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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한솔동 유적(世宗 한솔洞遺蹟)}} {{유적정보 | 이칭별칭=세종 한솔동 유적, 세종 송원리 유적 | 키워드=[[집자리]], [[고인돌]], [[돌 두름식 화덕 자리]], [[구덩식 화덕 자리]], [[저장 구덩이]], [[골아가리 토기]], [[가락동 유형]], [[통자루 간 돌검]] | 시대=청동기 | 위치=대한민국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손준호 | 조성 시기=청동기 | 성격=복합유적 | 소재지=세종특별자치시 한솔동 972(舊 충 청남도 연기군 남면 송원리) 일원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설명== 세종특별자치시 한솔동 972(舊 충 청남도 연기군 남면 송원리) 일원에 위치한다. 유적은 장군산에서 동쪽으로 뻗은 해발 45~70m의 구릉 정상부 평탄면과 사면부에 자리한다. 발굴 조사는 2007년 4월부터 2008년 12월까지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되었다. [[청동기시대|청동기 시대]]의 유구는 [[집자리|집자리]] 58기와 [[고인돌|고인돌]] 2기가 조사되었다. 유구의 분포는 주로 구릉 정상부 능선을 따라 확인되는데, 고인돌 2기는 집자리와 떨어진 독립된 공간에 위치한다. 집자리의 평면 형태는 원형, 방형, 장방형, 세장방형으로 구분되며, 원형 2기를 제외하면 나머지 대부분은 장방형과 세장방형이다. 집자리의 내부 시설은 [[돌두름식화덕자리|돌 두름식 화덕 자리]]나 무시설식 혹은 [[구덩식화덕자리|구덩식 화덕 자리]], [[저장구덩이|저장 구덩이]], [[구|도랑]], 기둥 받침돌 등이 확인되었다. 고인돌은 2기 모두 파손되었으나, 잔존 형태상 탁자식으로 추정된다. 유물은 [[겹아가리짧은빗금무늬골아가리토기|겹아가리 짧은 빗금무늬 골아가리 토기]], [[겹아가리짧은빗금무늬토기|겹아가리 짧은 빗금무늬 토기]], [[골아가리구멍무늬토기|골아가리 구멍무늬 토기]], [[골아가리토기|골아가리 토기]], [[가로줄톱니무늬토기|가로줄 톱니무늬 토기]], [[홈자루간돌검|홈 자루 간 돌검]], [[턱슴베간돌살촉|턱 슴베 간 돌살촉]], [[슴베없는간돌살촉|슴베 없는 간 돌살촉]], [[물고기모양돌칼|물고기 모양 돌칼]], [[배모양돌칼|배 모양 돌칼]] 등이 출토되었다. 유물의 출토 양상이나 집자리의 모양 등은 청동기 시대 [[가락동유형|가락동 유형]]의 전형적인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단, 고인돌의 껴묻거리로 추정되는 [[통자루간돌검|통자루 간 돌검]]이나 원형 집자리의 존재는 유적이 장기간 지속되었음을 나타낸다.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치]] 등을 참고할 때 유적은 청동기 시대의 이른 시기에 점유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소형의 원형 집자리와 늦은 시기의 유물이 출토된 고인돌을 볼 때 그 이후 시기까지 존속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즉, 한솔동 유적은 인근 [[세종어진동유적|어진동(송담리) 유적]]과 함께 최대 규모의 [[가락동유형|가락동 유형]] 취락인 동시에 장기 점유 취락으로서, 해당 유형의 특징과 변화상은 물론 동 시기 혹은 후속 시기 다른 청동기 시대 유형과의 관계를 살펴보는 데에도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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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유적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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