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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신당리 유적(淸道 新堂里遺蹟)}} {{유적정보 | 이칭별칭=청도 신당리 유적 | 키워드=[[집자리]], [[기둥 건물 터]], [[야외 화덕 자리]], [[고인돌]], [[널무덤]], [[돌널무덤]], [[토기 가마]], [[움무덤]], [[기둥 구멍]], [[구덩이]], [[도랑]], [[화덕 자리]] | 시대=청동기 | 초기철기~원삼국 | 위치=대한민국 | 지역=청도 신당리·칠성리·서상리 유적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윤호필 | 조성 시기=청동기 | 초기철기~원삼국 | 성격=복합유적 | 소재지=경상북도 청도군 각남면 신당리 610-5, 945-4 일원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설명== 경상북도 청도군 각남면 신당리 610-5, 945-4 일원에 위치한다. 국도 20호선 청도 풍각-화양 간 국도 건설 공사에 앞서 2010~2012년 [[청도신당리유적|신당리]], [[청도칠성리유적|칠성리]], [[청도서상리유적|서상리 유적]]을 조사하였다. 이 중 신당리 Ⅰ·Ⅱ구역에서 [[집자리|집자리]] 51기, [[기둥건물터|기둥 건물터(地上建物址)]] 3기, [[야외노지|야외 화덕 자리(野外爐址)]] 7기, [[토기가마|토기 가마(土器窯)]] 1기, [[구덩이|구덩이]] 24기, [[구|도랑(溝)]] 10기, [[고인돌|고인돌]] 및 하부 구조 8기, [[돌널무덤|돌널무덤(石棺墓)]] 5기, 묘역 둘레 도랑(墓域周溝) 1기, [[움무덤|움무덤(土壙墓)]] 1기, 기둥 구멍군(柱穴群) 9기, [[부석시설|돌깐 유구(敷石遺構)]] 1기, [[석열|석열(石列)]] 1기가 확인되었으며, Ⅲ구역에서는 초기 철기~원삼국 시대 유구가 다수 확인되었다. 유적은 청도천 중상류에 해당하며, 청도천이 범람하여 형성된 넓은 충적 대지에 입지한다. 집자리는 방형 11기, 장방형 19기, 세장방형 2기로 구분되며, 이중 장방형이 가장 많다. 규모는 면적에 따라 소형23㎡ 미만 30기, 중형 23~40㎡ 6기, 대형40㎡ 이상 2기로 나누어지며, 소형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집자리는 형태에 따라 장방형-세장방형-장방형-모서리가 둥근 장방형-원형, 규모도 대형-중형-소형 순으로 변화한다. 내부 시설은 대부분 [[기둥구멍|기둥 구멍]]이 확인되지 않으며, 화덕 자리는 [[돌깐돌두름식화덕자리|돌 깐 돌 두름식(石床圍石式)]], [[돌두름식화덕자리|돌 두름식(圍石式)]], [[구덩식화덕자리|구덩식]]이 확인되었다. 기둥 건물터는 세장방형, 장방형이 확인되며, 집자리가 밀집된 구역의 동쪽에 위치한다. 동서향으로 측면 1칸, 정면 2·5·6칸이다. 건물터의 성격은 공동 작업장 및 창고 등 마을 공동의 목적을 가진 시설물로 판단된다. 야외 화덕 자리는 집자리의 동쪽 부분에 위치하며, 3~7호는 구역의 경계를 따라 열상(列狀)으로 조성된 것이 특징이다. 원형(4~7호), 타원형(3호), 부정형(1호), 장방형(2호)로 구분되며, 길이 1.03~1.41m, 너비 0.81~1.26m이다. 내부에는 불탄 흙 덩어리와 목탄재를 포함하는 암갈색·흑갈색사질 점토로 채워져 있었다. 1·2호는 바닥만 남은 상태로 조사되어 집자리의 내부 화덕 자리일 가능성도 있다. 구덩이는 모서리가 둥근 장방형, 원형, 부정형 등 다양하며, 길이 0.44~3.03m, 너비 0.44~2m이다. 1·2호는 원형으로 내부에서 다량의 토기가 출토되었다. 특히 2호는 벽면과 바닥에 불탄 면(燒結面)이 두껍게 확인되는 점으로 보아 Ⅱ구역의 토기 가마와 같이 소성 유구(燒成遺構)일 가능성이 있다. 4호는 구덩이 가운데 가장 크고 내부에 기둥 구멍이 1개 설치되어 작업장과 관련한 시설이 가능성이 있다. 무덤은 Ⅰ구역에서 조사된 1기를 제외하면 모두 묘역을 가지고 있다. [[널무덤|널무덤]]은 길이 1.92m, 너비 0.43m, 깊이 0.14m로, 무덤 상부에서 [[민무늬토기|민무늬 토기]] 바닥 편 3점, 장방형 [[석도|돌칼(石刀)]] 1점이 확인되었고, 바닥에서 [[홈자루간돌검|홈 자루 간 돌검(二段柄式石劍)]], [[돌살촉|돌살촉]]이 출토되었다. 돌널무덤은 신당리 Ⅱ구역에서 5기가 조사되었다. 모두 조사지 중앙의 무덤 구역에 밀집 분포하며, 축조 방법에 따라 [[판돌형돌널무덤|판돌형(板石形)]], [[깬돌형돌널무덤|깬돌형(割石形))]], 혼합형으로 나눌 수 있다. 판돌형과 깬돌형은 고인돌 1·3호 사이에 위치하며, 혼합형은 고인돌 2호 서쪽에 위치한다. [[묘역식고인돌|묘역식 고인돌]]은 [[덮개돌|덮개돌(上石)]]이 있는 것 4기와 없는 것 3기로 구분되며, 형태는 원형(4호), 장방형(1호·하부 구조 3호)으로 나누어진다. 출토 유물 중 토기는 [[바리|바리(鉢)]], [[항아리|항아리(壺)]]로, 무늬는 민무늬 토기 바리(鉢), 항아리(壺)이다. 종류는 [[돋을띠무늬토기|돋을띠무늬 토기(突帶文土器)]], [[골아가리토기|골아가리 토기(口脣刻目土器)]], [[외반구연토기|외반 구연(外反口緣) 토기]], [[붉은간토기|붉은 간 토기]], [[가지무늬토기|가지무늬 토기(菜文土器)]] 등이다. 석기류는 돌검, 돌살촉 등의 무기류는 주로 무덤에서 출토되며, 돌칼(石刀), [[돌도끼|돌도끼(石斧)]], [[숫돌|숫돌(砥石)]] 등의 농 공구류는 생활 유구에서 출토된다. 유적은 단위 지역 내에 대규모의 유구가 중복된 상태였으며, 공간적으로도 [[청동기시대|청동기 시대]] 마을의 공간 구조와 변천을 파악할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또한, 다양한 유물 양상을 통해 생활사의 실증적 자료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이외에 널무덤은 청도 지역에서 처음으로 조사된 것으로 초기 무덤의 양상과 청동기 시대 무덤의 다양성을 확인 할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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