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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미음동 유적(釜山 美音洞遺蹟)}}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미음동 유적 | 이칭별칭=부산 미음동 유적, 분절 유적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대한민국 | 소재지=부산광역시 강서구 미음동 1553-4 일원 | 성격=복합유적 | 키워드=[[고인돌]], [[돌뚜껑움무덤]], [[집자리]], [[구덩이]], [[고상식 기둥 건물터]], [[붉은 간 토기 항아리]], [[통자루 간 돌검]], [[슴베 간 돌살촉]], [[민무늬 토기]], [[굽다리 토기]], [[홈자귀]], [[돌대팻날]], [[가락바퀴]], [[그물추]], [[송국리식 집자리]]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배진성 }} ==설명== 부산광역시 강서구 미음동 1553-4 일원에 위치한다. 부산·진해 경제 자유 구역 개발 사업에 앞서 2010~2011년 조사하여 [[고인돌|고인돌]] 10기, [[돌뚜껑움무덤|돌뚜껑움무덤(石蓋土壙墓)]] 2기, [[집자리|집자리]] 2기, [[구덩이|구덩이]] 1기, [[고상식기둥건물터|고상식 기둥 건물터]] 4기가 확인되었다. 유적은 ‘분절 고인돌’이 있다고 알려져 왔던 나지막한 구릉의 말단부에 입지한다. 인접하여 [[신석기시대|신석기 시대]]의 [[부산범방유적|부산 범방 유적]], [[청동기시대|청동기 시대]]의 [[김해율하리유적|김해 율하리 유적]] 및 [[김해무계리고인돌|무계리 고인돌]], 삼국 시대의 [[부산미음동분절조개더미|분절 조개더미(貝塚)]] 등이 있다. 고인돌은 [[구획묘|구획묘(區劃墓)]] 혹은 [[묘역식고인돌|묘역식(墓域式) 고인돌]]로, 묘역이 다수 파괴되었으나 원형, 방형, 장방형으로 추정된다. 3-1·2·3호와 8호의 묘역은 연접하여 축조되었다. 구획석은 대부분 1단만 남아있고, 부분적으로는 2단 이상 남아 있다. 4·5호 무덤은 구획석의 바깥쪽에서 [[구|도랑(周溝)]]이 확인되었다. 6호 외에는 가장자리의 구획석 안쪽으로 깐 돌(敷石)이 확인되며, 이것을 걷어 내면 매장 주체부 위를 크고 작은 깬돌(割石)로 1~6겹 쌓은 [[뚜껑돌|뚜껑돌(蓋石)]]이 확인된다. 뚜껑돌 사이와 가장 윗부분에는 다양한 크기의 잡석(雜石)과 함께 점성이 강한 흙으로 밀봉되었다. 대부분 다단(多段) [[묘광|무덤 구덩이(墓壙)]]로, 벽면은 깬돌로 정연하게 축조된 것, 불규칙하게 빈 공간에 적갈색 점토를 충전한 것, 아무 시설도 하지 않은 것이 있고 짧은 벽에는 대형 깬돌 1매를 세웠다. 8·9호에는 [[나무널|나무널(木棺)]]의 충전석으로 판단되는 깬돌이 벽면의 아래쪽에 놓여졌다. 바닥에는 판돌 모양의 깬돌을 일부만 깐 것, 3매를 간격을 두고 설치한 것, 짧은 벽 쪽에 1매만 설치한 것이 있다. 7호에서는 [[덮개돌|덮개돌(上石)]]이 확인되었다. 1·10호는 돌뚜껑움무덤으로 집자리를 파괴하고 설치되었으며, 뚜껑돌의 축조 상태는 구획묘의 경우와 유사하다. 출토 유물은 [[붉은간토기항아리|붉은 간 토기 항아리]]가 짧은 벽 또는 모서리 쪽, [[통자루간돌검|통자루 간 돌검(一段柄式磨製石劍)]]과 [[슴베간돌살촉|슴베 간 돌살촉(有莖式磨製石鏃)]]은 긴 벽 중앙에서 출토되었다. 붉은 간 토기 항아리의 경우 북쪽 긴 벽의 셋째 단과 넷째 단 사이에 감실처럼 마련된 공간(4호), 매장 주체부 바로 위의 1차 뚜껑돌 위(5호), 1차 뚜껑돌 바로 위에 거꾸로(9호) 부장되었다. 특히 8호에서는 짧은 벽 모서리에 매납하고 그 위에 정사면체로 다듬은 돌을 얹어 놓았는데 유기질제의 상자에 넣어 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외에 묘역에 사용된 깬돌과 뚜껑돌 위에 덮인 잡석들 사이 및 둘레 도랑의 내부와 상부에서도 붉은 간 토기 항아리, [[민무늬토기|민무늬 토기]] 편, [[굽다리토기|굽다리 토기(豆形土器)]], [[간돌검|간 돌검]], [[간돌살촉|간 돌살촉]], [[돌칼|돌칼]] 편, 미완성 [[돌도끼|돌도끼]], [[홈자귀|홈자귀(有溝石斧)]], [[돌대팻날|돌대팻날(扁平片刃石斧)]], 토제 및 석제 [[가락바퀴|가락바퀴]], 토제 [[그물추|그물추]] 등이 출토되었다. 집자리는 원형이며 바닥은 단단하게 다져 만들었다. 1호는 타원형 구덩이와 그 바깥쪽에 접하여 설치된 기둥 구멍이 확인되어 [[송국리식집자리|송국리식 집자리]]이다. 유물은 집자리의 상부에서 [[골아가리구멍무늬토기|골아가리 구멍무늬 토기(口脣刻目孔列土器)]] 편, [[돌끌|돌끌(石鑿)]], 토제 가락바퀴 등이 출토되었다. 고상식 기둥 건물은 무덤 구역과는 일정한 거리를 둔 구릉의 평탄면에 조성되었다. 2기는 기둥 구멍이 6개로 이루어진 2×1칸의 형태로 저장 시설이나 소규모 집자리로 이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나머지 2기는 기둥 구멍 4개로 이루어진 1×1칸의 형태로 저장 시설일 가능성이 높다. 유물은 출토되지 않았다. 유적의 시기는 송국리식 집자리를 파괴하고 조성되어, 송국리 단계에서도 늦은 시기로 판단된다. 비슷한 성격의 김해 율하리 유적은 구릉의 높은 곳에 집자리가 배치되고, 사면의 낮은 곳에 무덤이 배치되었다. 이를 통해 미음동 유적의 무덤 조성 집단의 집자리는 기둥 건물 위쪽에 위치할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유적에서 확인되는 원형, 장방형 묘역이 연접된 유적은 [[사천소곡리유적|사천 소곡리]], [[창원진동리유적|창원 진동리]], 김해 율하리 등이 있으며, 부산 지역에서의 예는 미음동 유적이 처음으로 중요한 비교 자료가 된다. ==이미지== <gallery mode=packed heights=200px> File:부산_미음동_유적_3-1호_묘역식_고인돌.jpg File:부산_미음동_유적_전경.jpg </gallery> ==조사정보== {|class="listtable" ! class="col-type" | 유형 !! 조사 시기 !! 보고서명 !! 발간 연도 !! 조사 기관 |- | 발굴조사 || 2010년 4월 2일~2011년 3월 17일 || 분절 유적 || 2013 || 부산박물관 |- | 시굴조사 || 2009년 5월 14일~2009년 12월 8일 || 분절 유적 || 2013 || 경남 문화재연구원, 복천박물관 |} ==참고문헌== * 부산박물관. (2013). <i>분절 유적</i>. https://excavation.co.kr/bookList/view?idx=7077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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