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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둥산 유적(鳳城 東山遺蹟)}} {{유적정보 | 이칭별칭=펑청 둥산 유적, 봉성 동산 유적 | 키워드=[[대개석묘]], [[흑도]], [[홍도]], [[미송리식 토기]], [[석부]] | 시대=청동기 | 위치=중국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정대영 | 조성 시기=기원전 11세기~기원전 10세기 | 성격=고분 | 소재지=중국 랴오닝성(遼寧省) 단둥시(丹東市) 펑청시(鳳城市) 차오허 경제관리구(草河經濟管理區) 관자촌(管家村) 서쪽의 둥산(東山)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설명== 중국 랴오닝성(遼寧省) 단둥시(丹東市) 펑청시(鳳城市) 차오허 경제관리구(草河經濟管理區) 관자촌(管家村) 서쪽의 둥산(東山)에 위치한다. 1983년 채석 과정에서 [[대개석묘|대개석묘(大蓋石墓)]]가 발견되어 1989·1992년 두 차례 조사되었다. 1989년 조사에서는 총 11기의 무덤이 발굴되고 19기의 무덤이 수습 정리되었다. 1992년 조사에서는 둥산에서 3기, 시산(西山)에서 5기의 대개석묘가 조사되었다. 무덤군은 2개 지점에 입지한다. 둥산의 산 정상부와 산 능선 아래의 고지대에 열을 지어 분포하며, 일정한 규칙성을 나타낸다. 정상부 중앙의 무덤은 밀집도가 높고, 무덤이 3열로 열을 지어 분포한다. 무덤과 무덤 간의 거리는 약 4~7m이다. 둥산의 정상에서는 대개석묘 총 14기가 확인되었다. 능선의 아래 지점에서는 19기의 무덤이 확인되었으며, 부채꼴로 분포한다. 둥산 무덤군의 산 능선의 방향은 남북 방향이지만, 무덤의 주축은 동서 방향이다. 무덤방은 네 벽을 [[깬돌|깬돌(割石)]]과 [[판돌|판돌(板石)]]을 이용하여 2~3층으로 쌓아 올렸다. 불규칙한 대규모 판돌 1매로 [[뚜껑돌|뚜껑돌(蓋石)]]로 이용하였다. 뚜껑돌 상부에 적석(積石)한 흔적은 없으나 무덤방의 깊이가 약 0.4~0.6m로 얕아서 바닥에 자갈돌을 깔았다. 특히 무덤 상부에 깬돌과 자갈돌 등을 일정 범위로 깔아서 묘역을 형성하여 무덤을 더욱 공고히 하였다. [[껴묻거리|껴묻거리]]는 대체로 무덤방의 양쪽 끝이나 한쪽에서 발견되며 수량은 무덤에 따라 차이를 보인다. 많은 경우는 9점, 적은 경우는 1점인데 껴묻거리가 없는 경우도 있다. 토기류는 모래가 섞인 [[흑도|흑도(黑陶)]]와 소량의 [[홍도|홍도(紅陶)]]가 발견되었다. [[호|호(壺)]]와 [[관|관(罐)]]에는 [[횡이|횡이(橫耳)]], [[수이|수이(垂耳)]], [[계관이|계관이(鷄冠耳)]] 등의 다양한 손잡이가 부착되어 있다. 특히 [[미송리식토기|미송리식 토기]]가 둥산에서 2점, 시산에서 1점이 발견되었다. 생산 공구는 [[돌도끼|석부]], [[분|분(錛)]], [[착|착(鑿)]], [[석도|석도]] 등이 있다. 9호 무덤은 둥산의 산마루 중심에 입지하고 있으며 전체 무덤군 중 최북단에 위치한다. 무덤의 뚜껑돌은 화강암의 판돌로 이미 지표상에 노출되어 있었다. 뚜껑돌은 길이 2.5m, 너비 1.5m, 두께 0.4m이며 둥산 무덤군에서는 가장 규모가 크다. 무덤방의 형태는 장방형이며 크기는 길이 1.8m, 너비 0.7m, 깊이 0.55m이다. 무덤방의 북, 동, 남벽은 깬돌로 축조하였다. 북벽과 남벽은 4층으로 쌓았고, 동벽은 3층의 계단형태로 쌓아 올렸다. 무덤의 입구는 판돌을 다시 2층으로 쌓아 뚜껑돌을 받치는 기능을 한다. 껴묻거리는 미송리식 토기를 포함한 토기 2점과 석기 2점이 출토되었다. 미송리식 토기의 태토는 모래가 섞인 흑도이며 활석 가루가 소량 함유되어 있다. 동체부에는 세 줄로 된 9조의 [[현문|현문]]이, 구연부에는 한 줄의 현문이 새겨져 있다. 전체 높이 19.2㎝, 구경 10㎝, 동체부 최대 지름 19.2㎝, 바닥 지름 6.2㎝이다. 뚜껑돌의 규모가 가장 크고 껴묻거리도 다른 무덤에 비해 많아 무덤 주인의 신분과 지위가 비교적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 시산에서 조사된 5기의 대개석묘는 산마루에서 1열로 열을 지어 분포한다. 1호는 뚜껑돌의 규모가 가장 크며 무덤방의 네 벽은 깬돌과 판돌로 축조하였다. 특히 무덤 주위에는 깬돌을 일정 범위에 걸쳐 깔아 묘역을 형성하였다. 껴묻거리는 미송리식 토기가 1점 확인되어 껴묻거리가 전혀 발견되지 않은 다른 무덤보다 지위가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둥산과 시산에서 발견된 대부분의 무덤은 무덤방 내부와 외부에서 목탄 흔적이 발견되었다. 유적에서 출토된 미송리식 토기는 둥산에서 2점(M7·M9), 시산에서 1점(M1)이 확인되었다. 모두 규모가 비교적 큰 무덤에서만 출토되며, [[수이장동호|수이장동호(垂耳長胴壺)]] 등 [[마청쯔문화|마청쯔 문화(馬城子文化)]]와 관련된 흔적이 보인다는 점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미송리식 토기로 추정되고 있다. 연대는 [[마청쯔3기문화|마청쯔 3기 문화]]로 편년되는 번시 산청쯔 C동 2호묘나 푸란뎬 솽팡 6호묘 출토품과 비교하여 서주 시기 또는 기원전 11~10세기경으로 볼 수 있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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