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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이천동 고인돌군[大邱 梨泉洞支石墓群]}} {{유적정보 | 이칭별칭=대구 이천동 고인돌군, 대구 이천동 지석묘군 | 키워드=[[고인돌]], [[돌방]], [[돌덧널무덤]], [[돌널무덤]], [[돌살촉]], [[구멍옥]], [[붉은 간 토기]] | 시대=청동기 | 위치=대한민국 | 집필연도=2019 | 집필자=김광명 | 유병록 | 조성 시기=청동기 | 관련 및 특기사항 시기=2010년 11월 이천동 308-10 유적의 돌널무덤 3기가 국립대구박물관으로 이전·전시 | 출토유물 소장처=국립대구박물관 | 성격=고인돌 | 관련 인물=고이즈미 아키오 | 가야모토 가메지로 | 후지다 료사쿠 | 소재지=대구광역시 남구 이천동 283-29, 297-1, 308-10 일원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설명== 대구광역시 남구 이천동 283-29, 297-1, 308-10 일원에 위치한다. 1927년 고이즈미 아키오(小泉顯夫)가 처음 조사하여 대봉정(大鳳町) 고인돌로 소개된 유적이다. 이천동 [[고인돌|고인돌]]은 [[일제강점기|일제강점기]] 조사에서는 당시 덮개돌(上石)의 군집 상태에 따라 북쪽에서부터 대봉정 고인돌 제1구(2기), 2구(3기), 3구(3기), 4구(3기), 5구(3기)로 구분하였다. 조사 순서는 1927년 제2구, 1936년 9월에는 가야모토 가메지로(榧本龜次郞)가 2·3구를, 10월 가야모토와 후지다 료사쿠(藤田亮策)가 4구, 1938년 11월에는 1구와 5구까지 조사하였다. 해방 이후 건물 신축으로 1990·1993년 경북대학교박물관이 4구, 1997년 영남대학교박물관이 5구를 재조사하였다. 2010년에는 도시철도 3호선 건설로 영남문화재연구원이(이천동 308-10) 1938년 후지다 료사쿠가 조사한 ‘대봉동지석묘 제1구’의 [[돌방|돌방(石室)]]1기 및 주변을 조사하였다. 유적은 신천의 서쪽 기슭으로 하천의 범람에 의해 형성된 자연 제방 위에 입지한다. 고인돌의 하부 구조(下部構造)는 대부분 강돌(川石)로 쌓아 만든 돌덧널형(石槨形)과 지하식 돌널형(石棺形)이 주를 이루고, 고인돌 주변에서는 딸린 무덤(拜墓)으로 축조된 소형 돌널·돌덧널 등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고인돌 제4구는 경북대학교박물관이 재조사하여, 일제 강점기 조사의 허점을 지적하였다. 조사 결과 덮개돌 1기와 무덤방(墓室) 11기가 확인되었다. 특히 1936년 일본인들이 조사한 4구 Ⅰ고인돌 부분은 재조사 결과 하부 구조가 ‘卍’자 모양으로 배치되어 있어 일부 학자는 [[묘표석|묘표석(墓標石)]]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1호 덮개돌은 이미 제거되었으며, 무덤방은 돌널 3기 및 돌덧널 2기가 확인되었다. 3호 덮개돌은 길이 2.1m, 너비 1.3m, 두께 0.5m이며, 받침돌(支石) 4매가 확인되었다. 이와 관련된 무덤은 [[돌덧널무덤|돌덧널무덤]] 4기로 강돌로 가로 쌓기(橫平積) 하였으며, 짧은 벽은 판돌을 1매 세운 것도 있다. 바닥은 강돌로 깔았다. 주변에서는 돌널 및 돌덧널무덤을 각 1기씩 확인하였으며, 새로 찾은 5기에서 [[돌살촉|돌살촉]] 11점, [[구멍옥|구멍옥(串玉)]] 44점이 수습되었다. 1993년 조사에서는 1936년도 4구에서 조사된 2기를 포함하여 추가로 [[돌널무덤|돌널무덤]] 3기를 조사하였다. 1927년 제2구의 조사에서는 [[자루간돌검|자루 간 돌검(有柄式磨製石劍)]], [[홈자루간돌검|홈 자루 간 돌검(二段柄式磨製石劍)]], [[슴베간돌살촉|슴베 간 돌살촉(有莖式磨製石鏃)]], 둥근 바닥(圓低)의 [[붉은간토기|붉은 간 토기]]가 출토되었다. 1990년에는 돌살촉, [[대롱옥|대롱옥(管玉)]], [[민무늬토기|민무늬 토기]] 편이 추가로 확인되었다. 고인돌 제5구는 영남대학교박물관이 재조사하였다. 덮개돌 1기와 그 주변에서 모두 10기의 돌널 및 돌덧널무덤이 확인되었다. 덮개돌은 장방형의 괴석(塊石)으로 길이 2.46m, 너비 1.7m, 두께 1.25m, 무게 약 4.5톤이며, 본래의 위치에서 이탈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돌덧널무덤은 9기로 대부분 강돌과 깬돌(割石)을 섞어 가로 쌓기와 세로 쌓기(縱平積)로 만들었다. 바닥은 생토면을 그대로 이용한 것, 납작한 강돌을 깐 것, 납작한 깬돌을 깐 것, 자갈을 깐 것 등 다양하다. 돌널무덤 4호는 길이 1.22m, 너비 0.35m, 깊이 0.49m로, 긴 벽 쪽은 2매, 짧은 벽은 1매의 얇은 판돌(板石)을 세워서 축조하였다. 출토 유물은 항아리 모양(壺形)의 붉은 간 토기, [[손잡이달린바리토기|손잡이 달린 바리 토기(把手附鉢形土器)]], 슴베 간 돌살촉, [[홈자귀|홈자귀(有溝石斧)]] 등이 확인되었다. 이천동 308-10 유적에서는 돌널무덤 3기를 확인하였다. 이 중 1호는 1938년 후지다 료사쿠가 조사한 ‘대봉동지석묘 제1구’의 돌방(石室)으로 보고한 유구로 확인되었다. 돌널무덤 3기는 길이 방향이 남북으로,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1호에서 동쪽으로 0.8m 떨어져 2·3호가 위치하여, 무덤 축조에 시간적 차이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1호의 무덤 구덩이는 길이 2.6m, 너비 1.5m이고, 돌널은 길이 2.04m, 너비 0.43m이다. 짧은 벽은 한 장의 판돌을 세우고, 긴 벽은 깬돌을 3단 정도 쌓은 돌덧널형이다. 축조 방법은 3기 모두 같으며, 바닥 시설은 1·3호는 점판암제 판돌과 깬돌을 한줄 깔았고, 2호는 2줄로 잇대어 깔았다. 출토 유물은 2호에서 6점, 3호에서 11점의 돌살촉이 확인되었다. 돌화살은 슴베식(有莖式)이며, 슴베 부분이 끝단으로 갈수록 좁아지는 역사다리꼴인 것도 일부 있다. 유적의 연대는 무덤의 축조 방식과 출토 유물을 통해 청동기 시대 늦은 시기로 추정된다. 돌널무덤 3기는 국립대구박물관 내 유적 공원으로 이전·복원되었다. ==조사정보== {|class="listtable" ! 유형 !! 조사 시기 !! 보고서명 !! 발간 연도 !! 조사 기관 |- | 발굴조사 || 1990년 07월 16일~1990년 08월 20일 || 대구 대봉동 지석묘-재발굴 조사보고 || 1991 || 경북대학교박물관 |- | 발굴조사 || 1997년 08월 11일~1997년 09월 10일 || 대구 이천동 지석묘 || 2002 || 영남대학교박물관 |- | 발굴조사 || 2010년 11월 06일~2010년 11월 20일 || 대구 이천동 308-10번지 유적 || 2012 || 영남문화재연구원 |}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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