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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마오칭거우 문화(毛慶溝文化)}} {{개념정보 | 이칭별칭=모경구 문화, 오르도스 문화 | 키워드=[[타오훙바라 문화]], [[시안 문화]], [[홑무덤(단인장)]], [[움무덤]], [[동물을 함께 묻는 습속]], [[승문을 시문한 관]] | 시대=청동기 | 위치=중국 | 집필연도=2019 | 집필자=강인욱 | 관련 시기=춘추 중·말기(1기) | 기원전 7세기 중반~5세기초(1기) | 전국 초기(2기) | 기원전 5세기 초반~4세기 말(2기) | 전국 중기(3기) | 기원전 4세기 중반~3세기 후반(3기) | 전국 후기(4기) | 기원전 3세기 중반~후반(4기) | 관련 지역=네이멍구 자치구 오르도스 지역 | 관련 유적=마오칭거우 유적, 인뉴거우 무덤 | 성격=고고학문화 | 관련 개념=타오훙바라 문화 | 시안 문화 | 동물을 함께 묻는 습속 | 승문을 시문한 관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설명== 네이멍구 자치구 오르도스 지역을 중심으로 기원전 8~3세기에 존재했던 유목계 문화이다. 한국에서는 오르도스고원 지역의 유목계 문화를 통칭하지만, 중국에서는 이를 세분하여 마오칭거우 문화, [[타오훙바라문화|타오훙바라 문화(桃紅巴拉文化)]], [[시안문화|시안 문화(西園文化)]] 등으로 세분하기도 한다. 량청현 [[마오칭거우유적|마오칭거우]]와 인근의 [[인뉴거우무덤|인뉴거우(飮牛溝) 무덤]]을 중심으로 하며, 150여 기의 무덤 중 79기가 조사되었다. 무덤은 대부분 [[단인장|홑무덤(單人葬)]]으로 장방형의 [[움무덤|움무덤(土壙墓)]]이다. 무덤 중 절반에서 [[동물을함께묻는습속|동물을 함께 묻는(殉牲) 습속]]이 확인되었다. 마오칭거우에서는 양머리 57점, 소머리 15점, 말머리 4점, 개머리 1점 등이 발견되었다. 출토 유물 중 토기류는 대부분 [[승문|승문(繩文)]]을 시문한 [[관|관(罐)]]이 주를 이룬다. 청동기류는 의복 장식류(구슬 및 목걸이), [[대구|대구(帶扣·帶鉤)]], 부조한 동물 장식, [[연주형장식|연주형(連珠形) 장식]] 등이 있다. 무기로는 [[북방식동검|북방식 동검]], 새부리형 전쟁 도끼인 [[학취부|학취부(鶴嘴斧)]], [[청동투겁창|모(矛)]], [[청동손칼|도자(刀子)]], [[청동살촉|촉(鏃)]] 등이 있다. 마구류(馬具類)는 [[청동절약|청동 절약(銅節約)]]과 [[재갈|재갈]] 등이 확인되었다. 마오칭거우 무덤은 전체적으로 무덤 배열이 일정하고 시기적인 순서 및 집단 간 지역을 달리하여 무덤을 사용한 흔적이 있다. 또한 무덤의 구조도 단순한 [[널무덤|널무덤(木棺墓)]]에서 이중의 덧널(木槨)을 사용하는 것을 통해 사회의 복합화가 점진적으로 진행되는 양상을 알 수 있다. 한편, 유사한 유적으로 [[야오쯔유적|위안핑(原平市) 야오쯔 유적(窑子遗址)]]에서는 동물 뼈를 함께 묻는 사례가 확연히 줄어든다. 부장되는 청동기는 소규모 장신구 위주로, 무기류는 거의 없으며 특히 동검류는 아예 발견되지 않는다. 이를 통해 [[마오칭거우유적|마오칭거우 유적]]과 달리 유목 문화적 성격은 강하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농경과 유목이 시간을 달리하여 강성하는 오르도스고원 지대의 양상을 잘 보여준다. [[신석기시대|신석기 시대]] 말기 [[용산문화|룽산 문화(龍山文化)]] 후기부터 이 지역은 돼지와 함께 양의 뼈가 많이 발견되며 이후 [[주카이거우유적|주카이거우(朱開溝)]]를 거쳐 마오칭거우 유적으로 이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마오칭거우 유적은 정착 성격이 강한 반면 타오훙바라 문화는 유목 문화의 성격이 아주 강하다. 무덤에서는 대부분 10기 이상의 동물을 함께 묻는 양상이 보인다. [[타오훙바라유적|타오훙바라]] 1·2호 무덤에서는 양머리 44점, 말머리 12점, 소머리 8점이 함께 묻혔다. 토기는 승문이 없고, 모래가 섞인 [[협사갈도|협사갈도(夾砂褐陶)]] 관형 토기(罐形土器)가 대부분이다. 청동기는 다양한 동물 장식류의 장신구, 무기류는 청동 단검, 학취부, 동촉, 철제 장검 등이 있다.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항진기 타오훙파라, [[궁쑤하오유적|궁쑤하오(公蘇壕)]], [[시거우판유적|준거얼기 시거우판]], [[위룽타이유적|위룽타이(玉隆太)]], [[바오하이서유적|바오하이서(寶亥社)]], [[와얼투거우유적|와얼투거우(瓦爾吐溝)]], [[쑤지거우유적|쑤지거우(速機溝)]], [[스후이거우유적|이진훠뤄기(伊金霍洛旗) 스후이거우(石灰溝)]], [[녠팡취유적|둥성시(東勝市) 녠팡취(碾房渠)]], [[아루차이덩유적|항진기 아루차이덩(阿魯柴登)]], [[나린가오투유적|선무현(神木縣) 나린가오투 유적(納林高兎遗址)]] 등이 있다. 그밖에 시안 무덤 유적에서는 [[매장주체부|매장 주체부]]의 한쪽 또는 양쪽에 [[감실|감실(龕室)]]을 설치한 [[동실묘|동실묘(洞室墓)]]에서 다량의 동물 뼈가 확인되어 오르도스고원 지역의 서부 지역과의 문화적 친연성이 강하다. 톈광진(田廣金)은 마오칭거우 유적을 모두 4기로 구분해서 1기는 춘추 중·말기(기원전 7세기 중반~5세기초), 2기는 전국 초기(기원전 5세기 초반~4세기 말), 3기는 전국 중기(기원전 4세기 중반~3세기 후반), 4기는 전국 후기(기원전 3세기 중반~후반)로 판단하였다. 실제 오르도스고원 지역의 동검이나 문화상에서는 [[스키토-시베리아 유형|스키토-시베리아 유형(Скифо-сибирский тип)]]의 초기 단계(기원전 8~7세기)가 없기 때문에 상한 연대는 기원전 7세기대 전후가 타당하다. 하한 연대는 기원전 2세기대로 편년되는 시거 우반 유적에서 철제 장검이 등장하여, 동검은 대체로 화려한 청동 장식 및 금제 장식이 등장하는 기원전 3세기에 소멸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이 오르도스고원 일대는 다양한 문화 유형이 지역과 시기를 달리하여 존속하였다. 유목과 정착의 비율에 따라 그 문화상에서는 다소 차이가 있다. 하지만 청동기는 중위안 계통의 [[동꺾창|동과(銅戈)]]만 확인되고, [[스키토-시베리아문화|스키토-시베리아 문화]] 계통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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