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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속조몬 문화(続縄文文化)}} {{개념정보 | 이칭별칭=속승문 문화 | 키워드=[[에산식 토기 문화]], [[수렵]], [[채집]], [[어로]], [[야마노우치 스가오]], [[석기]] | 시대=청동기 | 위치=일본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이기성 | 관련 시기=기원전 3세기~기원후 7세기 | 관련 지역=홋가이도 | 성격=고고학문화 | 관련 개념=야요이 시대 | 에산식 토기 문화 | 에산 문화 | 우쓰나이 문화 | 고호쿠식 토기 문화 | 찰문 시대 | 고훈 시대 | 아스카 시대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설명== 속조몬 문화는 [[야요이시대|야요이 시대]]에 해당하는 홋카이도의 독자적인 시대 명칭이다. [[야요이문화|야요이 문화]]는 도호쿠 지역까지 확산되었으며, 홋카이도 남부 일부는 [[야요이토기|야요이 토기]]의 영향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수전도작 농경은 홋카이도까지는 확산되지 못하였다. 대신 홋카이도에는 [[조몬시대|조몬 시대]]의 [[수렵활동|수렵]], [[채집활동|채집]], [[어로활동|어로]]를 생업 경제로 하는 시대가 이어졌으며, 야마노우치 스가오(山内淸男)가 이를 속조몬 문화로 설정하였다. 속조몬 문화의 취락은 대부분 하구 부근의 높은 대지에 조성된 것이 많은데, 이는 조몬 시대와 마찬가지로 해양 자원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다는 것을 반영한다. 재배 식물도 일부 확인되지만 생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적다. 속조몬 시대의 일반적인 실용기는 [[석기|석기]]로, [[철기|철기]]가 소수 확인되지만 대부분 혼슈 지역에서 유입된 것이다. 그중 일부는 중국 북부에서 연해주를 거쳐 전해진 것도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속조문 문화의 전반은 야요이 토기와의 영향 관계가 확인되는 [[에산식토기문화|에산식 토기 문화(恵山式土器文化)]]가 중심이다. 철기나 벽옥제(碧玉製) [[대롱옥|대롱옥(管玉)]] 등이 출토되는 홋카이도 남부의 [[에산문화|에산 문화]] 및 동부의 [[우쓰나이문화|우쓰나이 문화(宇津内文化)]] 등에서 지역색이 확인된다. 일본 열도 고훈 시대에 해당하는 속조몬 문화의 후반에는 훗카이도 뿐만 아니라 사할린 지역까지 [[고호쿠식토기문화|고호쿠식 토기 문화(後北式土器文化)]]권으로 통일된다. 속조몬 문화는 도호쿠 지역의 야요이 시대 전기 후반경인 기원전 3세기경부터 기원후 6세기 말~7세기경까지 지속된다. 속조몬 문화는 [[찰문시대|찰문 시대(擦文時代)]]로 이어지는데 [[고훈시대|고훈 시대]] 말, [[아스카시대|아스카 시대]] 초에 해당된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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