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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신경리 자경동 유적(洪城 新耕里自耕洞遺蹟)}} {{유적정보 | 이칭별칭=홍성 신경리 자경동 유적 | 키워드=[[집자리]], [[저장 구덩이]], [[구덩이]], [[역삼동 유형]], [[흔암리 유형]], [[송국리 유형]] | 시대=청동기 | 삼국시대미상 | 조선 | 위치=대한민국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이창호 | 조성 시기=청동기 | 성격=복합유적 | 소재지=충청남도 홍성군 홍북읍 신경리 945 일원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설명== 충청남도 홍성군 홍북읍 신경리 945 일원에 위치한다. 2010년 충남도청 이전 신도시(3구역 1~4지점) 조성에 앞서 발굴 조사되었다. 청동기 시대 [[집자리|집자리]] 49기, [[저장구덩이|저장 구덩이]] 5기와 삼국~조선 시대에 이르는 생활 유적과 [[고분|무덤]] 등 394기가 조사되었다. 유적은 해발 50~60m 정도의 구릉성 산지에 자리한다. 집자리는 정상부에서 사면 중·하단부에 이르기까지 넓게 분포하고 있다. 집자리는 ‘[[역삼동유형|역삼동]]·[[흔암리유형|흔암리 유형]]’과 ‘[[송국리유형|송국리 유형]]’으로 구분된다. 50기 중 43기는 역삼동·흔암리 유형이며, 나머지 7기는 송국리 유형이다. 역삼동·흔암리 유형은 대부분 등고선과 평행하며, 평면 형태는 장방형·세장방형이다. 면적은 소형에서 대형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내부 시설을 살펴보면, [[벽도랑|벽 도랑]], [[화덕자리|화덕 자리]], 저장 구덩이, [[기둥구멍|기둥 구멍]] 등의 시설이 있다. 벽 도랑은 주로 지형이 높은 쪽의 벽면에서 확인되는데 내부에는 기둥 구멍 흔적이 있어 벽 도랑을 따라 벽체 또는 기둥이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화덕 자리는 대체로 무시설식으로 중앙과 한 쪽에 치우쳐 1~2개 정도 설치되어 있다. 강한 소결흔이 남아 있어 반복적으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저장 구덩이는 대개 벽면과 접하여 1~8개 이내로 확인되었는데 집자리의 규모와 성격에 따라 수량의 차이가 있다. 평면은 대개 원형이고 단면은 완만한 ‘∪’자 모양이 많다. Ⅲ-A-1호는 내부에 토기를 안치하여 사용하였다. 바닥 면은 대개 생토면을 그대로 사용하였지만 일부에서는 점토를 깔아 다지거나 불로 다져 바닥을 견고하게 조성한 것도 확인된다. 다음으로 [[송국리식집자리|송국리식 집자리]]는 모두 7기로 방형계(Ⅱ-B: 7·8호, Ⅲ-C: 2호)와 원형계(Ⅱ-B: 1·2호, Ⅱ-B 수습 1호, Ⅲ-C: 수습 1호)로 구분된다. 역삼동·흔암리 유형 집자리와 혼재하며 분포한다. 타원형 구덩이 내부에 기둥 구멍이 2개씩 배치된 것과 타원형 구덩이 외곽 4곳에 2개씩의 기둥 구멍이 있는 구조가 확인된다. 구덩이는 Ⅱ-C지점에서 2기만이 확인되었다. 1기는 평면 원형으로 내부에 단을 두어 민무늬 토기를 올려 두었다. 나머지 1기는 Ⅱ-C지점 16호 집자리가 폐기된 이후에 조성되었다. 출토 유물은 [[겹아가리짧은빗금무늬토기|겹아가리 짧은 빗금무늬 토기(二重口緣短斜線文)]], [[골아가리토기|골아가리 토기(口脣刻目土器)]], [[검은간긴목항아리|검은 간 긴 목 항아리(黑陶長頸壺)]], [[깊은바리모양토기|깊은 바리 토기(深鉢形土器)]], [[항아리모양토기|항아리 모양 토기(壺形土器)]], 대형의 [[옹형토기|독 모양 토기(甕形土器)]] 등 다양한 생활 용기가 출토되었다. 그리고 직물과 관련한 토·석제 [[가락바퀴|가락바퀴]]가 소량 확인되었으며, 곡식 수확구로 사용한 [[반달돌칼|반달 돌칼]], 목재 가공용 또는 수렵용으로 활용될 수 있는 [[돌도끼|돌도끼(石斧)]], [[돌살촉|돌살촉(石鏃)]] 등 다양한 형태의 석기류가 출토되었다. 집자리의 형태와 내부 구조, 그리고 지역·지점별로 집자리 내부에서 채취한 시료 분석(Ⅱ-B: 1·2·4·6호, Ⅱ-C: 2~5·9·13·15·16호, Ⅲ-A: 1~3호, Ⅲ-C: 1·4호)에 의한 연대 측정 결과로 볼 때, 신경리 자경동 유적은 청동기 시대 전반에 걸쳐 지속적으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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