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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신옥리 고인돌군[金泉 新玉里支石墓群]}} {{유적정보 | 이칭별칭=김천 신옥리 고인돌군, 김천 신옥리 지석묘군 | 키워드=[[고인돌]], [[민무늬 토기]], [[붉은 간 토기]], [[김천 지좌리 유적]] | 시대=청동기 | 위치=대한민국 | 집필연도=2019 | 집필자=김도헌 | 조성 시기=청동기 | 성격=고인돌 | 크기=총 2기 | 소재지=경상북도 김천시 부항면 신옥리 산36-10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설명== 경상북도 김천시 부항면 신옥리 산36-10에 위치한다. 부항댐 건설에 앞서 2009~2010년에 조사하여, [[고인돌|고인돌]] 2기가 확인되었다. 고인돌은 하천 주변의 야트막한 구릉지의 동북쪽 비탈면의 해발 172~175m에 위치한다. 1·2호는 약 5m 떨어져 있으며, 1호가 높고 평탄한 지점, 2호는 1호보다 지형이 낮은 북쪽 비탈면에 있다. 2기 모두 도굴과 경작 등으로 많이 파괴된 상태였다. 1호는 [[덮개돌|덮개돌(上石)]]까지 남아 있었고, 2호는 부정형(不定形)의 매장 시설만 남아 있다. 1호의 덮개돌은 길이 3.6m, 너비 2.8m, 두께 0.4m, 무게는 7톤이다. 덮개돌 아래의 매장 시설은 [[강돌|강돌(川石)]]을 1~2단 정도 넓게 깔고 가운데 부분에 공간을 만들어 주검을 묻은 지상식 구조로 추정된다. 2호는 길이 5.1m, 너비 2.7m, 깊이 0.95m이며, 부정형한 구덩이 안에 강돌과 [[깬돌|깬돌(割石)]]이 채워져 있다. 구체적인 구조는 알 수 없지만, 1호는 지상식, 2호는 지하식이라는 점에서 같은 시기에 만들어지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출토 유물은 [[붉은간토기|붉은 간 토기]], [[민무늬토기|민무늬 토기]]의 파편뿐이어서 고인돌의 연대를 구체적으로 파악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다. 신옥리 고인돌군은 많이 파괴되었고 출토 유물도 적지만, 인접한 [[김천지좌리유적|지좌리]]의 [[청동기시대|청동기 시대]] 마을(聚落)과 관련된 무덤이라는 점에서 학술적 가치가 높은 유적이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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