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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발안리 유적(華城 發安里遺蹟)}}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발안리 유적 | 이칭별칭=화성 발안리 유적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대한민국 | 소재지=경기도 화성시 향남읍 발안리 305 | 성격=복합유적 | 키워드=[[나무널무덤]], [[덧띠토기 문화]], [[덧띠토기]], [[검은 간 토기]]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이형원 }} ==설명==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 발안리 305에 위치한다. 2002~2003년 택지 개발 지구에 대한 발굴 조사를 실시하여 청동기 시대 [[목관묘|나무널무덤(木棺墓)]] 2기를 비롯하여 원삼국~삼국 시대(백제) [[집자리|집자리]] 59기, [[구덩이|구덩이]] 250기, 도랑 72기, 지상 건물 39기, [[독무덤|독무덤(甕棺墓)]] 4기, 야외 화덕자리(野外爐址) 4기, 노적(爐蹟) 7기 등을 확인하였다. 유적은 발안천 변의 충적 대지에 자리 잡고 있으며, 나무널무덤 2기는 [[덧띠토기문화|덧띠토기 문화(粘土帶土器文化)]]시기에 해당한다. 1호 및 2호 나무널무덤은 남북 방향을 향하며 서로 5m 정도 떨어져 있다. 무덤의 형태는 장방형이다. 1호 무덤의 규모는 길이 1.85m, 너비 0.55m, 깊이 0.4m이며, 2호 무덤은 길이 1.65m, 너비 0.55m, 깊이 0.45m이다. 1·2호 나무널무덤은 ‘U’자 모양의 점토 층이 확인되는 점으로 볼 때, 통나무 관을 썼던 것으로 보이며, 토층으로 볼 때 위 아래 각각 관과 뚜껑을 마련하고 내부를 판 뒤 시신과 유물을 안치한 것으로 추정된다. 나무널무덤의 부장품은 1호와 2호 무덤 각각 [[덧띠토기|덧띠토기(粘土帶土器)]]와 [[검은간토기|검은 간 토기(黑色磨硏土器)]]가 1점씩만 나왔다. 1호 나무널무덤은 검은 간 토기가 짧은 벽 쪽에 거의 붙어 있는 채 덧띠 토기와 떨어져 위치하는데 비해, 2호 나무널무덤은 검은 간 토기와 덧띠토기가 서로 곁에 붙어 있다. 유적의 연대는 기원전 3~2세기로 추정된다. 화성 지역에서는 이 시기의 무덤이 발굴 조사된 사례가 적으며, 이 지역에서 처음으로 확인된 덧띠 토기 시기 무덤이다. ==이미지== <gallery mode=packed heights=500px> File:화성_발안리_유적_1호_널무덤_및_출토_토기.jpg </gallery> ==참고문헌== * 기전문화재연구원. (2007). <i>화성 발안리 마을유적</i>. https://www.riss.kr/link?id=M12568601 * 박진일. (2006). 서울·경기지방 점토대 토기문화 시론. <i>고고학, 5-1</i>, 31-50. * 서길덕. (2018). <i>한국 덧띠 토기문화기 무덤 연구</i>. (박사 학위 논문). 세종대학교.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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