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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두호리 유적(固城 頭湖里遺蹟)}}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두호리 유적 | 이칭별칭=고성 두호리 유적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대한민국 | 소재지=경상남도 고성군 마암면 두호리 214 일대 | 성격=고분 | 키워드=[[돌널무덤]], [[가지무늬 토기]], [[천하석제 장식 옥]]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윤호필 }} ==설명== 경상남도 고성군 마암면 두호리 214 일대에 위치한다. 대전-통영 간 고속 도로 건설에 앞서 1998년 조사하여, [[돌널무덤|돌널무덤(石棺墓)]] 3기를 확인하였다. 유적은 두호 마을 서쪽에 위치하는 사월산(四月山)에서 동남쪽으로 뻗은 구릉에 입지하며, 돌널무덤은 일정 간격을 두고 나란하게 배치되어 있다. 동쪽으로는 만(灣)을 따라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어, 이 일대의 [[청동기시대|청동기 시대]] 유적이 바다와 밀접한 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1호는 돌널 일부만 남아있으며, [[묘광|무덤 구덩이(墓壙)]]는 길이 2.2m, 너비 0.72~0.9m, 깊이 0.23m이다. 판돌(板石) 등을 통해 돌널무덤으로 판단되며, 바닥에는 일정 범위에 깬돌(割石)로 별도의 [[부장공간|부장 공간(副葬空間)]]을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2호는 말각 장방형이며 길이 0.88m, 너비 0.21m, 깊이 0.13m이다. 네 벽석과 바닥석은 각각 1매의 판돌로 조립하였으며, 1호와 같이 돌널 밖에 별도로 껴묻기 공간을 마련하였다. 3호는 타원형에 가까우며, 긴 벽과 바닥은 여러 매의 석재를 이용하여 축조하였다. 짧은 벽은 각 1매, 북쪽 긴 벽 3매, 남쪽 긴 벽 4매, 바닥은 4매의 판돌로 축조하였는데, 벽석은 바닥에 홈을 파서 세웠다. 유물은 출토되지 않았지만, 서쪽 짧은 벽과 무덤 구덩이 사이에 공간이 확보된 것으로 보아 1·2호 돌널무덤과 같이 유물 껴묻기 공간을 따로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출토 유물은 1·2호에서 [[가지무늬토기|가지무늬 토기(彩文土器)]] 2점이 각각 확인되었으며, 2호에서는 [[천하석제장식옥|천하석제 장식 옥(飾玉)]] 1점 등이 출토되었다. 돌널무덤의 짧은 벽 쪽에 별도의 껴묻기 공간을 마련하는 구조는 [[진주대평리유적|진주 대평리 유적]], [[창원신촌리유적|마산 신촌리 유적]], [[창원진동리유적|마산 진동리 유적]] 등에서 확인되며, 바다와 인접해 있는 지역에 분포하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천하석제 장식 옥은 경상남도 서부 지역과 전라도 동부 지역에서 출토되는 것과 같은 특징을 보이고 있어 상호 관련성이 주목된다. ==참고문헌== * 경남고고학연구소. (2000). <i>고성 두호리 유적</i>.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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