정보== {|class="listtable" ! class="col-type" | 유형 !! 조사 시기 !! 보고서명 !! 발간 연도 !! 조사 기관 |- | 발굴조사 || 1991년~1993년 || 김천송죽리유적Ⅰ || 2006 || 계명대학교 행소박물관 |- | 발굴조사 || 1991년~1993년 || 김천송죽리유적Ⅱ || 2007 || 계명대학교 행소박물관 |} ==참고문헌== * 계명대학교 행소박물관. (2006). <i>김천송죽리유적Ⅰ</i>. https://www.riss.kr/link?id=M10677739 * 계명대학교 행소박물관. (2007). <i>김천송죽리유적Ⅱ</i>. https://www.riss.kr/link?id=M11265671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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