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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망양리·덕신리 오산 유적(蔚州 望陽里·德新里吾山遺蹟)}}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망양리·덕신리 오산 유적 | 이칭별칭=울주 망양리·덕신리 오산 유적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대한민국 | 소재지=울산광역시 울주군 온양읍 망양리 220-12, 덕신리 823-6, 849-12 일원 | 성격=복합유적 | 키워드=[[집자리]], [[구덩이]], [[검단리식 집자리]], [[그물추]], [[가락바퀴]], [[바리 토기]], [[항아리 모양 토기]], [[붉은 간 토기]], [[돌도끼]], [[돌살촉]], [[간 돌검]], [[돌창]], [[사냥돌]], [[공이]], [[숫돌]], [[돌낫]], [[갈돌]], [[반달 돌칼]], [[흔암리 유형]], [[검단리 유형]]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황창한 }} ==설명== 울산광역시 울주군 온양읍 망양리 220-12, 덕신리 823-6, 849-12 일원에 위치한다. 도로 개설에 앞서 2006~2007년 구역을 나누어 조사하여, 망양리 Ⅱ지구에서 [[집자리|집자리]] 2기, 덕신리 오산 Ⅰ지구에서 집자리 9기, [[구덩이|구덩이]] 1기, Ⅱ지구에서 집자리 21가 확인되었다. 집자리의 형태는 장방형, 방형이며, 내부에 [[기둥구멍|기둥 구멍]], [[벽도랑|벽 도랑(壁溝)]], [[화덕자리|화덕 자리]], 배수구(排水口)를 갖춘 [[검단리식집자리|검단리식 집자리]]이다. 망양리 Ⅱ-1호와 덕신리 Ⅰ-1호는 유적에서 가장 규모가 크며, 내부 구조와 배치에서 차이가 있다. 면적은 각각 50.9㎡, 47.4㎡로 다른 집자리의 2~3배 이상 규모가 크다. 망양리 Ⅱ-1호는 기둥 구멍이 없고, 벽체에서 목탄의 흔적이 확인되어 바닥에 바로 기둥을 세웠던 것으로 추정되며, 바닥에는 부분적으로 불탄 흔적이 확인된다. 집자리의 기둥 구멍 배치는 4·6·8·10주식(柱式)으로 다양하며, 장방형은 대부분 6주식으로 추정되지만 기둥 구멍이 없는 집자리도 많다. 집자리의 장폭비는 초대형과 방형을 제외하면 대부분 1:1.4이다. 화덕 자리는 대부분 [[구덩식화덕자리|구덩식(竪穴式)]]이며, 망양리 Ⅱ-1호는 구덩식과 [[돌두름식화덕자리|돌 두름식(圍石式)]]이다. 덕신리 Ⅰ-3호의 화덕 자리에서는 토기 편이 다량으로 출토되었다. 벽 도랑은 27기에서 확인되며 이중 [[벽기둥구멍|벽 기둥 구멍(壁柱穴)]]이 확인된 것은 8기이다. 벽 기둥 구멍은 지름 약 0.2m이며, 1m 간격으로 설치되어 있다. 외부로 돌출된 배수구가 확인된 집자리는 6기이다. 배수구 중 덕신리 Ⅱ-2호는 터널형으로 만들었고, Ⅱ-15호는 배수구 입구에 작은 깬돌(割石) 4매가 바닥과 벽면에 비스듬히 세워진 암거식(暗渠式)이다. 바닥면은 모두 맨땅을 그대로 사용하였고, 화재로 바닥과 벽면에서 불탄 흙(燒土) 및 목탄이 확인되었다. 덕신리 Ⅰ-2·5호는 부분적으로 벽면과 이어진 바닥에 불탄 흙이 집중되며, 덕신리 Ⅱ-12·15호는 탄화된 목재가 그대로 확인되었다. 유물은 총 205점으로 토기 90점, 석기 45점, [[그물추|그물추]] 68점, [[가락바퀴|가락바퀴]] 2점이다. 토기류는 [[바리모양토기|바리 토기(鉢形土器)]], [[항아리모양토기|항아리 모양 토기(壺形土器)]], [[붉은간토기|붉은 간 토기]]가 확인되었다. 무늬는 [[단사선문|짧은 빗금무늬(短斜線文)]], [[구멍무늬|구멍무늬]], [[낟알무늬|낟알무늬]]가 단독으로 확인되며, 복합 무늬는 [[골아가리반관통구멍무늬|골아가리 반관통 구멍무늬]], [[골아가리구멍무늬|골아가리 구멍무늬(口脣刻木孔列文)]], [[골아가리짧은빗금겹아가리반관통구멍무늬|골아가리 짧은 빗금 겹아가리 반관통 구멍무늬]], [[겹아가리구멍무늬토기|겹아가리 구멍무늬]], [[겹아가리짧은빗금무늬|겹아가리 짧은 빗금무늬]], [[겹아가리짧은빗금구멍무늬|겹아가리 짧은 빗금 구멍무늬]], [[짧은빗금낟알무늬|짧은 빗금 낟알무늬]]로 총 10가지이다. 겹아가리의 형태는 아가리(口緣部)의 덧띠가 선으로 표현되거나 접합 흔이 부분적으로 지워져 흔적만 남은 형태가 많다. 낟알무늬는 내측에서 외부로 반관통하여 표면을 융기시킨 형태가 대부분이다. 구멍무늬는 외부에서 내부로 반관통, 관통한 것이 출토되었다. 짧은 빗금무늬는 짧고 가는 형태와 굵은 낟알무늬가 확인되었다. 석기는 [[돌도끼|돌도끼]], [[돌살촉|돌살촉]], [[간돌검|간 돌검]], [[돌창|돌창(石槍)]], [[사냥돌|사냥돌]], [[공이|공이]], [[숫돌|숫돌(砥石)]], [[돌낫|돌낫(石鎌)]], [[갈돌|갈돌(碾石捧)]], [[반달돌칼|반달 돌칼]], 미완성 석기 등이다. 돌도끼는 [[합인석부|조갯날 돌도끼(蛤刃石斧)]], [[돌대팻날|돌대팻날(扁平片刃石斧)]], [[기둥모양돌자귀|기둥 모양 돌자귀(柱狀片刃石斧)]]이다. 돌살촉은 덕신리 Ⅰ-1·8호에서 슴베 없는 것(無莖式)과 슴베식(有莖式)이 각각 1점씩 출토되었다. 덕신리 Ⅱ-15호 출토 미완성 석기는 집자리로 반입한 후 완성하여 사용하였음을 추정할 수 있다. 이외에 망양리 Ⅱ-1·2호와 덕신리 Ⅰ-5호 집자리에서 그물추가 많이 출토되었는데, 대부분 단면 형태가 원통 모양(圓筒形)이거나 공 모양(球形)이다. 인접해 있는 회야강에서의 어로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유적의 중심 연대는 복합무늬가 대부분으로, 일부는 [[흔암리유형|흔암리 유형]] 단계에 해당하며 [[검단리유형|검단리 유형]] 단계까지 이어질 것으로 판단된다. 집자리에서 출토된 탄화 종실(種實) 분석 결과, 초본 식물이 주를 이루며 재배 식물로는 벼, 기장, 조, 보리가 확인되었다.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을 통해 상한은 덕신리 Ⅱ-12호에서 3090±60 BP(보정 연대 기원전 1350년), 하한은 덕신리 Ⅱ-15호에서 2800±60 BP(보정 연대 기원전 970년)로 확인되었다. ==이미지== <gallery mode=packed heights=300px> File:울산_망양리_덕신리_오산_유적_II지구_2호_집자리.jpg File:울산_망양리_덕신리_오산_유적_II지구_전경.jpg File:울산_망양리_덕신리_오산_유적_I지구_1호_집자리_출토_토기.jpg </gallery> <gallery mode=packed heights=800px> File:울산_망양리_덕신리_오산_유적_I지구_1호_집자리_및_출토_유물.jpg </gallery> ==조사정보== {|class="listtable" ! class="col-type" | 유형 !! 조사 시기 !! 보고서명 !! 발간 연도 !! 조사 기관 |- | 발굴조사 || 2006년 12월 18일~2007년 11월 29일 || 울산 망양리·덕신리 오산 유적 || 2009 || 울산문화재연구원 |} ==참고문헌== * 울산문화재연구원. (2009). <i>울산 망양리·덕신리오산유적</i>.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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