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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완파보쯔 유적(通化 萬發撥子遺蹟)}} {{유적정보 | 이칭별칭=퉁화 완파보쯔 유적, 통화 만발발자 유적(通化 萬發撥子遺蹟), 왕바보어쯔 유적(王八脖子遗址) | 키워드=[[집자리]], [[움무덤]], [[돌널무덤]], [[대개석묘]], [[구덩이]], [[마청쯔 문화]], [[신청쯔 문화]], [[발]], [[점토대 토기]], [[무문 토기]], [[대개석적석묘]], [[관]], [[점토대토기 문화]] | 시대=청동기 | 초기철기 | 위치=중국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이후석 | 조성 시기=상·주 시대(Ⅱ기) | 춘추 전국 시대(Ⅲ기) | 서한 시기(Ⅳ기) | 성격=복합유적 | 소재지=중국 지린성(吉林省) 퉁화시(通化市) 둥창구(東昌區) 진창진(金廠鎭) 웨진촌(躍進村) 완파보쯔(萬發撥子) 마을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설명== 중국 지린성(吉林省) 퉁화시(通化市) 둥창구(東昌區) 진창진(金廠鎭) 웨진촌(躍進村) 완파보쯔(萬發撥子) 마을에 위치한다. 훈장강(渾江)으로 유입되는 진창강(金廠河)의 북쪽 구릉에 입지한다. 원래 명칭은 ‘왕바보어쯔 유적(王八脖子遗址)’인데, 1997~1999년까지의 발굴 조사 이후 ‘완파보쯔 유적’으로 바뀌었다. 유적의 면적은 동서 길이 약 750m, 남북 너비 약 200m로, 선사 시대 이래 여러 시대에 걸친 유구들이 다수 확인되었다. 유적 중앙부를 관통하는 마을 도로를 기준으로 남서쪽의 거주 구역(Ⅰ~Ⅳ지역)과 북동쪽의 매장 구역(Ⅴ~Ⅷ지역)이 서로 분리되어 있다. 보고서에서는 선사~고대의 유구들을 크게 5단계로 구분하였는데, Ⅱ기는 상·주 시대, Ⅲ기는 춘추 전국 시대, Ⅳ기는 서한 시기 유구들이 각각 [[청동기시대|청동기 시대]]와 [[초기철기시대|초기 철기 시대]]에 해당한다. 생활 유적은 Ⅱ~Ⅳ기, 무덤은 Ⅲ~Ⅳ기에서 확인된다. [[집자리|집자리]]는 Ⅱ기에서 2기, Ⅲ기에서 11기, Ⅳ기에서 3기로 총 14기가 확인되었다. Ⅱ·Ⅲ기는 [[반지하식집자리|반지하식]]이며, 길이 3~6m 내외이다. 형태는 방형과 장방형이며, 일부는 외부 돌출형의 출입 시설도 확인된다. 바닥 중앙이나 가장자리에 [[화덕자리|화덕 자리]]가 있고, 가장자리를 중심으로 [[기둥구멍|기둥 구멍]]이 확인된다. 바닥은 황토 또는 모래로 다졌다. Ⅳ기는 지상식의 흙담 또는 돌담이다. 규모는 길이 5~6m, 너비 3~4m이다. 벽체 외에 굴뚝자리나 구들자리도 확인되었다. 집자리 주변으로 저장 시설로 추정되는 [[구덩이|구덩이]]가 확인되는데, 평면 형태는 원형이나 타원형이다. 규모는 지름 1~2m 내외로 Ⅱ기에서 2기, Ⅲ기에서 70기, Ⅳ기에서 32기가 확인되었다. 출토 유물은 Ⅲ기에서 주로 확인된다. 토기류는 홍갈색의 [[무문토기|무문 토기]]가 많다. 교상 파수(橋狀把手)가 세로 방향으로 달린 [[호|호(壺)]]나 [[관|관(罐)]], 판상 파수(板狀把手)가 달린 관, [[완|완(盌)]] 등이 가장 많고, 미송리식의 [[횡이현문호|횡이현문호(橫耳弦文壺)]], [[두|두(豆)]], [[가락바퀴|방추차]], [[그물추|어망추]] 등도 확인된다. 석기류는 [[석검|석검]], [[돌살촉|석촉]] 등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농경 도구이며, [[뼈뿔연장|골각기]]는 사냥이나 일상 생활 도구들이 많다. 석검은 [[세형동검|세형동검]]을 모방하여 만든 것도 확인된다. Ⅳ기에는 소형 점토대토기 발(鉢), 어망추, [[골제찰갑|골제 찰갑(骨制札鉀)]] 편, [[쇠도끼|철부(鐵斧)]] 등이 확인된다. 이른 시기에는 [[마청쯔문화|마청쯔 문화(馬城子文化)]]와 [[신청쯔문화|신청쯔 문화(新城子文化)]]의 요소, 늦은 시기에는 [[점토대토기문화|점토대토기 문화]]의 요소가 확인되는 것이 특징이다. 이외에도 문화층에서는 [[골표|골표(骨鑣)]]와 [[부채모양동도끼|선형 동부(扇形銅斧)]]도 출토되었는데, [[스얼타이잉쯔문화|스얼타이잉쯔(十二臺營子文化)]]나 [[정자와쯔유형|정자와쯔 유형(鄭家窪子類型)]]과의 교류 관계를 보여준다. 무덤은 39기가 확인된다. [[움무덤|움무덤(土壙墓)]]은 Ⅲ기, [[돌널무덤|돌널무덤(石棺墓)]]은 Ⅲ·Ⅳ기, [[대개석묘|대개석묘(大蓋石墓)]]는 Ⅲ기 후반과 Ⅳ기에만 확인된다. 움무덤은 총 21기가 확인되었다. [[단장묘|단장묘(單葬墓)]]와 2인 [[합장묘|합장묘(合葬墓)]], [[다장묘|다장묘(多葬墓)]] 등이 확인되었으며, 일부 무덤에는 돌을 채운 것도 있다. 상반신은 두 손을 교차하여 배위에 올려놓고, 하반신은 무릎을 한쪽으로 굽혀 묻는 [[앙신굴지장|앙신굴지장(仰身屈肢葬)]]이 많다. 또한 무덤 안이 비어 있거나 머리뼈 또는 하반신이 없는 것도 보이는데, 비정상적 죽음으로 인한 무덤이나 [[천장묘|천장묘(遷葬墓)]]로 추정된다. 다인합장묘(多人合葬墓)에는 20·21호 무덤이 있다. 21호 무덤의 규모는 길이 16.7m, 너비 2.5m, 깊이 0.25m이다. 형태는 세장방형이며, 남녀 구분 없이 35명을 묻은 초대형의 집단 무덤이다. 무덤의 주축 방향은 남북이고, 머리 방향은 다양하다. 출토 유물은 400여 점이나 되지만, 청동기의 수량이 가장 적다. 한 사람당 토기 1~3점에 석촉·[[골제화살촉|골촉]] 등이 1~2점 정도 추가되는 예가 많다. 토기류는 대부분이 [[발|발]]과 관이며, [[쌍이호|쌍이호(雙耳壺)]]나 방추차가 함께 출토되기도 한다. 석기류는 어망추, [[석도|석도]], [[돌도끼|석부]], [[석분|석분(石錛)]] 등이 확인되었다. 이외에도 [[청동고리|청동 고리]]가 출토되었다. 21호 무덤의 연대는 이와 구조와 토기가 유사한 20호 무덤과 비교되어 기원전 3세기경 전후로 추정되고 있다. 일부 움무덤은 [[유엽형동모|유엽형 동모(柳葉形銅鉾)]]와 [[경형동기|경형 동기(鏡形銅器)]]가 출토되어 기원전 4~3세기경으로 추정되고 있다. 돌널무덤은 12기가 확인되었다. 대부분 깬돌식(割石式)인 점이 특징이며, 돌덧널식(石槨式)도 확인된다. 바닥에는 판돌이나 자갈돌을 깐 것도 있다. [[일차장|일차장]]과 [[이차장|이차장]]이 모두 확인되었다. 특히 돌덧널식 무덤에는 자갈돌을 깔아 층을 나누어 여러 명을 매장하거나 딸린 돌덧널에 개를 매장한 예도 있다. 일부 무덤에는 화장(火葬) 흔적이 확인되었다. 주검은 움무덤과 동일하게 하반신을 굽혀 묻는 방식이 많고, 바로 펴묻기(仰身直肢葬)한 것도 있다. 머리뼈가 없는 것도 일부 확인된다. 출토 유물에는 교상 파수가 달린 호나 관, 소형 점토대 토기 발, [[동천|동천(銅釧)]], [[은환|은환(銀環)]], [[유리이진|유리이진(琉璃耳瑱)]], 세형동검 등이 출토되어 이른 시기의 것은 기원전 6~4세기경, 늦은 시기의 것은 기원전 3~2세기경으로 추정된다. 대개석묘는 총 6기이다. 이 가운데 38·41호는 [[대개석적석묘|대개석적석묘(大蓋石積石墓)]]로 고구려 돌무지무덤의 과도기적 무덤 양식으로 추정된다. 대개석적석묘는 대형 [[뚜껑돌|뚜껑돌(蓋石)]]을 제외하면 돌널무덤과 비슷하다. 대부분은 단장묘지만, 34호는 가족 합장묘로 추정된다. 또한 화장 흔적이 확인된다. 출토 유물은 돌널무덤에 비해 수량이 적지만 구성은 비슷하다. [[대부관|대부관(臺附罐)]], [[쇠도끼|철부(鐵斧)]] 등이 출토되어 기원전 3~2세기경으로 추정된다. 완파보쯔 유적은 고구려의 발상지인 훈장강 유역에서 선사~고대의 문화변동 과정을 잘 보여준다. 유구의 수가 많은 것에 비해 청동기와 철기 등의 금속기는 적어 위계가 높은 유적은 아닐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청동 무기와 [[점토대토기|점토대 토기]]는 첸산산맥(千山山脈) 일대의 세형동검 문화와 밀접하게 관련되는 요소이다. 훈장강 유역에서 과거에는 확인되지 않던 움무덤이 다수 확인되고, 이와 함께 돌무지무덤의 선행 양식으로 추정되는 대개석적석묘 등이 확인되는 것은 고구려에 선행하는 기층 문화가 다양하였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평가된다. ==조사정보== {|class="listtable" ! 유형 !! 조사 시기 !! 보고서명 !! 발간 연도 !! 조사 기관 |- | 발굴조사 || 1997년~1999년 || None || None || None |}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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