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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용화동 가재골 유적(牙山 龍禾洞가재골遺蹟)}} {{유적정보 | 이칭별칭=아산 용화동 가재골 유적 | 키워드=[[집자리]], [[구덩이]], [[반송리식 집자리]], [[휴암리식 집자리]], [[덧띠 토기 단계]] | 시대=청동기 | 위치=대한민국 | 집필연도=2019 | 집필자=나건주 | 조성 시기=청동기 | 성격=복합유적 | 소재지=충청남도 아산시 용화동 1623(1지점)·1395(2지점)·1630(3지점) 일원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설명== 충청남도 아산시 용화동 1623(1지점)·1395(2지점)·1630(3지점) 일원에 위치한다. 용화 지구 도시 개발 사업에 앞서 2006~2008년 발굴 조사되었다. 세 지점에서 청동기 시대 취락이 조사되었다. 유적은 남쪽 배후의 산지에서 갈라 나온 구릉 지대에 해당하며 북으로 1.5㎞, 동쪽으로 1.2㎞ 정도 떨어진 거리에 곡교천과 온양천이 위치한다. 1지점은 남쪽 산지에서 급격하게 완만해진 완사면에서 북동쪽으로 갈라져 나온 해발 38~56m, 비고차 6~20m 정도인 두 개 구릉으로 각각의 선단부 쪽은 조사 지역을 벗어나 길게 연장된다. 두 구릉 중 남동쪽 구릉의 조사 지역을 멀리 벗어난 가장 앞쪽에는 풍기동 앞골 유적이 위치하며 가재골 유적 사이에 풍기동 유적이 위치한다. 세 유적은 모두 동일 구릉에 연속적으로 분포하는 대규모의 단위 취락을 구성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1지점에서는 [[집자리|집자리]] 31기, [[구덩이|구덩이]] 21가 조사되었다. 대부분의 집자리는 평지식 또는 토광식 화덕이 설치된 장방형으로 모두 24기가 조사되었다. 이 외에 타원형 구덩이와 2주식 기둥 구멍이 설치된 [[반송리식집자리|반송리식]]과 [[휴암리식집자리|휴암리식]]으로 분류되는 집자리 5기와 [[덧띠토기|덧띠 토기]]가 출토되는 원형 집자리 1기가 조사되었다. 장방형 집자리는 구릉 정상부의 평탄면을 피해서 그 외곽과 사면부에 분포하는 특징을 보인다. 8호가 길이 20.72m, 너비 2.9m, 깊이 0.57m로 가장 큰 규모이다. 이 외에 6·13·29호가 장축 길이 13.3~16.18m로 대형에 해당한다. 대형 집자리 내에는 4~10기의 [[화덕자리|화덕자리]]가 확인되는데 바닥의 중앙 일대에 배치 간격을 벌려 공간을 확보하고, 확보된 공간의 긴 벽에 [[저장구덩이|저장 구덩이]]를 설치하였다. 4기의 대형 집자리는 유구가 없는 정상부 평탄면 외곽에 축조되었는데 48~100m 정도 거리를 두고 분포하며 그 주변에 크고 작은 집자리가 군집을 이룬다. 장방형 집자리에서는 [[항아리모양토기|항아리 모양 토기]], [[바리모양토기|바리 토기]], 완형 토기, 굽 달린 바리, 갈색 간 토기 등의 [[민무늬토기|민무늬 토기]]가 출토되었으며, 구멍무늬, 골아가리무늬등이 새겨진 것과 일부 짧은 빗금무늬도 확인된다. 석기류는 [[피홈있는간돌검|피 홈 있는 간 돌검(有血溝磨製石劍)]], [[턱슴베돌살촉|턱 슴베 돌살촉(二段莖式石鏃)]], [[통슴베돌살촉|통슴베 돌살촉(一段莖式石鏃)]], [[배모양돌칼|배 모양 돌칼]], [[기둥모양외날돌자귀|기둥 모양 외날 돌자귀]], [[양날돌도끼|양날 돌도끼]], [[돌대팻날|돌대팻날]], [[돌끌|돌끌]], [[갈돌|갈돌]] 등이 출토되었다. 장방형 집자리 외에 반송리식 2기(23·30호), 휴암리식 2기(5·17호) 등 형태와 구조에서 큰 차이를 보이는 집자리 4기도 조사되었으며, 12호의 경우 2주식 기둥 구멍과 타원형 구덩이는 설치되지 않았지만 평면 형태와 배치 양상으로 보아 동 시기의 집자리로 판단된다. 이 5기 집자리는 상호간에 군집되지 않고 장방형 집자리 주변에 분포하거나 12호의 경우 독립되어 단독으로 분포한다. 유구가 조성되기에 좋은 조건인 정상부 평탄면에 축조되지 않고 장축 방향과 전체 배치 양상이 장방형 집자리와 통일된 모습을 보이는 것으로 보아 양자의 시기차가 크지 않으며 동일 취락 집단일 가능성이 있다. 5기 집자리 내부에서는 항아리 모양 토기, 바리토기 등의 민무늬 토기와 [[버들잎모양돌살촉|버들잎 모양 돌살촉]], 기둥 모양 외날 돌자귀, 갈돌 등의 석기류가 출토되었다. [[덧띠토기단계|덧띠 토기 단계]]의 집자리도 1기(24호) 조사되었다. 평면 형태는 원형이며 경사면 위의 능선쪽으로 외부 돌출구가 확인된다. 내부에서는 둥근 덧띠 토기, 굽다리 토기, 민무늬 토기 편과 턱 슴베 돌살촉 1점이 출토되었다. 21기가 조사된 구덩이는 길이 1.32~2.94m, 너비 0.7~2.04m이다. 사람이 일상적으로 거주하기 어려운 시설로, 집자리 주변에 설치되어 다양한 기능을 수행한 옥외 시설로 추정된다. 평면 형태에 따라 방형, 장타원형, 부정형 등으로 구분된다. 장방형은 6기가 확인되었고 10호와 19호의 바닥에서는 평지식 화덕 자리가 확인되었다. 장타원형은 6기가 확인되었다. 대체로 지름 1.32~1.71m로 작은 규모이며, 11·14·21호에서 평지식의 화덕 자리가 설치되었다. 부정형 구덩이는 9기가 확인되었는데 특별한 내부 시설은 확인되지 않았다. 18~21호는 집자리가 분포하지 않는 동쪽 사면부에서 군집을 이루며, 9~16호도 장방형 집자리 하단의 서쪽 사면부에서 군집을 이룬다. 이 외의 구덩이는 군집을 이루지 않고 집자리 주변에 분산 분포한다. 구덩이에서는 항아리 모양 토기, [[깊은바리모양토기|깊은 바리 토기]], [[바리모양토기|바리 토기]], [[얕은바리토기|얕은 바리 토기]], [[굽달린바리|굽 달린 바리]] 등의 민무늬 토기와 골아가리 무늬와 짧은 빗금무늬가 새겨진 토기도 확인되었다. 석기는 통슴베 돌살촉과 [[숫돌|숫돌]] 등이 출토되었다. 장방형 집자리에서 수습된 목탄에 대한 방사성 탄소 연대는 2850±50 BP(22호), 2810±50 BP(13호)로 측정되었으며 반송리식인 23호에서 수습된 시료에 대해서는 2480±60 BP의 연대가 산출되었다. 구덩이의 경우 10호와 11호에서 목탄 시료가 수습되었는데 모두 2830±50 BP의 동일한 연대값이 얻어졌다. 장방형 집자리와 구덩이는 대체로 동일한 연대이며 반송리식은 큰 연대 차이를 보인다. 2지점과 3지점에서도 각각 장방형 집자리가 3기씩 조사되었다. 확인된 집자리의 수가 1지점에 비해 적으며 군집을 이루지 않고 독립되어 축조되는 양상을 보인다. 2지점의 경우 3개로 갈라진 구릉의 능선 정상부에 집자리가 각각 1기씩 축조되었는데 지형적 조건이나 떨어진 거리로 보아 각 집자리는 독립적인 모습을 보인다. 1지점과 2지점의 취락이 시간차를 두고 존재했다면 시간적 흐름에 따른 취락 구조의 변화일 가능성이 있으며, 동시 존재했다면 자연적·문화적 환경에 따른 기능의 차이에 의한 결과일 가능성이 있다. 2지점 집자리에서는 항아리 모양 토기, 바리 토기, [[컵모양토기|컵 모양 토기]]등의 민무늬 토기와 골아가리 무늬, 짧은 빗금무늬 등의 무늬가 새겨진 토기가 1지점에 비해 높은 빈도로 출토되었다. 더불어 숫돌, 돌대팻날 등의 석기도 출토되었다. 3지점에서 조사된 집자리는 유실이 심해 출토 유물이 매우 적은 편이며 바리 토기 등 민무늬 토기가 소량 출토되었다. 2지점 3호 집자리에서 수습된 4개 목탄 시료에 대해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이 실시되었고, 2920±60 BP, 2870±50 BP, 2840±60 BP, 2830±50 BP의 연대 값이 얻어졌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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