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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외도동 유적(濟州 外都洞遺蹟)}} {{유적정보 | 이칭별칭=제주 외도동 유적 | 키워드=[[집자리]], [[골아가리 토기]], [[민무늬 토기]], [[경질 무문 토기 항아리]], [[두드림무늬 토기]] | 시대=청동기 | 위치=대한민국 | 집필연도=2019 | 집필자=박경민 | 성격=복합유적 | 소재지=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외도1동 125·131-1 일원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설명==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외도1동 125·131-1 일원에 위치한다. 광령천을 따라 주변으로 넓게 형성되어 있는데 해안에서 1㎞ 이상 내륙으로 들어온 해발 30~60m 내외의 완만한 경사면에 자리하고 있다. 2001년 도로 건설 과정에서 외도1동 125 일원에 대한 발굴 조사가 진행된 이후 10차례 이상 진행되었다. 조사 결과 [[집자리|집자리]] 14기, [[굴립주건물|기둥 건물터(掘立柱建物址)]] 1기, [[구덩이|구덩이]] 253기, [[도랑|도랑(溝)]] 10기 등이 확인되었다. 집자리는 작은 방형이 일부 확인되지만 대부분 원형이다. 먼저 방형 집자리는 내부에는 점토를 다진 것 외에는 아무런 시설이 없다. 반면 원형 집자리는 내부 벽체와 중앙부에 도랑을 연결한 형태가 확인된다. 하지만 방형과 마찬가지로 이렇다할 시설이 없는 경우가 다수를 차지한다. 외도동 유적에서는 [[골아가리토기|골아가리 토기(口脣刻目土器)]]를 비롯하여 민무늬 토기가 수습된 바 있다. 그러나 이보다 늦은 단계의 [[경질무문토기|경질 무문 토기(硬質無文土器)항아리]]가 대부분이다. 또한 [[손잡이달린토기|손잡이 달린 토기(把手附土器)]]와 한반도 남부 지역에서 유입된 [[두드림무늬토기|두드림무늬 토기(打捺文土器)]]도 동반된다. 외도동은 광령리 유적과 함께 제주에서 [[고인돌|고인돌]]이 가장 많이 분포하는 지역이다. 하지만 송국리 단계의 취락은 뚜렷하게 알려진 바 없다. 조사 결과 외동 유적은 대체로 원삼국~삼국 시대가 중심인 마을 유적에 해당한다. 다만 절대 연대 분석 결과, 2100±40 BP가 산출되는 점과 방형 집자리에서 민무늬 토기가 출토되는 점으로 미루어 기원전 3세기 내외까지 상향될 것으로 추정된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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