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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유정리 유적(谷城 柳亭里遺蹟)}} {{유적정보 | 이칭별칭=곡성 유정리 유적 | 키워드=[[고인돌]], [[묘역시설]], [[집자리]], [[민무늬 토기]], [[붉은 간 토기]], [[슴베 간 돌살촉]], [[간 돌검]], [[자루 간 돌검]], [[빗살무늬 토기]] | 시대=청동기 | 위치=대한민국 | 집필연도=2019 | 집필자=한옥민 | 성격=복합유적 | 소재지=전라남도 곡성군 석곡면 유정리 696-1 일원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설명== 전라남도 곡성군 석곡면 유정리 696-1 일원에 위치한다. 호남고속 도로 확장 공사로 인하여 1994~1995년 전북대학교박물관이 발굴 조사하여 [[집자리|집자리]] 4기, [[고인돌|고인돌]] 9기, [[폐기장|폐기장(廢棄場]] 2기가 확인되었다. 유적이 위치한 동쪽으로 작은 개천이 남북 방향으로 곡류한다. 집자리의 평면 형태는 원형 2기(2·4호), 장타원형 1기(3호), 말각 방형 1기(1호)이다. 모두 암황색의 강모래층을 파고 만들어졌으며 1호를 제외한 모든 집자리는 내부 중앙부에 타원형 구덩이와 기둥 구멍이 있는 [[송국리식집자리|송국리식]]이다. 2호는 지름 4.5~5m, 깊이 0.55m로 타원형 구덩이 내부에 1개의 [[기둥구멍|기둥 구멍]]이 있으며 3·4호는 각각 긴 지름 7m, 짧은 지름 6m, 깊이 0.4m, 지름 6.7m, 깊이 0.5m이며 타원형 구덩이 안쪽 양 끝에 기둥 구멍이 있다. 1호는 지름 5~5.15m, 깊이 0.4m로 내부 시설은 없다. 유물은 [[민무늬토기|민무늬 토기]] 편, [[붉은간토기|붉은 간 토기]] 편 등 토기류와 [[슴베간돌살촉|슴베 간 돌살촉(有莖式磨製石鏃)]], [[간돌검|간 돌검]], [[짧은배모양반달돌칼|짧은 배 모양(短舟形) 반달 돌칼]], [[숫돌|숫돌(砥石)]], [[돌끌|돌끌(石鑿)]] 등의 석기류 및 흙 또는 돌로 만든 [[그물ㅊ추|그물추]]와 [[가락바퀴|가락바퀴]] 등이 출토되었다. 또한 내부 퇴적토에서 [[빗살무늬토기|빗살무늬 토기(櫛文土器)]] 편들이 일부 출토되었다. 폐기장은 집자리들과 인접하는데 평면 형태와 크기가 집자리들과 차이가 없으나 바닥면이 고르지 않고 한쪽으로 경사진 점 등으로 보아 집자리와는 다른 성격으로 추정된다. 1호는 지름 6m로 크기가 크고 내부에는 잡석 무더기와 동쪽에 토기 편이 집중되어 있다. 폐기장에서 출토된 유물은 민무늬 토기 편, 붉은 간 토기 편, [[간돌살촉|간 돌살촉]], [[간돌칼|간 돌칼]], [[홈자귀|홈자귀(有溝石斧)]], 그물추 등이 출토되었다. 고인돌은 대부분 [[덮개돌|덮개돌(上石)]]이 없어진 상태였는데, 남아 있는 1기도 원래의 위치에서 이동되어 [[받침돌|받침돌(支石)]]의 존재 여부를 알 수 없으며, 형식 또한 명확히 알 수 없다. [[묘역시설|묘역 시설(墓域施設)]]은 깬돌(割石)과 강돌(川石)로 1~3겹 깔고 그 위에 판돌(板石)을 얹어 평면 장방형, 타원형, 원형으로 정연하게 만들었다. [[무덤방|무덤방(墓室)]]은 지하에 깬돌, 강돌, 판돌로 쌓은 [[돌널형무덤방|돌널형(石棺形)]]과 [[돌덧널형무덤방|돌덧널형(石槨形)]]이 있다. 무덤방은 길이 1~2m, 너비 0.36~0.6m, 깊이 0.2~0.3m이다. 1호 무덤방은 길이 2m, 너비 0.5m, 높이 0.2m로 긴 벽은 깬돌과 강돌로 쌓고 짧은 벽은 판돌로 축조하였으며, 바닥은 양 짧은 벽 가까운 곳에 판돌 1매씩을 깔고 그 사이에는 깬돌과 강돌로 깔았다.[[돌무지시설|돌무지 시설(積石施設)]]은 없다. 2호는 길이 1.5m, 너비 0.42m, 깊이 0.3m인 돌널형으로, [[이중개석|겹으로 뚜껑돌(二重蓋石)]]을 덮고 네 벽은 판돌로 잇대어 축조하고 그 외곽의 뚜껑돌이 받는 범위에 깬돌과 강돌을 1겹 깔았다. 바닥은 모래 바닥을 그대로 이용하였다. 7호는 길이 4m, 너비 2.8m 범위에 판돌로 구역(墓域)을 정하고 내부에 판돌과 깬돌로 돌무지 시설을 마련하였다. 무덤방은 돌무지 시설의 중앙에 길이 1.5m, 너비 0.55m, 깊이 0.4m로 네 벽을 깬돌과 강돌을 이용해 축조한 돌덧널형이다. 바닥은 판돌로 깔고 그 위에 10㎝ 내외의 깬돌로 중심부를 향하여 1겹 깔았다. [[껴묻거리|껴묻거리(副葬品)]]는 [[슴베간돌검|슴베 간 돌검(有莖式磨製石劍)]], [[자루간돌검|자루 간 돌검(有柄式磨製石劍)]], [[슴베간돌살촉|슴베 간 돌살촉]], [[돌도끼|돌끌]], [[타제석부|뗀 돌도끼(打製石斧)]], [[소옥|작은옥(小玉)]] 등이 있고 민무늬 토기, 붉은 간 토기, 간 돌도끼, 간 돌살촉, 그물추, [[빗살무늬토기|빗살무늬 토기]], 미완성 석기 등이 수습되었다. 이 유적은 동일 공간에서 무덤과 집자리가 확인되는 점이 주목된다. 특히 고인돌에서 정교한 장방형의 묘역 시설(5~7호 고인돌)을 갖춘 점, 무덤방 축조시 판돌·강돌·깬돌을 혼용하여 조성하였다는 점이 특징이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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