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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침촌리 유적(黃州 沈村里遺蹟)}} {{유적정보 | 이칭별칭=황주 침촌리 유적, 황주 심촌리 유적 | 키워드=[[집자리]], [[팽이 토기]], [[간 돌검]], [[돌도끼]], [[돌끌]], [[반달 돌칼]], [[간 돌살촉]], [[돌돈]], [[턱자귀]] | 시대=청동기 | 위치=북한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장호수 | 조성 시기=청동기 | 성격=집자리 | 크기=총 4기 | 소재지=황해북도 황주군 침촌리 긴동 마을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설명== 황해북도 황주군 침촌리 긴동 마을에 위치한다. 1959년 봄 침촌리 신대동, 긴동에서 [[고인돌|고인돌]]을 발굴 조사하는 과정에서 [[집자리|집자리]] 4기를 확인하였다. 정방산 서북쪽의 언덕과 골짜기 및 벌판에 고인돌은 여러 기 또는 수십 기씩 무리를 지어 있고, 고인돌 무덤 언저리에서 그 때 사람들이 살았던 집자리들이 나타난다. 집자리는 겉흙층 아래로 0.3m 깊이에서 집자리의 어깨선이 드러났고, 고인돌 무덤의 받침돌(支石)도 같은 깊이에서 드러나는 것으로 보아 집자리와 무덤이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집자리는 모두 평면 장방형이며, 면적은 20~24㎡ 정도이며, 깊이는 0.1m로 움집이기 보다는 지상 가옥(地上家屋)에 가깝다. 유물들은 [[팽이토기|팽이 토기(角形土器)]]를 비롯해 [[간돌검|간 돌검]], [[돌도끼|돌도끼]], [[돌끌|돌끌(石鑿)]], [[반달돌칼|반달 돌칼]], [[간돌살촉|간 돌살촉]], [[돌돈|돌돈(石貨)]], [[턱자귀|턱자귀(有段石斧)]] 등이 있다. ==조사정보== {|class="listtable" ! 유형 !! 조사 시기 !! 보고서명 !! 발간 연도 !! 조사 기관 |- | 발굴조사 || 1959년 || 황해북도 황주군 긴동 고인돌 발굴보고(Ⅰ) || 1961 || None |- | 발굴조사 || 1959년 || 황주군 심촌리 청동기시대유적발굴보고 || 1966 || None |}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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