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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소담동 유적(世宗 소담洞遺蹟)}}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소담동 유적 | 이칭별칭=세종 소담동 유적, 연기 장재리 유적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대한민국 | 소재지=세종특별자치시 소담동 593(舊 충청남도 연기군 금남면 장재리) 일원 | 성격=복합유적 | 키워드=[[집자리]], [[구덩이]], [[움무덤]], [[역삼동 유형]], [[가락동 유형]], [[송국리식 집자리]]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문수균 }} ==설명== 세종특별자치시 소담동 593(舊 충청남도 연기군 금남면 장재리) 일원에 위치한다. 행정 중심 복합 도시 건설에 따라 2008~2011년까지 발굴 조사되었다. 조사 결과 [[집자리|집자리]] 31기, [[구덩이|구덩이]] 1기, [[움무덤|움무덤]] 1기 등이 확인되었다. 소담동 일원은 부용봉(芙蓉峰, 223m)에서 서쪽으로 금강을 따라 형성된 해발 200m 미만의 낮은 산지들이 분포하고 있다. 금강 본류가 북동에서 남서쪽으로 흐르고 삼성천이 남쪽에서 북쪽 방향으로 흘러 금강으로 합류한다. 4개 지점(103~106지점) 가운데 105지점을 제외한 3개 지점에서 청동기 시대 유구가 확인되었다. 유적은 금강 본류에 인접한 구릉과 산사면에 자리하여 주변 지역이 잘 조망되는 곳이다. 106지점에서는 [[송국리식집자리|송국리식 집자리]] 2기가 조사되었는데, 원형과 말각 방형 각각 1기씩 확인되었다. 원형 집자리는 지름 약 3.74m 규모이며, 내부 시설은 타원형 구덩이와 양단 내부 기둥 구멍 2기가 확인된다. [[기둥구멍|기둥 구멍]] 내부 층위에서 나무 기둥 흔적(木柱痕)이 확인되었는데, 나무 기둥의 규모는 지름 0.1~0.12m이다. 유물은 바닥 면에서 토기 편이, 타원형 구덩이 근처에서 석기가 출토되었다. 송국리식에 선행하는 집자리는 [[가락동유형|가락동 유형]]과 [[역삼동유형|역삼동 유형]]의 특징이 선택적으로 차용되었는데 일부 역삼동 유형만으로 구성된 집자리도 확인되었다. 가락동 유형에 해당하는 집자리는 13기로[[돌두름식화덕자리|돌 두름식 화덕 자리(圍石式爐址)]]에 [[구덩식화덕자리|구덩식 화덕 자리(土壙式爐址)]]를 추가하거나, 구덩식 화덕 자리에 [[초석|주춧돌(礎石)]]을 차용한 사례가 있다. 조사 지역 서쪽 구릉의 정상부에는 대부분 가락동 유형 집자리가 분포하고 있으며, 구덩식 화덕 자리에 주춧돌이 설치된 집자리 1기도 이곳에 위치한다. 조사 지역의 중심부와 동쪽 구릉에서는 역삼동 유형의 집자리가 확인된다. 집자리의 평면 형태는 세장방형과 장방형계가 대부분이며 일부 초세장방형과 송국리식도 확인된다. 면적은 25~55㎡에 해당하는 집자리가 중심을 이루며 규모가 큰 8호는 길이 10.31m, 너비 5.82m, 깊이 0.42m이다. 장단비는 1.8로 장방형의 평면 형태이다. 내부 시설은 돌 두름식 화덕 자리 2기, 2열 6행의 기둥 구멍, 저장 구덩이와 주춧돌 시설이 확인된다. 규모가 비슷한 9호는 길이 14.84m, 너비 3.96m, 깊이 0.38m이다. 장단비는 3.7로 매우 세장한 방형이다. 내부 시설은 돌 두름식 화덕 자리 3기와 구덩식 화덕 자리 1기, 6개의 기둥 구멍과 저장 구덩이, 주춧돌 시설이 확인된다. 화덕 자리는 집자리 1기당 최소 1개에서 최대 5개까지 확인된다. 형태는 돌 두름식 화덕 자리, 구덩식 화덕 자리, 돌 두름식(圍石式)+구덩식(土壙式)화덕 자리의 형태이며, 가락동 유형과 역삼동 유형의 요소가 복합적으로 확인되는 양상이다. 주춧돌과 기둥 구멍은 배치 양상에 따라 5가지로 구분되는데, 집자리 내 긴 벽을 따라 주춧돌이 2열로 설치된 형태, 중앙 1열로 주춧돌이 배치된 형태, 주춧돌과 기둥 구멍이 섞여 1열로 배치되는 형태, 기둥 구멍만 1열로 확인되는 형태, 이 외에 기둥 구멍이 없거나 알기 어려운 것도 있다. 저장 구덩이는 주춧돌과 짧은 벽의 사이에 주로 배치된다. 대부분 화덕 자리가 설치된 반대쪽 짧은 벽에서 확인된다. 저장 구덩이의 수는 적게는 1기, 많게는 수기로 확인되나 집자리의 규모와 관련하여 변화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유물은 토기류 94점, 석기류 54점이 출토되었다. 토기는 [[바리모양토기|발형토기(鉢形土器)]]와 [[항아리모양토기|항아리 모양 토기(壺形土器)]], [[검은간토기|검은 간 토기(黑色磨硏土器)]] 등이 출토되었으며, 문양이 시문된 토기는 [[골아가리토기|골아가리 토기(口脣刻目文土器)]] 2점이 출토되었다. 석기는 대부분 수렵구와 농공구의 용도로 사용된 [[돌살촉|돌살촉]], [[간돌검|간 돌검]], [[돌창|돌창(石槍)]], [[돌도끼|돌도끼(石斧)]], [[돌끌|돌끌(石鑿)]], [[돌칼|돌칼(石刀)]] 등이 출토되었으며 [[가락바퀴|가락바퀴]], 용도 불명의 석기도 일부 출토되었다. 소담동 유적 집자리에서 출토된 목탄 시료에 대한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 2760±40 BP, 2880±40 BP, 2910±40 BP 등의 연대값이 산출되었다. ==이미지== <gallery mode=packed heights=200px> File:세종_소담동_유적_103지점_22호_집자리.jpg File:세종_소담동_유적_103지점_집자리_출토_석기.jpg File:세종_소담동_유적_집자리_전경.jpg </gallery> ==참고문헌== * 백제문화재연구원. (2013). <i>행정중심복합도시부지 내 2-2지구 연기 장재리 유적</i>. https://www.riss.kr/link?id=M14897828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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