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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신접리 고인돌[驪州 新接里支石墓]}} {{유적정보 | 이칭별칭=여주 신접리 고인돌, 여주 천송동 고인돌 | 키워드=[[탁자식 고인돌]] | 시대=청동기 | 위치=대한민국 | 집필연도=2019 | 집필자=하문식 | 조성 시기=청동기 | 성격=고인돌 | 소재지=경기도 여주시 천송동 290 일원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설명== 경기도 여주시 천송동 290 일원에 위치한다. 2003년 여주시 북내면 신접리 56-1에 위치한 [[탁자식고인돌|탁자식(卓子式) 고인돌]] 1기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었다. 고인돌은 양쪽 받침돌(支石)과 덮개돌(上石)만 있었는데 서쪽 받침돌이 돌방 안쪽으로 쓰러지면서 많이 기울어진 상태였다. 덮개돌의 평면 형태는 마름모꼴이고 재질은 거정화강암(巨晶花崗岩)이다. 크기는 길이 2m, 너비 1.85m, 두께 0.3~0.4m이며, 가장자리와 위쪽에는 손질한 흔적이 관찰된다. 받침돌은 동쪽과 서쪽에서 있었으며, 모두 가장자리 부분에 손질을 하였다. 그리고 받침돌의 크기는 거의 덮개돌과 비슷하여 다른 탁자식 고인돌보다 두툼한 편이다. 한편 동쪽 받침돌의 밑 부분에서는 받침돌이 쓰러지지 않도록 벽면에 보강한 돌과 바닥면을 점토로 다진 흔적이 발견되었다. 이런 축조 방식은 중서부 지역에서는 처음 조사되었으며, 북한지역의 탁자식 고인돌에서 나타나는 양상이다. 조사 전에 이미 무덤방(墓室)이 도굴되어 출토 유물은 없었으며, 조사 이후 천송동에 위치한 신륵사 관광 단지로 이전·복원하였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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