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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야요이 시대의 수도작(弥生時代의 水稲作)}} {{개념정보 | 키워드=[[야요이 시대]], [[농경구]], [[대륙계 간석기]] | 시대=청동기 | 위치=일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이창희 | 관련 시기=청동기 | 관련 지역=이타즈케 유적 | 하시모토잇초다유적 | 나바타케 유적 | 관련 유적=이타즈케 유적, 하시모토잇초다유적, 나바타케 유적 | 성격=개념 | 관련 개념=야요이 시대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설명== 일본의 [[선사시대|선사시대]]에서 가장 큰 변혁 중의 하나가 [[수도작|수도작]]의 시작이다. 현재까지의 연구 성과에 의하면 수도작은 도래인(渡來人)에 의해 한반도에서 북부 규슈로 전파되었고, 조몬 사람들이 이를 수용한 후 각지로 확산되었다는 것이 보편적 인식이다. 간토 지역을 거쳐 도호쿠지역에 이르는 혼슈전역으로 확대되는 데 약 700년의 시간이 걸렸다. 오키나와를 비롯한 남서제도, 훗카이도에는 수도작이 전파되지 못해, 각각 후기 [[패총문화|패총문화(後期貝塚文化)]]와 [[속조몬문화|속조몬문화(続縄文文化)]]가 이어진다. 북부 규슈의 초기 수전(水田)이 확인된 곳은 후쿠오카현 [[이타즈케유적|이타즈케유적]], [[하시모토잇초다유적|하시모토잇초다 유적]], 사가현 [[나바타케유적|나바타케유적]] 등으로 그 수는 많지 않다. 이 유적들의 시기는 [[돋을띠골무늬토기|돋을띠골무늬토기(刻目突帶文土器)]] 단순기, 즉 [[야요이시대|야요이 시대]] 조기까지 올라간다. 특히 1978년 이타즈케 유적에서 조사된 수전은 수로와 보(堡), 취수구(取水口)와 [[배수구|배수구(排水口)]], 두둑 등으로 둘러싸여 구획된 모습을 보여준다. 수로의 규모는 폭 2m, 깊이 1m이며, 단면은 ‘U’자 모양의 인공 시설이다. 말뚝이나 횡목(橫木)으로 보를 설치하고, 보의 상류부에는 배수구와 수로가 합류하는 시설 등 저수(瀦水)와 급배수(給排水)를 고려한 완성된 수리 시설을 갖추고 있다. 또한, 사람의 발자국이나 손의 흔적이 양호한 상태로 발견되기도 한다. 출토된 [[야요이토기|야요이 토기]]를 기준으로 설명하면, [[유우스식토기|유우스식 토기(夜臼式土器)]]에서 이타즈케Ⅰ식 토기(板付Ⅰ式土器) 단계로 가면서 수전의 규모는 점점 커진다. 후쿠오카현 [[사사이유적|사사이유적(雀居遺跡)]]에서는 수로가 조사되었는데, 수로 안에서 [[돋을띠무늬토기|돋을띠무늬 토기(突帶文土器)]] 단계의 목기가 다량 출토되어 당시 [[농경구|농경구]]의 양상이 드러났다. 북부 규슈의 수전은 입지와 구조를 통해 두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이타즈케 유적처럼 하안 단구 위를 개간하여 단구의 높은 부분까지 땅을 파고 관개 시설을 완비한 유형이다. 또 하나는 나바타케 유적처럼 구릉의 계곡부를 개간하여 수로와 구릉 사이에 논을 만든 유형이다. 유적이 입지하는 경관에 따른 차이로, 후자는 말뚝이나 횡목이 다양하게 사용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수전에서 재배된 식물은 쌀이다. 재배 식물과 관련된 자료는 주로 탄화 종자로, 당시의 수전 경작토, 구덩이(竪穴) 등의 유구 내부, 포함층에서 출토되는데 비교적 그 양이 많은 편이다. 토기의 압흔(壓痕)으로도 분석이 가능하다. 이타즈케 유적에서는 수전이나 구덩이 내부에서 다량의 탄화미가 출토되었으나 다른 재배종은 확인되지 않았다. 대부분의 유적에서 주로 탄화미가 출토되며, 그 외의 다른 재배 식물은 일부만 확인된다. 농경구(農耕具)로는 이타즈케 유적 등에서 괭이나 갈퀴, 괭이나 석부의 자루, 가래, 절굿공이 등 다양한 [[목기|목기]]가 출토되어 북부 규슈의 야요이 시대 개시기에 이미 완성된 목제 농경구가 보급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수확구로는 [[돌칼|돌칼(石刀)]]의 출토가 빈번하게 출토되는, 일본에서 말하는 소위 [[대륙계간석기|대륙계 간석기(磨製石器)]]에 포함되는 것들이다. 즉, 한반도 남부 [[청동기시대|청동기 시대]]의 수도작 문화와 관련이 깊은 돌칼, [[간돌검|간돌검(磨製石劍)]], 간 [[돌살촉|돌살촉(磨製石鏃)]], [[송국리식토기|송국리식 토기]], [[송국리식집자리|송국리식 집자리]], [[붉은간토기|붉은 간 토기]], [[고인돌|고인돌]] 등 다양한 도래계 요소들이 있다. 하지만 수도작의 개시와 확산을 벼농사의 보편화로만 판단해서는 안된다. 물질 자료에 수반되는 토목 기술, 사회 조직, 농경 제사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요소까지 고려한 수도작 문화의 총체(總體)로써, 한반도 남부에서 일본 열도로의 수도작 문화의 전파는 물질문화와 정신문화의 전파라고 말할 수 있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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