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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구수리 유적(蔚州 九秀里遺蹟)}} {{유적정보 | 한글표제어=구수리 유적 | 이칭별칭=울주 구수리 유적 | 시대=청동기 시대 | 위치=대한민국 | 소재지=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구수리 산270-4, 664 일대 | 성격=복합유적 | 키워드=[[집자리]], [[도랑]], [[화덕자리]], [[기둥 구멍]], [[구멍무늬 토기]], [[깊은 바리 토기]], [[항아리 모양 토기]], [[슴베 간 돌살촉]], [[홈 자루 간 돌검]], [[조갯날 돌도끼]], [[반달 돌칼]], [[달도끼]], [[숫돌]], [[가락바퀴]], [[그물추]]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정대봉, 유병일 }} ==설명==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구수리 산270-4, 664 일대에 위치한다. 언양 하수 종말 처리장 건립으로 울산발전연구원 문화재센터에서 2001~2002년 조사하여(구수리 유적), [[집자리|집자리]] 28기가 확인되었다. 이후 경부 고속 철도 울산역 진입 도로 개설로 울산문화재연구원이 2009년 조사하여(구수리 277 유적), 집자리 22기를 확인하였다. 유적은 태화강의 상류 하안단구에 위치하며, 주변으로 [[울주구영리유적|구영리 유적]], 구수리 유적, [[울주교동리유적|교동리 유적]], [[울주천상리유적|천상리 유적]] 등 [[청동기시대|청동기 시대]] 유적이 밀집한다. 두 유적은 1㎞ 떨어져 위치한다. '''구수리 유적'''(구수리 664)의 집자리는 장방형, 방형으로 구분된다. 장방형은 길이 6~7m, 방형은 길이 4~5.5m이며, 장방형 1기와 방형 2~3기가 등고선과 평행하여 군집을 이룬다. 내부 시설은 벽 [[구|도랑(壁溝)]], [[화덕자리|화덕자리]]가 설치되었다. 벽 도랑은 단면 ‘U’자 모양으로 네벽 또는 세 벽에 설치되었고, 일부는 배수로(排水路)가 연결되어 설치된 예도 있다. 화덕 자리는 대부분 [[구덩식화덕자리|구덩식(竪穴式)]]이며, 8호는 길이 20㎝ 내외의 강돌(川石) 5매를 깔았다. 집자리의 바닥은 맨땅을 그대로 이용한 경우가 많고, 11·20호는 바닥에 깬돌(割石)이 깔려 있다. 유물 중 토기류는 [[구멍무늬|구멍무늬(孔列文)]]와 [[단사선문|짧은 빗금무늬(短斜線文)]]가 새겨진 [[깊은바리모양토기|깊은 바리 토기(深鉢形土器)]]와 [[호형토기|항아리 모양 토기(壺形土器)]]가 출토되었다. 석기류는 [[슴베간돌살촉|슴베 간 돌살촉(有莖式磨製石鏃)]], [[홈자루간돌검|홈 자루 간 돌검(二段柄式磨製石劍)]], [[합인석부|조갯날 돌도끼(蛤刃石斧)]], [[반달돌칼|반달 돌칼]], [[달도끼|달도끼(環狀石斧)]], [[숫돌|숫돌(砥石)]], 미완성 석기 등이 있고, [[가락바퀴|가락바퀴]]가 출토되었다. '''구수리 277 유적'''의 집자리는 등고선과 평행하게 2~3동씩 무리를 지어 분포한다. 17·18호, 21·22호 등 일부 집자리는 서로 겹쳐서 조성되었다. 집자리의 형태는 장방형 14기, 방형 4기, 세장방형 2기이며 2기는 파괴되어 형태를 알 수 없다. 22호는 길이 10.5m, 너비 3.6m, 깊이 0.6m로 가장 크다. 내부 시설은 화덕 자리, 벽 도랑, [[기둥구멍|기둥 구멍]] 등이 있고, 아래쪽 모서리 한 쪽에는 외부로 향하는 배수구가 설치되었다. 화덕 자리는 10기에서 확인되며, 22호를 제외하고 모두 한쪽 벽면에 치우쳐 1개씩 설치되었다. 화덕 자리의 구조는 구덩식(竪穴式) 3기, 평지식 7기이다. 벽 도랑은 ‘ㄱ’, ‘ㄷ’자 모양으로 설치하거나 일부는 ‘ㅡ’자 모양으로 부분적으로 설치한 형태도 있다. 기둥 구멍은 대부분 1~2개만 확인되며, 1호는 절반 이상이 파괴되었으나, 4개의 기둥 구멍이 확인되어 8주식(柱式)으로 추정된다. 또한 10·14·16호는 [[벽기둥구멍|벽 기둥 구멍(壁柱穴)]]이 확인되었다. 17·20호에서는 바닥에서 [[선반시설|선반(高床部) 시설]]이 확인된 것이 특징이다. 선반은 바닥보다 약 10㎝ 높여서 설치하였으며 형태는 ‘ㄱ’,‘ㄷ’자 모양이다. 울산 지역에서 이러한 선반 모양의 시설은 [[울산신현동황토전유적31호집자리|울산 신현동 황토전 유적 31호 집자리]]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집자리의 폐기는 화재로 인한 폐기가 5기, 인위적으로 돌을 쌓은(積石) 집자리 2기가 확인되며, 나머지는 자연적으로 폐기되었다. 출토 유물 중 토기류는 겹아가리(二重口緣)+골아가리(口脣刻目)+짧은 빗금무늬의 복합무늬와 구멍무늬(孔列文), 낟알무늬 등의 단순무늬가 확인되는 깊은 바리 토기 및 항아리 모양 토기가 확인되었다. 이외에 가락바퀴 및 [[그물추|그물추]]도 출토되었다. 석기류는 [[돌창|돌창(石槍)]], 조갯날 돌도끼, 반달 돌칼, 숫돌 등이 출토되었다. 구수리 277 유적의 14·16·22호 집자리 등은 [[흔암리유형|흔암리 유형]] 단계에 해당하고, 그 외 대부분의 집자리는 [[검단리유형|검단리 유형]] 단계로 판단된다. 구수리 유적은 태화강 상류의 청동기 시대 전 시기의 문화를 종합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유적으로 학술적 가치가 크다. ==이미지== <gallery mode=packed heights=200px> File:울산_구수리_유적(구수리_277_유적)_1호_집자리.jpg File:울산_구수리_유적(구수리_277_유적)_22호_집자리.jpg File:울산_구수리_유적(구수리_277_유적)_출토_유물.jpg File:울산_구수리_유적_A지구_1호_집자리.jpg </gallery> ==조사정보== {|class="listtable" ! class="col-type" | 유형 !! 조사 시기 !! 보고서명 !! 발간 연도 !! 조사 기관 |- | 발굴조사 || 2001년 12월~2002년 9월 || 울주 구수리 유적 || 2004 || 울산발전연구원 문화재센터 |- | 발굴조사 || 2009년 || 울산중산동542유적–부록. 울산구수리277유적 || 2011 || 울산문화재연구원 |} ==참고문헌== * 울산문화재연구원. (2011). <i>울산 중산동 542 유적-부록 울산 구수리 277 유적</i>. * 울산발전연구원 문화재센터. (2004). <i>울주 구수리 유적</i>. https://excavation.co.kr/bookList/view?idx=5084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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