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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쉬자거우 유적(長海 徐家溝遺蹟)}} {{유적정보 | 이칭별칭=서가구 유적(長海 徐家溝遺蹟) | 키워드=[[돌덧널무덤]], [[인자춘 유형]] | 시대=청동기 | 위치=중국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이후석 | 조성 시기=청동기 | 성격=고분 | 소재지=중국 랴오닝성(遼寧省) 다롄시(大連市) 창하이현(長海縣) 다창산다오진(大長山島鎭) 쉬자거우촌(徐家溝村)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설명== 중국 랴오닝성(遼寧省) 다롄시(大連市) 창하이현(長海縣) 다창산다오진(大長山島鎭) 쉬자거우촌(徐家溝村)에 위치한다. 랴오둥반도 남해안의 섬인 하셴섬(哈仙島) 서북쪽 입지한다. 1979년 폭우로 무너져 내려온 토사에서 돌무더기와 청동 유물이 발견되어 알려졌다. 이후 1980년 창하이현문화관(長海縣文化館)이 현장 조사를 실시하여 초기 철기 시대의 [[돌덧널무덤|돌덧널무덤(石槨墓)]] 1기를 확인하였다. 돌덧널무덤은 무덤 구덩이와 나무널(木棺)의 틈을 괴석으로 채운 구조의 [[적석목관묘|돌무지널무덤(積石木棺墓)]]일 가능성이 있다. 석재와 유물에는 재와 불에 그을린 흔적이 남아있어 매장 후에 화장(火葬)한 것으로 판단된다. 무덤은 길이 1.99m, 너비 0.9m이며, 출토 유물은 청동 유물만이 확인되었다. 무기류에서는 [[중위안식동검|중위안식 동검(中原式銅劍)]] 5점, [[세형동검|세형동검]] 1점, [[청동검병|청동 검병(靑銅劍柄)]] 1점, [[청동검초|청동 검초(靑銅劍鞘)]] 1점이 출토되었고, 공구류에서는 [[청동도끼|동부(銅斧)]] 1점과 [[청동끌|동착(銅鑿)]] 1점이 수습되었다. 중위안식 동검은 온전하게 남아 있는 것이 1점에 불과하다. 검병에 주판알 모양의 테를 2번 돌려 유절병식(有節柄式)으로 분류되는 형식이다. 검병 단면이 렌즈형인 것은 현지에서 모방해서 만들었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세형동검은 직선적인 검신에서 하부만 약간 오목하게 만든 [[인자춘식동검|인자춘식 동검(尹家村式銅劍)]]이다. 청동 검병은 반부(盤部)가 손잡이(把部) 방향으로 굽어 있고, 문양이 거의 없는 것으로 랴오둥반도에서 가장 늦은 단계의 겸병으로 볼 수 있다. 사격자상(斜格子狀)의 집선문(集線文)이 표현되어 있는 청동 검초는 목제 검초의 아래쪽에 장착되는 부속으로 대개 수장급의 무덤에만 부장되는 것이 특징이다. 랴오둥반도에서 출토된 것으로는 유일하다. 동부는 선형(扇形)이 아닌 장방형(長方形)으로 세형동검 문화 단계부터 등장하는 유물이다. 연대는 동검이나 청동 검병, 동부 등의 형식으로 보아 전국 시대 후기 또는 기원전 3세기대 전반으로 추정된다. 랴오둥 남단 지역의 세형동검 문화 또는 ‘[[인자춘유형|인자춘 유형]]’의 이른 시기를 대표하는 유적이자 랴오둥반도와 산둥반도의 교류망을 보여주는 유적으로 이해되고 있다. 특히 검병의 단면이 렌즈형의 중위안식 동검은 한반도에서만 출토되는 형식으로 알려져 왔으나, 랴오둥반도에서 먼저 등장하였음을 알 수 있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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