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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차오난 유적(依蘭 橋南遺蹟)}} {{유적정보 | 이칭별칭=교남 유적(依蘭 橋南遺蹟) | 키워드=[[집자리]], [[구덩이]], [[도랑]], [[초기 철기 시대]] | 시대=청동기 | 위치=중국 | 집필연도=2019 | 집필자=김재윤 | 조성 시기=기원전 5~4세기 | 기원전 2~1세기 | 성격=복합유적 | 소재지=중국 헤이룽장성(黑龍江省) 하얼빈시(哈爾濱市) 이란현(依蘭縣)에서 남쪽으로 1.5㎞ 떨어진 무단강(牧丹江) 하류 동쪽 대지 위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설명== 중국 헤이룽장성(黑龍江省) 하얼빈시(哈爾濱市) 이란현(依蘭縣)에서 남쪽으로 1.5㎞ 떨어진 무단강(牧丹江) 하류 동쪽 대지 위에 위치한다. 유적의 북쪽에는 하퉁(哈同) 고속 도로가 지나가고, 북쪽으로 3㎞ 거리에서 무단강과 쑹화강(松花江)이 합류한다. 1979년 문물 조사에서 처음 발견되었으며, 1997년 하퉁 고속 도로 건설 과정에서 조사되었다. 조사 결과 [[집자리|집자리]] 6기, [[구덩이|구덩이(竪穴)]] 19기, [[구|도랑(溝)]] 5기 등이 확인되었다. 유적은 상층과 하층으로 나뉘는데, 상층은 요·금 시대이다. 하층은 다시 2층으로 구분되는데, 1기층은 이른 단계로 [[청동기시대|청동기 시대]]에 해당되며, 2기층은 [[초기철기시대|초기 철기 시대]]에 해당된다. 청동기 시대 층에서는 집자리 3기가 발견되었다. 가장 잘 남아 있는 F5는 반지하식의 장방형으로, 길이 8.7m, 너비 7.1m이다. 출입 시설은 동쪽 벽 중앙에 나있으며, 길이 1m, 너비 0.8~1.1m로 약간 경사져 있다. 바닥은 진흙을 약 5㎝ 두께로 깔고 불 다짐 처리하여 단단하다. [[화덕자리|화덕 자리]]는 집자리의 중앙에서 약간 서쪽에 치우쳐 위치한다. 돌 두름식(圍石式)으로, 지름 0.2m, 깊이 0.15m의 구덩이를 파고 판돌(板石)로 가장자리를 둘렀다. 기둥 구멍은 모두 9개가 확인되며, 그중 3개는 화덕 자리 주변에 배치되어 있다. 기둥 구멍은 화덕 자리를 향해 기울어져 있어 조리 기구를 걸기 위해 설치한 삼각 지지대의 자리로 추정된다. 집자리 서쪽과 남쪽 벽에 1열로 배열된 소형 구덩이가 확인된다. 깊이가 얕고 불로 다진 흔적이 있으며, 완형의 토기가 확인되어 사용하던 토기를 놓아두던 공간으로 판단된다. 이밖에 집자리 동북쪽 모서리에는 길이 1.5m, 너비 0.8m의 장방형 흙단(土臺)이 설치되어 있다. 바닥면보다 0.1m 정도 높게 만들었으며, 상부에 2개의 구멍을 내고 대형 [[옹|옹(甕)]] 1점과 [[관|관(罐)]] 1점을 배치하였다. 흙단은 토기를 올려놓기 위해 제작된 시설로 추정된다. 집자리 내부에서 다량의 목탄과 불에 탄 흙이 발견되고 있어 화재 집자리로 판단된다. 출토 유물은 토기, 석기, 골각기 등이 확인되었다. 토기는 모래가 섞인 황갈색 계통이 주를 이루며, 회갈색과 흑갈색 혹은 붉은색의 [[홍의도|홍의도(紅衣陶)]]가 소량 출토되었다. 종류로는 옹, 관, [[발|발(鉢)]], [[분|분(盆)]] 등이 있다. 옹은 높이 50㎝의 대형으로, 동체부에 1~5줄의 [[철현문|철현문(凸弦文)]]을 돌리고, 그 사이는 세로 방향의 선을 새겨 넣었다. 일부는 구연부에 [[지압문|지압문(指壓文)]]이 있다. 관은 20㎝ 내외의 중형으로, 동체부에 점토대(粘土帶)를 돌렸다. 일부 구연부에는 세로 방향의 손잡이가 달려 있다. 석기는 [[석부|석부(石斧)]], [[석비|석비(石匕)]], [[석도|석도]], [[석촉|석촉]], [[어망추|어망추(漁網錐)]], [[연석|연석(硏石)]], [[석봉|석봉(石棒)]] 등이 있으며, [[동포|동포(銅泡)]]도 1점 발견되었다. 골각기는 수량이 매우 많고 형태도 다양하다. [[골촉|골촉(骨鏃)]], [[골추|골추(骨錐)]], [[골침|골침(骨針)]], 호미, 어로 도구, 장신구 등이 있다. 이 중 [[십자형골기|십자형 골기(十字形骨器)]]는 동검 형태를 띠고 있어 매우 특징적이다. 초기 철기 시대층에서도 집자리 3기가 조사되었다. 형태는 방형이며 구조 등은 1기와 유사하지만 규모는 작다. 2기에는 철기가 출토되고, 구연부에 [[말갈관|말갈관(靺鞨罐)]]과 뿔 모양 손잡이가 달린 [[단이배|단이배(單耳杯)]] 등이 확인되었다. 유적의 연대는 청동기 시대인 하층 1기층은 기원전 5~4세기, 2기층은 기원전 2~1세기로 판단된다. 다만 2기층은 철기가 출토되는 것을 제외하면, 집자리의 구조와 형태, 출토 유물의 특징이 1기층과 유사하여 동일 시기로 볼 수 있다. 연대는 기원전 2세기에서 기원 전후에 해당된다. 이 유적은 지금까지 헤이룽장성 동부 지역에서 발견된 초기 철기 시대 유적 중 가장 이른 시기에 해당하며, 쑹넌평원(松嫩平原)에서 싼장평원(三江平原)으로 통하는 길목에 위치하여 두 지역 간 문화 교류 양상과 초기 철기 문화의 유입 과정을 살펴보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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