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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입암리 유적(蔚州 立岩里遺蹟)}} {{유적정보 | 이칭별칭=울주 입암리 유적 | 키워드=[[집자리]], [[기둥 건물터]], [[선돌]], [[함정]], [[바리 토기]], [[항아리 모양 토기]], [[붉은 간 토기]], [[삼각 돌칼]], [[조갯날 돌도끼]], [[간 돌살촉]], [[숫돌]], [[홈자귀]], [[외날 돌도끼]], [[간 돌창]], [[그물추]], [[민무늬 토기]], [[거석 문화]] | 시대=청동기 | 위치=대한민국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정대봉 | 조성 시기=청동기 | 성격=복합유적 | 소재지=울산광역시 울주군 범서읍 입암리 26-1 일원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설명== 울산광역시 울주군 범서읍 입암리 26-1 일원에 위치한다. 도로 개설에 앞서 2007~2008년 울산문화재연구원이 조사하여 [[집자리|집자리]] 30기, [[기둥건물터|기둥 건물터(堀立柱建物址)]] 1기, [[선돌|선돌(立石)]] 4기, [[함정|함정]] 27기, 밭을 확인하였다. 이후 범서 입암 국도 24호선 도로 개설로 2012~2013년 울산발전연구원 문화재센터가 조사하여 집자리 16기, [[구덩이|구덩이]] 1기, [[구|도랑(溝)]] 5기, 함정 7기, 선돌 5기, [[야외화덕자리|야외 화덕 자리]] 1기, 기둥 건물터 1기, [[기둥구멍군|기둥 구멍군(柱穴群)]] 및 구석기~조선 시대까지 다양한 유구를 확인하였다. 유적은 태화강의 남쪽인 ‘입암들’로 불리는 넓은 충적지의 동쪽 끝 자연 제방에 입지한다. 집자리는 총 46기로 방형 또는 장방형이며 규모는 중·소형이다. 가장 규모가 큰 집자리는 울산문화재연구원의 12호로 길이 6.8m, 너비 4.3m, 깊이 0.2m이다. 내부 시설은 기둥 구멍, 화덕 자리만 확인되었다. 충적지에 위치한 집자리의 특성상 배수를 위한 [[벽도랑|벽 도랑(壁溝)]]과 배수구(排水溝)가 확인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기둥 구멍은 4·6주식(柱式)이다. 화덕 자리는 중앙에서 한쪽 벽으로 치우쳐 1개씩 설치하였으며, [[구덩식화덕자리|구덩식(竪穴式)]]이다. 출토 유물 중 토기류는 [[깊은바리모양토기|깊은 바리 토기(深鉢形土器)]], [[바리모양토기|바리 토기(鉢形土器)]], [[항아리모양토기|항아리 모양 토기(壺形土器)]], [[붉은간토기|붉은 간 토기]], [[손잡이달린토기|손잡이 달린 토기(把手附土器)]] 등이며, 무늬는 단순무늬로 [[낟알무늬|낟알무늬]]가 새겨져 있다. 석기류는 [[삼각형돌칼|삼각 돌칼]], [[합인석부|조갯날 돌도끼(蛤刃石斧)]], [[간돌살촉|간 돌살촉]], [[숫돌|숫돌(砥石)]], [[홈자귀|홈자귀(有溝石斧)]], [[외날돌도끼|외날 돌도끼(片刃石斧)]], [[간돌창|간 돌창(石槍)]] 등이 출토되었다. 이외에 단추 모양과 원통 모양의 [[그물추|그물추]]가 출토되었다. 함정의 배치는 하천 유역에 형성된 충적지의 자연제방 위에 태화강을 에워싸듯이 활 모양(弧狀)으로 일렬로 배치되었다, 함정 간의 간격은 2~6m로 등 간격이다. 형태는 타원형이고, 길이 2m, 너비 1m, 깊이 1m 내외이다. 단면 형태는 ‘V’, ‘Y’자 모양으로 구분된다. 내부 시설은 모든 함정의 바닥에서 포획된 대상을 살상에 이르게 할 나무 작살(木槍)을 꽂았던 흔적(木柱穴)이 확인된다. 나무 작살의 개수는 대부분 2개로 동일하다. 함정 내부에서는 [[민무늬토기|민무늬 토기]]의 바닥 편, 그물추 등이 출토되었다. 이러한 함정유구는 [[춘천천전리유적|춘천 천전리]], [[진주초전동유적|진주 초전동]]·[[진주평거동유적|평거동]], [[울산옥동유적|울산 옥동 유적]] 등에서 조사된 예가 있다. 선돌은 지름 0.5m 내외의 구덩이를 얕게 판 다음, 길이 0.5m, 너비 0.2m 내외의 혼펠스제 돌을 세로 방향으로 세우고 구덩이 내에 흙을 채워 돌을 세운 구조이다. 이러한 선돌은 [[고인돌|고인돌]]과 함께 대표적인 [[거석문화|거석 문화(巨石文化)]]의 일종이다. 설치 목적은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으나 원시 사회의 풍요로운 생산을 기원하는 남근석으로 인식하고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정령 숭배(精靈崇拜)와 연결짓거나 고인돌과 선돌의 공존 관계로 볼 때, 보호 또는 경계의 의미로 세운 것으로 생각된다. 그 외 일출·일몰과 관련된 방위의 개념이 적용되었다는 견해도 있다. 입암리 유적에서 확인된 선돌 9기는 동서 방향으로 일렬로 배치된 것으로 볼 때 마을과 관련된 경계 혹은 표지적 성격을 가진 것으로 판단된다. 유적의 시기는 집자리의 형태와 출토 유물 등을 통해 중심 연대는 [[청동기시대|청동기 시대]] 늦은 시기로 판단된다. 유적의 고고학적 의의는 첫째, 울산 지역에서 드물게 확인되는 최대의 충적지 유적이다. 둘째, 함정 유구를 통해 청동기 시대 늦은 시기 이 지역의 생업 환경을 엿 볼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셋째, 선돌의 존재는 [[옥천문정리입석|옥천군 문정리 입석]], [[용인원남면입석|용인시 원남면 입석]] 등과 함께 한반도 지역 선돌 문화의 일환으로서 이는 원시적 신앙의 대상물이나 고인돌 등과 관련된 매장자의 위상을 나타내는 등 제의(祭儀) 또는 묘비적(墓碑的) 행위의 산물로 인식된다. ==조사정보== {|class="listtable" ! 유형 !! 조사 시기 !! 보고서명 !! 발간 연도 !! 조사 기관 |- | 발굴조사 || 2007년 4월 3일~2007년 12월 8일 || 울산 입암리 유적 || 2015 || 울산문화재연구원 |- | 발굴조사 || 2012년 2월 20일~2013년 1월 29일 || 울주 입암리 유적 || 2015 || 울산발전연구원 문화재센터 |} ==한국고고학저널== * "[http://portal.nrich.go.kr/kor/journalUsrDtlView.do?menuIdx=801&idx=3&d_idx=81 태화강변의 청동기시대 대규모 함정유구]", <i>2007 한국고고학저널</i>.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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