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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LAYTITLE:송천동2가 화정 유적(全州 松川洞2街花停遺蹟)}} {{유적정보 | 이칭별칭=전주 송천동2가 화정 유적, 오산리 화정A유적 | 키워드=[[송국리식 집자리]], [[독 모양 토기]], [[항아리 모양 토기]], [[돌대팻날]], [[홈자귀]], [[돌살촉]] | 시대=청동기 | 위치=대한민국 | 집필연도=2019 | 집필자=양영주 | 성격=복합유적 | 소재지=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덕진구 송천동2가 1353-4 일원 | 수록사전=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 ==설명== 전라북도 전주시 덕진구 송천동2가 1353-4 일원에 위치한다. 전주 00 부대 이전 부지 도시 개발 사업에 앞서 2014년에 발굴 조사되었다. 조사는 1단계(부대 외부), 2단계(부대 내부)로 구분되어 이루어졌으며 유적은 화정 A지점에 해당한다. 유적은 남북 방향으로 뻗은 2개의 구릉과 구릉 사이의 곡간으로 형성되어 있다. 송천동2가 일대는 건지산(해발 103m)에서 북서쪽으로 흘러내린 주 능선과 낮은 구릉이 발달하였다. 조사 결과, 청동기 시대 집자리 13기·구덩이 1기와 고려~조선 시대 움무덤(土壙墓)이 확인되었다. 집자리 13기는 모두 원형이며, 집자리 중앙에 타원형 구덩이와 내부 양쪽 가장자리에 기둥 구멍이 있는 [[송국리식집자리|송국리식]]이다. 6·8호는 타원형 구덩이 바닥 면에 회백색점토와 불탄 목재木炭와 재가 깔려 있는 것으로 보아 화덕 자리 또는 불씨 저장소로 이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집자리의 바닥 면은 대부분 불 다짐 처리(4~6·8·11호)하였다. 내부 시설은 타원형 구덩이 이외에 [[기둥구멍|기둥 구멍]]과 [[도랑|도랑(溝)]], [[벽구|벽 도랑(壁溝)]] 등이 확인되며 9호 집자리는 타원형 구덩이를 중심으로 4개의 기둥 구멍이 배치되어 있다. 집자리는 3~5기가 작은 군집을 이루고 이들이 모여 큰 군집을 형성하면서 구릉 능선을 따라 열 지어 배치되어 있다. 면적은 10㎡ 미만의 소형(6·12호)을 제외하면 대부분 12~23m² 내외의 중형이며 가장 작은 것은 6.89㎡(12호), 가장 큰 것은 22.72㎡(1호)이다. 유물은 [[옹형토기|독 모양 토기(甕形土器)]], [[호형토기|항아리 모양 토기(壺形土器)]], [[깊은바리모양토기|깊은 바리 토기(深鉢形土器)]], [[완형토기|사발 모양 토기(碗形土器)]], [[돌대팻날|돌대팻날(扁平片刃石斧)]], [[돌칼|돌칼(石刀)]], [[숫돌|숫돌(砥石)]], [[홈자귀|홈자귀(有溝石斧)]], 석제 [[가락바퀴|가락바퀴]], [[석창|석창石槍]], [[돌살촉|돌살촉(石鏃)]], [[발화석|발화석(發火石)]] 등이 출토되었다. 구덩이는 1기가 조사되었다. 구덩이는 10호와 11호 집자리 사이에서 확인되었는데 단면 형태는 부정형이며 바닥 면은 특별한 시설없이 그대로 이용하고 있다. 내부에서 [[민무늬토기|민무늬 토기]] 편이 출토되었다. 송천동2가 화정 유적의 집자리는 형태와 구조, 출토 유물로 보아 인접한 송천동2가의 붓내·오매 유적과 비슷한 [[송국리문화|송국리 문화]] 단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분류:한국고고학사전]] [[분류:한국고고학전문사전(청동기 시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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