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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화곡리 유적(慶州 花谷里遺蹟)}} {{유적정보 | 이칭별칭=경주 화곡리 유적 | 키워드=[[집자리]], [[화덕 자리]], [[벽 도랑]], [[기둥 구멍]], [[바리]], [[돌도끼]], [[망치돌]], [[격지]] | 시대=청동기 | 위치=대한민국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윤형규 | 성격=복합유적 | 크기=9,466㎡ (조사면적) | 소재지=경상북도 경주시 내남면 화곡리 321 일원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설명== 경상북도 경주시 내남면 화곡리 321 일원에 위치한다. 경부 고속 철도 경주 구간에 대한 건설 사업에 앞서 2004~2005년에 조사하여, [[집자리|집자리]] 4기 및 [[삼국시대|삼국]]~[[통일신라|통일 신라 시대]], [[조선시대|조선 시대]] 유구가 확인되었다. 유적은 화곡 1리 ‘벤다골’ 마을의 서쪽에 솟아 있는 구릉(해발 382m)의 동쪽 끝자락에 위치한다. 집자리는 모두 방형으로 장축 방향은 남-북 방향이다. 면적은 9~15㎡로 성인 2~3인 정도가 거주할 수 있는 공간에 해당한다. 내부 시설은 [[화덕자리|화덕 자리]], [[벽도랑|벽 도랑(壁溝)]], [[기둥구멍|기둥 구멍]]이 확인되었다. 화덕 자리는 모두 [[구덩식화덕자리|구덩식(竪穴式)]]으로 길이 0.25~0.65m이다. 벽 도랑은 1·2·4호에서 ‘ᄃ’자 모양으로 설치되었다. 기둥 구멍은 4호에서 2개가 확인되었으나 정연하지 못하다. 2호는 화재로 폐기되었으며, 집자리 내 북동쪽에는 지름 7㎝의 통나무가 불에 탄 채로 세워져 있다. 내부에도 다수의 목탄이 벽면과 수직 방향으로 확인되어 벽 도랑에 수직으로 목재를 세우고 판재를 가로 방향으로 덧대어 벽면을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출토 유물은 [[바리모양토기|바리(鉢)]], [[돌도끼|돌도끼]], [[망치돌|망치돌]], [[격지|격지(剝片)]] 등 총 11점이 확인되었다. 유적에서는 영남 지역의 동해안 일대 집자리에서 대부분 확인되는 배수용의 [[외부돌출구|외부 돌출구(外部突出溝)]]가 설치되지 않은 점이 특징이다. 이는 인접한 [[경주덕천리유적|경주 덕천리]], [[경주갑산리유적|갑산리 유적]]에도 확인되어 비교 검토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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