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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호매실동·금곡동 유적(水原 好梅實洞·金谷洞遺蹟)}} {{유적정보 | 이칭별칭=수원 호매실동·금곡동 유적 | 키워드=[[집자리]], [[고인돌]], [[화덕 자리]], [[저장 구덩이]], [[깊은 바리 토기]], [[바리 토기]], [[항아리 모양 토기]], [[바닥 구멍 토기]], [[간 돌검]], [[간 돌도끼]], [[조갯날 돌도끼]], [[기둥모양 돌자귀]], [[간 돌살촉]], [[반달 돌칼]], [[돌끌]], [[대롱옥]], [[가락 바퀴]], [[갈돌]], [[갈판]], [[숫돌]], [[알 구멍]], [[탁자식 고인돌]] | 시대=청동기 | 위치=대한민국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이형원 | 조성 시기=청동기 | 성격=복합유적 | 소재지=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호매실동·금곡동 일원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설명==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호매실동·금곡동 일원에 위치한다. 수원 호매실 택지 개발 사업과 관련하여 2007~2009년에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청동기 시대의 [[집자리|집자리]]23기와 [[고인돌|고인돌]] 1기를 비롯하여 삼국~조선 시대의 집자리, [[저장구덩이|저장 구덩이]], [[구덩이|구덩이]], 무덤, [[소성유구|소성 유구(燒成遺構)]], 도기 가마, 도랑(溝), [[돌무지유구|돌무지 유구(積石遺構)]] 등을 확인하였다. 유적은 해발 50m 내외의 낮은 구릉의 평탄부에 자리잡고 있으며 이와 인접해서 황구지천과 그 지류들이 흐르고 있다. 청동기 시대 유구는 금곡동에 속하는 1지점에서 집자리 21기와 8지점에서 고인돌 1기가, 호매실동에 속하는 5지점과 6지점에서 각각 집자리 1기씩 조사되었다. 청동기 시대 집자리의 평면 형태는 세장방형, 장방형, 방형으로 구분되며, 이 가운데 세장방형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세장방형 집자리는 길이는 최소 7m에서 최대 15.4m까지이며, 너비는 최소 2m에서 최대 3.97m까지 다양하다. 규모가 가장 큰 2호 집자리는 길이 15.4m, 너비 3.46m, 최대 깊이 0.61m이다. 장방형인 4호는 길이 7.15m, 너비 3.33m, 최대 깊이 0.28m이며, 방형인 13호는 길이 4.68m, 너비 3.3m, 최대 깊이 0.4m이다. 집자리의 내부 시설로는 [[화덕자리|화덕 자리]], 저장 구덩이, 기둥 구멍, 벽 도랑(璧溝)이 있다. 화덕 자리는 집자리의 장축선 중앙부를 따라 배치되어 있다. 평면 원형으로 바닥을 약간 판 구덩식 화덕 자리(竪穴式爐址)도 일부 있지만, 대부분은 바닥을 그대로 이용한 무시설식 화덕 자리(無施設式爐址)이다. 화덕 자리는 2~4기가 배치된 것이 많으며 1기만 있는 것도 일부 있다. 곡물 등을 담은 토기를 안치하는 저장 구덩이는 집자리의 짧은 벽 쪽에 일렬로 배치하거나 각 모서리 부분에 한 개씩 설치한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일부는 긴 벽(長璧)에 있는 것도 있다. 8호 집자리는 드물게 중앙 부분에 점토 다짐 구역이 확인되었으며, 3호 집자리는 복수의 생활면이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5호 집자리는 짧은 벽 쪽에 반원형의 돌출된 출입구가 있다. 집자리에서 나온 유물 가운데 토기는 [[깊은바리모양토기|깊은 바리 토기(深鉢形土器)]]와 [[바리모양토기|바리 토기]], [[항아리모양토기|항아리 모양 토기]]가 있다. 토기의 무늬는 골아가리 구멍무늬(口脣刻目孔列文), 구멍무늬, 골아가리(口脣刻目文) 등이 있으며, [[바닥구멍토기|바닥 구멍 토기(底部透孔土器)]]도 있다. 석기는 [[간돌검|간 돌검]], [[간돌도끼|간 돌도끼]], [[조갯날돌도끼|조갯날 돌도끼(蛤刃石斧)]], [[기둥모양돌자귀|기둥모양 돌자귀(柱狀片刃石斧)]], 슴베가 있거나 없는 [[간돌살촉|간 돌살촉]], [[반달돌칼|반달 돌칼]], [[돌끌|돌끌(石鑿)]], [[대롱옥|대롱옥(管玉)]], [[가락바퀴|가락바퀴]], [[갈돌|갈돌(碾石棒)]], [[갈판|갈판(碾石)]], [[숫돌|숫돌(砥石)]] 등이 나왔다. 8지점에서 고인돌 1기가 조사되었는데 해발 35m의 낮은 구릉에 자리 잡고 있다. 덮개돌의 하부에는 받침돌(支石)로 추정되는 돌이 깔려 있고, 덮개돌에서 0.2m 떨어진 곳에 또 다른 받침돌이 흐트러져 있다. 고인돌의 규모는 덮개돌은 길이 3.2m, 너비 2.7m, 두께 0.8m이며, 2개의 받침돌은 각각 길이 1.4m, 너비 1m, 두께 0.25m, 길이 1.9m, 너비 1.5m, 두께 0.3m이다. 덮개돌의 상부에는 26개의 [[알구멍|알 구멍(性穴)]]이 있으며, 그 크기는 지름 약 0.02~0.05m 정도이다. 고인돌의 원래 형태는 [[탁자식고인돌|탁자식고인돌]]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청동기 시대 집자리와 고인돌의 연대는 기원전 10~8세기 사이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생활 영역인 가옥들과 매장 영역인 고인돌과의 관계를 고려한 마을 구조의 연구에서 주목되는 유적이다. 이와 관련하여 고인돌은 무덤이면서도 집단의 영역 표시 기능과 제단의 기능도 겸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이 유적은 영서 지역의 청동기 시대 집자리의 특징 가운데 하나인 점토 다짐 구역이 존재하는 점, 하나의 집자리에서 복수의 생활면이 확인된 점, 세장방형 집자리의 돌출된 반원형 출입구가 확인된 점 등도 검토가 필요하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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