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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양교리 890 유적(平澤 梁橋里890遺蹟)}} {{유적정보 | 이칭별칭=평택 양교리 890 유적, 평택 양교리 산41-1 유적, 평택 양교리 산41-3 유적 | 키워드=[[집자리]], [[구덩이]], [[목책]], [[돌무지널무덤]] | 시대=청동기 | 위치=대한민국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서길덕 | 조성 시기=기원전 10~7세기 | 성격=복합유적 | 소재지=경기도 평택시 오성면 양교리 890 일원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설명== 경기도 평택시 오성면 양교리 890 일원에 위치한다. 유적은 공장 신축과 관련하여 2009~2010년 겨레문화유산연구원에서 발굴한 양교리 산41-1 유적(양교리 890-1·2 일원)과 2013년 분뇨 및 쓰레기 처리 시설 건축의 일환으로 중부고고학연구소에서 조사한 양교리 산41-3 유적(양교리 890-11 일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산41-1 유적에서는 청동기 시대 [[집자리|집자리]]16기, [[구덩이|구덩이]] 5기, [[목책|목책]] 열 3기, 초기 철기 시대 [[적석목관묘|돌무지널무덤]] 1기가 확인되었으며 산41-3 유적에서는 집자리 2기, 도랑 1기가 확인되었다. 유적은 해발 40m 내외의 야트막한 구릉에 해당하며 남쪽에 [[평택양교리유적|평택 양교리 유적]]이 인접해 있다. 집자리의 평면 형태는 세장방형, 장방형, 방형, 말각방형, 원형으로 구분된다. 내부 시설은 [[화덕자리|화덕 자리]], [[저장구덩이|저장 구덩이]], 추정 작업 구덩이, 타원형 구덩이, 벽 도랑(壁溝), 기둥 구멍 등이 있다. 화덕 자리는 구덩식과 무시설식으로 구분된다. 추정 작업 구덩이는 (세)장방형 집자리(겨레-1·5·11·12호)에서 확인되며 바닥을 얕게 파고 조성하였다. 평면 형태는 방형과 원형으로 나뉘며, 지름은 1m 내외이다. 겨레-12호 작업 구덩이 바닥에서는 소형의 [[숫돌|숫돌(砥石)]]이 나왔다. 저장 구덩이는 주로 벽가나 모서리에서 확인되나 겨레-1호 집자리에는 벽가가 아닌 바닥을 가로질러 네개의 저장 구덩이가 1열로 설치되어 있는데, 이러한 사례는 증축 시에 자주 보이는 현상이므로 겨레-1호는 증축한 집자리일 가능성이 높다. 중심 기둥 구멍은 1주식과 4주식이 확인된다. 1주식(겨레-7·8호)은 방형과 말각방형 집자리에서 벽가의 저장 구덩이와 함께 확인되며, 4주식(중부-1·2호)은 말각방형과 원형 집자리에서 확인된다. 유물은 [[민무늬토기|민무늬 토기]], [[구멍무늬토기|구멍무늬 토기(孔列土器)]], [[골아가리구멍무늬토기|골아가리 구멍무늬 토기(孔列土器)]], [[붉은간토기|붉은 간 토기]], [[바닥구멍토기|바닥 구멍 토기(低部透孔土器)]], [[돌칼|돌칼(石刀)]], [[간돌검|간 돌검]], [[돌살촉|돌살촉(石鏃)]], [[기둥모양돌자귀|기둥모양 돌자귀(柱狀石斧)]], [[조갯날돌도끼|조갯날 돌도끼(合刃石斧)]], [[외날돌도끼|외날 돌도끼(片刃石斧)]] 등이 나왔다. 이밖에 지표에서 [[홈자귀|홈자귀(有溝石斧)]]가 수습되었다. 추정 목책 열은 양교리 산41-1 유적에서 3열이 확인되었다. 기둥 열은 동서로 배치되어 있으며, 구멍의 지름은 0.4~0.5m, 구멍 사이의 거리는 1.1~1.5m이다. 목책 열로 보고하였으나 고상 가옥과 같은 기타 지상 구조물일 가능성도 있다. 돌무지널무덤(積石木棺墓)은 1호 집자리를 파괴하고 조성되었으며, 등고선 방향과 평행하다. 무덤의 상부와 내부에 다량의 막돌이 채워진 상태이고 매장 주체부 3면은 부정형하게 돌로 쌓았다. 나무널(木棺)의 흔적은 발견하지 못했으나 삼면에 쌓인 돌의 양상으로 보아 나무널과 구덩이 사이를 채움한 것으로 보인다. 유물은 무덤의 가운데 바닥에서 [[곱은옥|곱은옥(曲玉)]] 1점이 나왔다.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값은 (세)장방형 집자리(겨레-1·5·10·13호)에서 기원전 10세기 전후, 방형인 겨레-4호 집자리에서 기원전 7세기 전후로 측정되었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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