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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청학리 유적(密陽 靑鶴里遺蹟)}} {{유적정보 | 이칭별칭=밀양 청학리 유적 | 키워드=[[돌널무덤]], [[돌뚜껑움무덤]], [[집자리]], [[구덩이]], [[통자루 간 돌검]], [[슴베 간 돌살촉]], [[송국리 단계]] | 시대=청동기 | 위치=대한민국 | 집필연도=2019 | 집필자=고민정 | 조성 시기=청동기 | 성격=복합유적 | 소재지=경상남도 밀양시 삼랑진읍 청학리 50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설명== 경상남도 밀양시 삼랑진읍 청학리 50에 위치한다. 부산대학교 밀양캠퍼스 이전에 앞서 2001년 조사하여 Ⅲ지구에서 [[돌널무덤|돌널무덤(石棺墓)]] 6기, [[돌뚜껑움무덤|돌뚜껑움무덤(石蓋土壙墓)]] 2기, [[집자리|집자리]], [[구덩이|구덩이(竪穴)]]가 확인되었다. 유적은 해발 670m의 만어산에서 서쪽으로 뻗은 가지 능선의 남쪽 사면 일대에 입지하며, 서쪽에는 밀양강이 남쪽으로 흘러 낙동강에 합류한다. 집자리와 구덩이는 현지에 보존되었다. 무덤은 해발 39~40m의 구릉 사면에 등고선과 나란한 방향으로 열을 이루어 배치되었다. 널무덤은 판돌(板石)을 세우거나 깬돌(割石)을 쌓아서 벽석(壁石)을 축조하였으며, 바닥은 맨땅을 그대로 이용한 것, 작은 깬돌을 바닥 전면에 깐 것, 넓은 판돌을 바닥에 깐 것으로 구분된다. 벽석과 무덤 구덩이(墓壙) 사이에는 암반편이 다량 혼입된 흙을 채워 넣거나 일부는 깬돌로 보강하였다. 뚜껑돌(蓋石)은 후대 경작 등으로 대부분 남아있지 않고, 4호에서는 편평한 깬돌을 이용하여 2중으로 뚜껑돌을 덮었다. 유물은 6호 내부에서 [[통자루간돌검|통자루 간 돌검(一段柄式磨製石劍)]] 1점, [[슴베간돌살촉|슴베 간 돌살촉(有莖式磨製石鏃)]] 2점이 출토되었다. 돌뚜껑움무덤은 무덤 구덩이를 2단으로 파고, 편평한 깬돌을 이용하여 뚜껑돌로 덮고, 그 사이를 소형 깬돌로 메었다. 뚜껑돌 상부는 단단하고 밝은 갈색토로 밀폐하였고 상부에는 무덤 구덩이의 최상면까지 암반 편이 혼입된 적갈색토를 채워 넣었다. 유물은 출토되지 않았다. 무덤의 구조 및 출토 유물로 보아 [[송국리단계|송국리 단계]]로 편년된다. ==조사정보== {|class="listtable" ! 유형 !! 조사 시기 !! 보고서명 !! 발간 연도 !! 조사 기관 |- | 발굴조사 || 2001년 || 밀양 청학리유적 || 2003 || 경남발전연구원 역사문화센터 |}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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