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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사천리 고인돌군[茂朱 斜川里支石墓群]}}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사천리 고인돌군 | 이칭별칭=무주 사천리 고인돌군, 무주 사천리 지석묘군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대한민국 | 소재지=전북특별자치도 무주군 적상면 사천리 515-40 일원 | 성격=고인돌 | 키워드=[[고인돌]], [[간 돌검]], [[바둑판식 고인돌]], [[돌널무덤]], [[통자루 간 돌검]], [[돌살촉]]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정다운 }} ==설명== 전북특별자치도 무주군 적상면 사천리 515-40 일원에 위치한다. 적상천을 사이에 두고 남북으로 길게 펼쳐진 평탄한 충적 대지상에 [[고인돌|고인돌]] 2기가 조성되어 있다. 이 중 1기가 1982년 경작 과정에서 파괴되면서 [[간돌검|간 돌검]] 등이 출토되어 매장 문화재 발견 신고가 이루어졌고, 훼손된 유구를 파악하기 위한 조사를 1983년 전주시립박물관이 실시하였다. 조사 결과 1호는 받침돌을 갖춘 [[기반식고인돌|바둑판식 고인돌(碁盤式支石墓)]]로 확인되었고, 2호는 형식을 알 수 없다. 1호 고인돌의 [[덮개돌|덮개돌]] 평면 형태는 평탄한 장방형이다. 규모는 장축 3m, 단축 2.3m, 두께 0.46m이다. [[받침돌|받침돌]]은 모두 3개가 확인되었으며, [[매장주체부|매장 주체부]]는 판돌을 이용한 [[돌널무덤|돌널무덤(石棺墓)]]이다. 규모는 장축 1.55m, 단축 0.55m, 높이 0.5m이다. 2호 고인돌의 덮개돌 평면 형태는 평탄한 장방형이며, 규모는 장축 2.58m, 단축 2.3m, 두께 0.3m이다. 유물은 1호 고인돌에서 [[통자루간돌검|통자루 간 돌검(一段柄式磨製石劍)]] 2점과 [[돌살촉|돌살촉(石鏃)]] 4점이 출토되었다. 부여 송국리 돌널무덤에서 출토되는 것과 유사한 형태이다. 따라서 유적의 연대는 1호 고인돌의 출토 유물을 통해 [[청동기시대|청동기 시대]] [[송국리문화|송국리 문화]] 단계로 추정해 볼 수 있다. 무주군의 바둑판식 고인돌은 설천면 소천리와 청량리 등지에서 확인되었고, 특히 사천리 고인돌과 500여 미터 떨어진 길왕리에서도 원반형의 거대한 거석(巨石)이 산재하고 있어 이들 유적과 상관 관계를 추정해 볼 수 있다. ==한국고고학저널== * "[http://portal.nrich.go.kr/kor/journalUsrDtlView.do?menuIdx=801&idx=1&d_idx=8 강원도 최북단의 위치하는 청동기시대 유적인 고성 송현리·사천리유적]", <i>2005 한국고고학저널</i>. ==참고문헌== * 전북대학교 전라문화연구소. (1997). <i>전-진주 간(무주-장계 간)고속 도로 건설사업 문화유적 시굴조사 보고서</i>. * 전주대학교박물관. (1988). <i>무주지방 문화재 지표조사 보고서</i>. https://www.riss.kr/link?id=M111606 * 한국학중앙연구원. (2017). <i>디지털무주문화대전</i>. https://muju.grandculture.net/muju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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