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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이인리 유적(浦項 里仁里遺蹟)}} {{유적정보 | 이칭별칭=포항 이인리 유적 | 키워드=[[집자리]], [[경작 유구]], [[도랑]], [[기둥 구멍]], [[기둥 건물터]], [[돌덧널무덤]], [[흔암리 유형]] | 시대=청동기 | 원삼국 | 고려 | 조선 | 위치=대한민국 | 집필연도=2019 | 집필자=배군열 | 조성 시기=청동기 | 원삼국 | 고려 | 조선 | 성격=복합유적 | 소재지=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흥해읍 이인리 56-3, 183, 927-33, 928-10 일원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설명==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흥해읍 이인리 56-3, 183, 927-33, 928-10 일원에 위치한다. 포항~삼척 간 철도 건설 공사에 앞서 성림문화재연구원에서 2010년 이인리 183 일원(이인리 청동기 시대 취락유적)을 조사하여 [[집자리|집자리]] 11기, [[경작유구|경작 유구]] 3기, [[구|도랑(溝)]] 15기, [[기둥구멍|기둥 구멍]] 2개를 확인하였다. 이후 반경 400m 거리에 위치하는 이인리 56-3, 76-2, 90-1, 139 일대를 구역을 나누어 조사하였다(이인리 청동기 시대 취락유적Ⅱ). Ⅰ구역에서 집자리 6기, 도랑 1기, Ⅱ구역에서 집자리 6기, Ⅳ구역에서 집자리 3기, Ⅴ구역에서 [[기둥건물|기둥 건물터(高上式建物址)]] 1기를 확인하였다. 포항 이인지구 도시 개발 사업에 앞서 한빛문화재연구원에서 2013~2017년 5개의 구역으로 나누어 조사하였다(이인리 927-33, 928-10). Ⅰ구역에서 집자리 7기, 도랑 2기, Ⅱ구역에서 집자리 65기, 도랑 7기, [[돌덧널무덤|돌덧널무덤(石槨墓)]] 3기가 확인되었다. 이외에 [[원삼국시대|원삼국 시대]] [[묘|무덤]] 및 [[고려시대|고려]]~[[조선시대|조선 시대]] 유구가 다수 확인되었다. Ⅰ·Ⅱ구역은 약 400m 거리에 위치하며, Ⅴ구역은 1㎞ 떨어져 위치한다. 유적은 묘봉산에서 서쪽으로 뻗은 가지 능선의 말단부 및 소구릉 사이에 형성된 선상지와 도음산(해발 384.6m)에서 동쪽으로 뻗어 내린 지맥 가운데 학림천을 따라 뻗은 능선의 끝자락에 입지하며, 반경 1㎞ 내에 위치한 동일 성격의 유적이다. 이인리 183 유적(취락 유적)의 집자리는 구릉 사면부에 위치하며, 일부는 겹침 양상도 확인된다. 11기 중 5기는 일부가 훼손되었으며, 방형 3기, 장방형 3기로 구분된다. 면적은 18.1~30.8㎡로, 그중 4호가 가장 넓다. 내부 시설로는 [[기둥구멍|기둥 구멍]], [[화덕자리|화덕 자리]], [[벽도랑|벽 도랑(壁溝)]], [[구덩이|구덩이]]가 확인된다. 기둥 구멍은 대부분 정형성이 없으나, 8호는 6주식(柱式), 11호는 9주식의 배치를 나타낸다. 화덕 자리는 6기에서 확인되었으며, [[구덩식화덕자리|구덩식(竪穴式)]]과 [[돌두름식화덕자리|돌두름식(圍石式)]]으로 구분된다. 1호는 방형에 돌두름식이고, 나머지는 원형의 구덩식이다. 벽 도랑은 1호를 제외한 나머지 집자리에서 모두 확인되었다. 벽 도랑의 형태는 ‘ㄱ’, ‘ㄷ’, ‘ㅁ’, ‘ㅡ’자 모양으로 다양하며, ‘ㄱ’,‘ㄷ’자 모양이 가장 많다. 2호의 벽 도랑 내부에서는 목탄 띠가 확인되어 벽체 시설과의 관련성이 상정된다. 특징적으로 5·9호는 집자리 외곽을 따라 ‘∩’자 모양의 [[주구|둘레 도랑(周溝)]]이 돌아간다. 벽 도랑 내 기둥 구멍은 원형으로 3호에서는 등간격을 유지하며 정형성 있게 나타난다. 바닥은 맨땅을 그대로 사용하였고, 1·2·8호는 불 다짐 처리하였다. 4호 집자리의 동쪽 긴 벽면 아래에서 구덩이가 확인되어, 저장관련 시설로 판단된다. 폐기는 대부분 자연적으로 폐기되었으나 1·2·8호는 내부에서 불탄 흙 및 목탄(木炭)이 다량으로 확인되어 화재로 추정된다. 출토 유물은 [[구멍무늬토기|구멍무늬 토기(孔列土器)]], [[낱알무늬토기|낱알무늬 토기(橫線文土器)]], [[버들잎모양간돌살촉|버들잎 모양 간 돌살촉(柳葉形磨製石鏃)]], [[슴베돌살촉|슴베 돌살촉(有莖式石鏃)]], [[간돌검|간 돌검]], [[돌대팻날|돌대팻날(扁平片刃石斧)]], [[반달돌칼|반달 돌칼]], [[갈판|갈판(碾石)]], [[갈돌|갈돌(碾石棒)]], [[숫돌|숫돌(砥石)]], [[그물추|그물추]] 등이 있다. 경작 유구는 유적의 하단부에 ‘∩’자 모양으로 3기가 조사되었다. 그중 2호는 길이 21m, 너비 10.5~18.1m, 면적 220.5㎡로 가장 크다. 내부에는 사람 발자국 및 식물 뿌리의 부식흔으로 추정되는 부정형의 구덩이가 다수 확인되었다. 출토 유물은 [[민무늬토기|민무늬 토기]] 바닥 편, 그물추 등이 확인되었다. 도랑은 집자리와 경작 유구 사이에 주로 등고선 방향으로 축조되었으며, 11·12호 도랑은 ‘ㄱ’자 모양으로 경작 유구를 둘러싸서 물을 공급한 수로(水路)로 추정된다. 내부에서는 목탄을 비롯하여 민무늬 토기 바닥 편, 그물추, 반달 돌칼 등이 출토되었다. 이인리 56-3 유적(취락 유적Ⅱ)의 집자리는 구릉 사면부에 위치하며, 집자리 간의 중복 양상은 확인되지 않고 2~3기의 집자리가 무리를 이루며 조성되었다. 15기 중에서 2기만 온전하며, 형태는 방형 1기, 장방형 1기이다. 면적은 8호가 19.5㎡이고, 9호가 10㎡이다. 내부 시설로는 기둥 구멍, 화덕 자리, 벽 도랑, 구덩이가 확인된다. 기둥 구멍은 8호가 6주식(柱式)이며, 나머지는 유실이 심하여 정형성 파악이 어렵다. 화덕 자리는 7기로 원형 또는 타원형의 구덩식이다. 내부에서 목탄 및 불탄 흙이 확인된다. 벽 도랑은 1·5·12·14·15호를 제외한 나머지 집자리에서 모두 확인되었다. 형태는 ‘ㄱ’, ‘ㄷ’자 모양이며, 벽 도랑과 연결된 [[외부돌출구|외부 돌출구(外部突出溝)]]는 확인되지 않는다. 구덩이는 1호 집자리의 남쪽 짧은 벽 모서리에 치우쳐 위치하며, 지름 0.52m, 깊이 0.28m의 상광하협(上廣下狹)이다. 바닥은 맨땅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집자리 내부에서 불탄 흙 및 목탄이 다량으로 확인되어 화재로 폐기되었으며, 1~3·11·12호는 자연 폐기되었다. 유물은 구멍무늬 토기, 슴베 돌살촉, 간 돌검, [[합인석부|조갯날 돌도끼(蛤刃石斧)]], [[기둥모양돌자귀|기둥 모양 돌자귀]], 반달 돌칼, [[ㄱ자돌칼|‘ㄱ’자 돌칼(東北型石刀)]], 그물추 등이 출토되었다. 기둥 건물터는 Ⅴ구역 중앙 사면부에서 확인되었다. 정면 2칸, 측면 1칸으로 주칸 거리(柱間距離)는 북쪽과 중앙 기둥 구멍 0.52~0.76m, 중앙 기둥 구멍과 남쪽 기둥 구멍 간 1.06~1.6m이다. 기둥 구멍은 지름 0.3~0.48m, 깊이 0.06~0.15m이며, 중앙 기둥 구멍 내부에서 민무늬 토기 아가리 편 1점이 출토되었다. 도랑은 Ⅰ구역 남쪽 능선부에 위치한다. 부정형이며, 길이 17.22m, 너비 0.2~1.28m, 깊이 0.22m이다. 유물은 바닥면에서 민무늬 토기 저부와 그물추 2점이 출토되었다. 이인리 927-33, 928-10 유적(이인 지구 유적)의 집자리는 방형, 장방형으로 구분되며, Ⅱ구역의 9기는 집자리, 도랑, 돌덧널무덤과 중복되어 훼손되었다. 면적은 8.5~48㎡로, 그중 Ⅰ구역 7호는 길이 9.8m, 너비 4.8m로 가장 넓다. 내부 시설로는 기둥 구멍, 화덕 자리, 벽 도랑, 구덩이가 확인된다. 기둥 구멍은 대부분 정형성 있게 나타나며, 4주식이나 6·8주식의 배치를 나타낸다. Ⅰ구역 1호는 6주식이며, 집자리 외곽 상면에 ‘∩’자 모양의 둘레 도랑이 돌아간다. 화덕 자리는 39기에서 확인되었으며, 원형이나 타원형의 구덩식이다. 화덕 자리 내부에서 목탄과 불탄 흙이 확인되며, 바닥면은 붉게 소결(燒結)되었다. 벽 도랑은 대부분의 집자리에서 ‘ㄱ’, ‘ㄷ’, ‘ㅁ’, ‘ㅡ’ 자 모양으로 다양하게 확인되며, ‘ㄱ’, ‘ㄷ’자 모양이 가장 많다. 크기는 너비 8~38㎝, 깊이 4~15㎝이다. 벽 도랑 내부에 기둥 구멍도 확인되며, Ⅱ구역 37·44호는 등 간격으로 배치되었다. 벽 도랑과 연결되어 배수 기능을 한 외부 돌출구는 Ⅰ-6·7, Ⅱ-16·18·20·33·37·40·44·62호에서 확인되었다. 바닥은 대부분 맨땅을 그대로 사용하였으나, Ⅰ-4호와 Ⅱ-2~6·17·19·24·26·28·40호 등은 불 다짐 처리하였다. 폐기 양상은 자연적으로 폐기되었으나 Ⅰ-6호는 내부에서 불탄 흙 및 목탄이 다량으로 검출되어 화재로 폐기된 것으로 추정된다. 출토 유물은 구멍무늬 토기, [[골아가리토기|골아가리 토기(口脣刻目土器)]], [[골아가리짧은빗금무늬토기|골아가리 짧은 빗금무늬 토기(口脣刻目短斜線文土器)]], [[돌살촉|돌살촉]], 간 돌검, 반달 돌칼, 갈판(碾石), 숫돌(砥石), 그물추 등이 있다. 돌널무덤은 길이 1.92~2.45m, 너비 1.07~1.22m, 깊이 0.05~0.24m 내외로, 장방형 또는 원형이다. 3기 모두 0.15~0.3m 크기의 냇돌(川石)을 사용하여 벽석을 축조하였고, 2~3호 돌널무덤의 경우 벽석 외면으로 0.1~0.2m크기의 냇돌을 채워 보강하였다. 바닥은 0.05~0.07m 내외의 작은 자갈돌을 깔아 시상(屍床)을 설치하였다. 1호에서 간 돌검 1점이 출토되었고, 나머지 무덤에서 출토된 유물은 없다. 3기 모두 벽석이 1단 정도만 잔존하며, 벽석의 축조 방법 자체가 면을 잘 맞추지 못하였다. 이인리 유적의 연대는 집자리 평면 형태 및 구조, 내부 출토 유물로 보았을 때 청동기 시대 이른 시기로 판단되며, 초곡천 중류역에 조성된 대규모의 [[흔암리유형|흔암리 유형]] 취락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조사정보== {|class="listtable" ! 유형 !! 조사 시기 !! 보고서명 !! 발간 연도 !! 조사 기관 |- | 발굴조사 || 2010년 01월 21일~2010년 06월 29일 || 포항 이인리 청동기시대 취락유적 || 2012 || 성림문화재연구원 |- | 발굴조사 || 2011년 05월 11일~2011년 08월 16일 || 포항 이인리 청동기시대 취락유적Ⅱ || 2013 || 성림문화재연구원 |- | 발굴조사 || 2013년~2017년 || 포항 이인리 유적 || 2019 || 한빛문화재연구원 |}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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