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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반교리 옥정 유적(完州 盤橋里玉井遺蹟)}}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반교리 옥정 유적 | 이칭별칭=완주 반교리 옥정 유적, 완주 옥정 유적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대한민국 | 소재지=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이서면 반교리 720 일원 | 성격=집자리 | 키워드=[[송국리식 집자리]], [[집자리]], [[민무늬 토기]], [[곧은 목 항아리]]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이종철 }} ==설명==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이서면 반교리 720 일원에 위치한다. 전주·완주 혁신 도시 개발 사업에 앞서 2010~2011년에 발굴 조사되었다. 유적은 북쪽으로 만경강, 동쪽으로 전주천이 흐르며, 주변으로 야트막한 구릉과 충적 평야가 발달해 있다. Ⅳ지구의 옥정 B유적에서 [[청동기시대|청동기 시대]] [[집자리|집자리]] 4기가 확인되었다. 집자리는 동서 방향으로 길게 뻗어 있는 해발 36m 내외의 구릉 능선과 남사면에 분포한다. 집자리는 4기가 조사되었으며, 모두 [[송국리식집자리|송국리식]]이다. 타원형 구덩이 내부 양쪽 가장자리에 2개의 기둥 구멍이 확인되며 2기는 원형이고, 2기는 방형이다. 집자리들은 각각 20~30m 거리를 두고 축조되었으며, 능선을 따라 일렬로 분포한다. 방형 1기와 원형 2기는 풍화 암반층을 정지하여 그대로 바닥을 삼은 반면, 나머지 방형 1기는 바닥에 점토 다짐 처리하였다. 집자리 내부에서는 별다른 시설이 확인되지 않았고, 원형 집자리 1기에서만 부분적으로 벽 도랑(壁溝)이 조사되었다. 집자리의 면적은 10㎡ 내외~20㎡ 사이에 분포하고 있어 중소규모에 해당한다. 집자리에서는 [[민무늬토기|민무늬 토기]] 편, [[돌살촉|돌살촉]], [[숫돌|숫돌(砥石)]] 등이 출토되었다. 민무늬 토기는 소형의 [[바리모양토기|바리 토기(鉢形土器)]]를 제외하면 대부분 형태를 알 수 없다. 다만 원형 집자리(4호)에서 [[호형토기|곧은 목 항아리(壺形土器)]] 편이 바닥에서 출토된 점은 특기할 만하다. 유적에서는 연대를 고찰할 만한 자료가 거의 없기 때문에 특정 시기를 세부적으로 설정하기 어렵다. ==이미지== <gallery mode=packed heights=400px> File:완주_반교리_옥정_유적_4호_집자리.jpg </gallery> ==참고문헌== * 전북문화재연구원. (2013). <i>완주 옥정 유적</i>. https://www.riss.kr/link?id=M13543418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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